[문화] '비매너 논란' 59세 게오르규는 퇴물가수? 전문가가 본 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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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오페라단의 ‘토스카’는 본래 스타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에 대한 기대감으로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공연 마지막 날인 8일 게오르규가 상대 성악가의 앙코르를 문제 삼아 공연을 중단시킨 것과 무대 위에서 "나를 존중하라"고 외친 발언이 더 화제가 됐다. 오페라 전문가가 본 작품의 질은 어땠을까. 유형종 음악ㆍ무용 칼럼니스트의 공연 리뷰를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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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토스카'를 공연한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오른쪽)와 테너 김재형. 8일 마지막 공연에서 게오르규의 태도가 문제가 됐다. 사진 세종문화회관

2024년 9월 서울에서 푸치니의 ‘토스카’를 안젤라 게오르규 노래로 듣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토스카’는 자코모 푸치니 100주기를 기념한 서울시오페라단의 선택이었다. 게오르규는 마리아 칼라스 이후 가창력은 물론 무대 위의 존재감 측면에서 최고의 토스카로 불렸던 전설의 디바다. 그를 유럽ㆍ미국이 아닌 서울 한복판에서 보는 셈이었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간 순간부터 평소보다 많은 인파를 볼 수 있었다. 그들이 입은 옷과 표정으로 볼 때 게오르규를 만나러 세종문화회관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 보였고, 실제로 그랬다. 최근 보기 힘든 분위기였다. 이런 것이 슈퍼스타가 가진 힘이다.

문제는 게오르규의 전성기는 분명히 지났다는 것! 이제 만 59세에 도달한 소프라노가 모든 오페라의 히로인 중에서 가장 강인한 캐릭터에 속하는 이 역을 무난히 불러낼 수 있을까?

성악가의 노래는 그냥 천부적 재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발성법’이라는 테크닉으로 후천적으로 훈련해 ‘만들어진 목소리’라는 면이 더 크다. 성대만이 아니라 온몸을 사용해 노래하는 것이기에 특히 오페라의 경우에는 짧은 아리아나 이중창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체력이 소요된다. 그래서 큰 폐활량과 그 호흡을 컨트롤하는 능력도 중요하다. 예전보다 요즘 성악가들의 활동 수명이 연장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노화를 억제하는 의학의 힘도 빌리고 있을 것이고, 과거에 비하면 무모한 스케줄을 피해 잘 관리하는 것도 큰 비결일 것이다.

그래도 세월은 세월이다. 게오르규는 어떨까? 2012년 이후 그녀의 새로운 오페라 전곡 녹음이나 실황 영상은 더는 발매되지 않고 있다. 최전성기의 가수들과 경쟁할만한 좋은 시절은 지났다는 의미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정황도 있다. 예전만큼은 아니겠지만 세계적인 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여전히 오르고 있고, 올 초에도 그녀가 국제적 커리어를 시작했던 런던 코벤트가든의 로열 오페라에서 ‘라보엠’을 불렀다.

이렇게 비유하면 어떨까? 오페라 팬들의 게오르규에 대한 감정은 영화 팬들이 나이 든 톰 크루즈의 액션 신작을 지금도 기대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젊은 날처럼은 아니겠지만 과거 추억의 히어로가 지금도 여전히 활기차게 보여서 안도하는 것 말이다. 그러고 보니 필자는 톰 크루즈보다 옛 홍콩 스타 청룽(成龍·성룡)의 캐스팅이 불발된 뒤에 대해서 그런 감정이었다.

서울시오페라단의 ‘토스카’에서 게오르규는 본인의 요구로 격일제 출연이 일반적인 우리나라 관행과 달리 목요일에 이어 이틀을 쉬고 일요일에 불렀다. 이는 세 팀의 출연진을 운영하는 세계적 오페라하우스의 일정에 맞춘 것일 수도 있지만 예전만큼 튼튼한 성대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예전 같지 않았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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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전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게오르규. 사진 세종문화회관

필자는 8일 일요일 공연을 보았다. 드디어 막이 열리고 연인의 이름을 부르는 ‘마리오, 마리오’와 함께 긴 사랑의 이중창이 시작된다. 아, 하지만 분명 예전과는 달랐다. 음반과 영상으로 수없이 들었던 어두운 음색으로 쭉쭉 뻗어 나가는 소리가 아니었다. 2002년 월드컵 기념 내한공연으로 직접 관람할 수 있었던 게오르규-알라냐 듀오 콘서트, 2012년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라보엠’을 불렀던 전성기의 당당함이 아니었다.

전반적으로 성량이 작아졌고, 가끔 주저하는 느낌도 있었으며, 특히 고음이나 큰 외침에서는 소리가 갈라질까 봐 조심하는 면모가 두드러졌다. 중저음의 매력도 무뎌졌고, 보컬의 유동적인 움직임은 전성기보다 모자랐다. 정확하기 이를 데 없었던 예전과 달리 음정이 미세하게 벗어나기도 했다. 다만 안정적인 호흡은 여전해서 게오르규 특유의 스타일은 유지되었고, 칼라스를 연상시키는 아름답고도 당당한 자태가 여전했다는 점은 천만다행이었다.

