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이게 한국 화장품이래" 외국인들 줄선다…힙해진 '경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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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서울 성수동에서 열린 무신사 뷰티 페스타에 입장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이우림 기자

지난 7일 ‘K뷰티 1번지’로 불리는 서울 성수동에서 열린 ‘무신사 뷰티 페스타’ 행사장. 한국인과 외국인 2030세대 수백명이 길게 줄을 늘어섰다. 이탈리아 출신 유학생 루도비까(33)는 “한국에 오기 전엔 스킨케어도 하지 않았는데 유학 온 뒤로 다양한 화장품을 사용하고 있다”며 “이탈리아 친구들이 한국에 한 번씩 놀러 올 때면 가장 먼저 한국 화장품 쇼핑부터 한다”고 말했다.

한국 수출의 근간을 지탱해온 경공업 수출이 화장품과 먹거리를 주축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과거 경공업은 의류·신발·가방 중심의 노동집약적 저부가가치 산업이었지만, 최근엔 K콘텐트로 무장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른바 ‘경공업 2.0’ 시대가 열렸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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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영 디자이너

9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화장품 등 경공업 수출액은 950억86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2.6% 증가했다. 상반기 기준으로 수출 통계 집계를 시작한 1977년 이후 역대 최대치다. 엔데믹으로 전반적인 수출이 살아났던 2022년(944억3800만 달러) 이후 2년 만에 기록을 갈아치웠다.

반도체 등 IT제품은 올 상반기 42.7% 급증한 691억7700만 달러를 기록했지만, 2022년(790억8500만 달러) 기록을 뛰어넘진 못했다. 농산물 등 1차산품은 오히려 지난해 상반기보다 8.7% 감소했다. 이에 따라 경공업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22년 26.9%에서 올해 28.4%로 확대됐다. 같은 기간 IT제품 비중은 22.6%에서 20.6%로 줄었다.

한국 산업은 크게 가공되지 않은 원료 형태의 ‘1차산품’과 가공된 제품인 ‘공업제품’으로 나뉜다. 공업제품은 다시 중량에 따라 ‘경공업 제품’과 ‘중화학 제품’으로 분류된다. 경공업 제품엔 화장품·식료품·섬유 등 비교적 가벼운 생산품이, 중화학 제품엔 자동차·선박·IT제품 등 금속·기계류나 화학류 등이 포함된다. 반도체도 중화학에 속한다. 경공업은 1959년 미국에 스웨터 300장을 수출한 것을 시작으로 80년대까지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으로 자리 잡았지만, 1973년 ‘중화학 공업 육성 계획’을 기점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중화학제품이 한국의 경제 성장을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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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한국의 한 신발 제조 공장. 중앙일보

최근 되살아나고 있는 ‘경공업 2.0’은 80년대 이전과는 양상이 크게 다르다. K콘텐트로 대표되는 ‘소프트 파워’와 제조업자개발생산(ODM) 기술 발전 등이 결합해 새로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거듭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기업·중견기업 중심의 중화학 제품과 다르게 경공업은 중소기업이 주축이 되고 있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최대 주역은 화장품이다. 올 상반기 화장품 수출은 전년 대비 18.1% 늘어난 48억4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이 역시 상반기 기준 역대 최대치다. 한국 드라마와 K팝 등 콘텐트 확산으로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도가 전 세계적으로 커진 영향이다. 특히 중동(85%), 대양주(67.1%), 북미(62.7%), 아프리카(51.3%), 중남미(50.4%) 등 기존 아시아 시장을 벗어나 신시장을 중심으로 큰 폭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 화장품 브랜드 ‘힌스’의 조서은 팀장은 “최근 오픈한 서울 성수동 플래급십 스토어의 경우 외국인 비율이 70% 이상이다”며 “예전엔 그냥 특정 연예인이 뜬 브랜드가 각광받았다면, 지금의 K뷰티는 한국인의 피부, 한국인이 하는 메이크업 자체에 대한 선망이 커졌다”고 밝혔다. 무신사 관계자는 “올 상반기 글로벌 온라인 거래액이 전년 대비 138% 증가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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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영 디자이너

K푸드도 비슷한 이유로 인기가 커지고 있다. 상반기 라면 수출은 32.3% 늘어난 5억9000만 달러 기록했다. 미국에서 ‘까르보불닭볶음면’이 품귀 현상이 나타나는 등 ‘불닭 신드롬’이 전 세계에 확산된 영향이다. 이외에 소주(4.7%), 김치(4.0%), 김(50.4%), 소스류(5.1%) 등도 덩달아 늘었다.

지난해 반도체 불황에 따른 ‘수출 혹한기’를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데에도 이같은 경공업의 숨은 역할이 있었다는 평가다. 지난해 전체 수출은 전년 대비 7.4% 감소했는데, 이는 수출 1위 품목인 반도체 수출이 23.7%나 급감한 영향이 크다. 전체 중화학제품으론 3.7% 줄었다. 하지만 경공업은 0.1% 감소하는 데 그쳤고, 특히 화장품 수출은 오히려 6.4% 늘어나는 등 감소 폭을 최소화했다. 흔들리는 한국 수출호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한 셈이다.

이에 중화학과 경공업을 균형 있게 수출하는 다변화가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올해 수출 호황은 반도체가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지만, 다운사이클에 진입하게 되면 언제든 혹한기가 찾아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올 하반기부터 IT 수출 증가세가 둔화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장상식 무협 동향분석실장은 “K뷰티와 K푸드, K패션까지 경공업 수출이 아시아를 넘어 북미, 유럽까지 확대되면서 수출 다변화가 이뤄지는 점이 긍정적”며 “대부분 몸과 직접 관련된 소비재인 만큼 전시회나 로드쇼 등 현지 소비자들이 체험할 수 있는 장을 적극적으로 마련할 수 있는 정부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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