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채 전 에코프로 회장(가운데)이 허개화 GEM 회장(오른쪽), 왕민 GEM 부회장(왼쪽)과 에코프로 본사에서 초격차 경쟁력을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사진 에코프로

지난달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은 이동채 전 에코프로그룹 회장이 경영에 복귀했다. 9일 이 전 회장은 “파괴적 혁신 없이 현재의 캐즘(일시적 수요정체)을 돌파할 수 없다”며 배터리 소재 가격을 낮춰 혁신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중국 전구체 제조사 거린메이(GEM)와 손잡고 양극소재 전반 사업을 인도네시아에서 추진키로 하면서다.

9일 에코프로그룹에 따르면 지주사인 에코프로는 최근 이사회를 열어 이 전 회장을 상임고문으로 선임했다. 이 전 회장은 이날 직원들과 간담회를 통해 “배터리 시장이 왜 이렇게 됐을까, 우리의 앞길은 무엇인가 생각해봤는데 앞길이 보이지 않았다”며 “그래서 세상을 뒤엎어 보자고 결심했다. 지금처럼 하다가는 미래가 없다”고 말했다.

이 전 회장은 한국이 이끄는 NCM(니켈코발트망간)의 삼원계 배터리가 중국이 주도한 LFP(리튬인산철) 배터리에 밀리면서 시장이 축소됐다고 봤다. 2~3년 전만 해도 전기차의 모든 배터리는 삼원계가 차지할 것으로 예상해 증설 경쟁으로 과잉 투자하면서, 국내 배터리 산업이 제조업 본질의 경쟁력을 무시한 것이 캐즘을 부른 원인이라는 진단이다.

위기 타개를 위해 이 전 회장이 꺼낸 카드는 GEM과의 통합 양극소재 사업이다. 제련→전구체→양극재로 이어지는 양극소재 생태계의 벽을 허물어 하나의 사업으로 포괄, 획기적으로 비용을 절감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전 회장은 “에코프로도 현재에 안주하다가는 3~4년 뒤에는 사라질 수 있다”며 “GEM과 함께 구축하는 통합 밸류체인(가치사슬)이 캐즘을 극복하는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4 인터배터리(INTER BATTERY) 에코프로 부스에서 관람객들이 에코배터리 포항 캠퍼스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에코프로는 폐배터리 재활용부터 전구체, 양극재에 이르는 양극소재 생산 기지를 포항에 구축했는데, 광물과 제련 공정이 없어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그룹 내 전구체 사업을 담당하는 에코프로머티리얼즈가 GEM의 인도네시아 니켈 제련소 지분을 인수해 제련업에 본격 진출하기로 했다.

현재 GEM은 인도네시아에서 15만톤(t)의 니켈을 생산할 수 있는 제련소를 운영 중이며 GEM이 인도네시아에서 운영하는 4개의 제련 법인에 에코프로도 약 3억 달러(약 4000억원)를 투자하고 있다. 에코프로 관계자는 “GEM의 제련소를 통해 니켈을 저렴하게 공급받을 수 있을 전망”이라며 “여기에 에코프로의 기술 경쟁력이 더해지면 시장 파괴의 혁신적인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삼원계 배터리 원가에서 니켈 값의 비중은 40% 이상인데, 완성차 업체들이 삼원계의 성능보다 LFP의 저렴한 가격에 주목하면서 삼원계 배터리 밸류체인에 있는 기업들은 니켈 원가 관리가 중요하다. 양사는 GEM의 인도네시아 니켈 제련공장 ‘그린에코니켈’ 사업을 통해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보조금 기준에 부합하는 니켈 자원 확보를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양사는 실무를 맡을 태스크포스팀(TF)을 구성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