2막부터 모든 면이 나아졌다. 게오르규가 최선을 다하는 진정성이 느껴졌고, 다소 잠겼던 목소리도 제법 트였다. 덕분에 1막보다 공격적인 발성을 해냈고, 특히 악당 스카르피아의 탐욕을 견뎌내는 연기는 칼라스의 재래를 보는 듯 명품이 아닐 수 없었다. 결론적으로 게오르규는 환갑을 넘겨서도 변치 않은 노래를 들려준 마리엘라 데비아, 혹은 에디타 그루베로바 만큼 여전하지는 않았으나 아직 디바로 불려도 좋을 열정과 자기관리를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앞에 언급한 톰 크루즈나 청룽처럼 특수효과나 편집으로 그럴싸한 조작이 가능한 영화가 아닌 눈앞의 실황이어서 나이 든 민낯을 그대로 드러낼 수밖에 없다고 하겠다.

대역의 투신 장면 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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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폐허를 주제로 했던 표현진 연출의 '토스카' 무대. 사진 세종문화회관

연인 카바라도시 역의 김재형은 맑은 음색과 풍부한 성량, 자신감 넘치는 표현력으로 관객의 찬탄을 자아냈다. 그런데 너무 잘 부른 사세가(辭世歌) ‘별은 빛났건만’의 앙코르에 응한 것이 화근이었다. 게오르규는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했고, 남은 3막 후반부를 그나마 제대도 마쳤지만 커튼콜에서 한쪽 구석에 잠시 모습만 드러내고는 퇴장해버렸다. 한국 공연사에 남을 큰 사건이 벌어진 것인데 사실 성깔이 대단한 게오르규가 비슷한 문제를 일으킨 것은 해외에서도 있었다.

스카르피아 역의 사무엘 윤은 악당으로는 지나치게 깨끗한 소리였다. 첫날 공연에는 악역 느낌이 덜 났다고 하던데 그래도 일요일 공연에서는 게오르규에 부응해 충분히 열연을 펼쳤다.

표현진의 연출은 시대나 장소 배경을 원래대로 둔 전통적인 것이었으나 포격으로 일부 파손된 성당, 산탄젤로 성의 쓰러진 천사 날개 등 인류 역사에서 끊이지 않는 전쟁의 참화를 표현했다. 조금 생뚱맞은 부분도 있었지만 대역을 사용해 토스카가 투신하는 장면은 지금까지 실연으로 본 ‘토스카’ 중 가장 압권이었다. 지중배가 지휘한 부천필하모니오케스트라는 흠잡을 데 없이 좋은 소릿결을 들려주었지만 공연장 음향 탓인지 필요한 경우의 폭발력이 다소 아쉬웠다.

새로운 성악가들에 주목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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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연에서 호연을 보여준 베이스바리톤 사무엘윤(왼쪽)과 테너 김재형. 사진 세종문화회관

비록 게오르규가 일으킨 사건으로 마무리가 찜찜해졌어도 이런 스타 가수를 섭외한 서울시오페라단의 시도는 찬사를 받아야 한다. 아무리 전성기가 지났어도 결코 퇴물가수를 부른 것은 아니었다. 서울시오페라단은 국립오페라단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예산에도 불구하고, 이번만이 아니라 최근 공연작에서 연속적으로 대단한 출연진을 구성하면서 국립오페라단의 대항마다운 존재감을 부각하고 있다. 이런 경쟁 구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우리나라 오페라 애호가들이 현재의 새로운 세계적 성악가에 무관심한 편이고, 매체에서도 충분히 다루지 않는 점은 안타깝다. 가까운 예로 지난 8월의 마이클 스파이어스 리사이틀이 그랬다. 스파이어스는 19세기 전반의 희귀하고 아주 어려운 레퍼토리에 집중하는 바람에 대중적 인지도는 높지 않지만 작년 인터내셔널 오페라 어워즈의 남성가수상을 수상한 현재 45세 전성기의 테너다. 게다가 바리톤음역부터 일반적 테너에게 상상하기 어려운 고음까지 소화해내면서 ‘바리테너’를 표방하는 특별한 가수다.

그런데도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아 롯데콘서트홀과 부천아트센터에서 빈자리가 훨씬 더 많았고 관객들이 미안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스파이어스는 리사이틀에서 만나기 어려운 다양한 프로그램을 음반과 영상에서 만났던 바로 그 최고의 목소리로 들려주었고, 많지 않은 관객의 큰 박수에 여러 앙코르곡으로 화답했다. 한 시대를 사로잡았던 소프라노 게오르규에 대한 관심도 좋지만, 청중은 새로운 스타를 만나는 기쁨을 누려야 한다. 이런 보석 같은 기회가 제대로 알려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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