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베이징의 유명 쇼핑몰인 란써강완(藍色港灣) 지하에 있는 고급 슈퍼마켓 BHG의 월병 매대에 손님이 보이지 않는다. 신경진 기자

지난 7일 베이징의 유명 쇼핑몰인 란써강완(藍色港灣)의 고급 슈퍼마켓 BHG. 중국의 중추절(추석) 대표 선물격인 월병의 매출을 묻자 직원은 “지난해보다도 줄었다”고 답했다. 실제 BHG의 월병 매대는 지난해에 비해 한 칸 줄었다. 중국 베이킹 및 제당제품공업협회는 올해 월병 생산량과 매출액을 지난해보다 10% 줄어든 30만t과 200억 위안(약 3조7800억원)으로 전망했다.

고급 백주 마오타이(茅臺)도 이례적인 가격 하락세다. 마오타이는 통상 추석이 낀 9월이 최성수기다. 하지만 주력 제품인 페이톈(飛天) 낱병 도매가는 4일 기준 2365위안으로 지난해보다 15%가량 떨어졌다. 올 초 춘제(음력 설) 때만 해도 2800위안을 넘었었다. 한 주류 취급 상인은 “중추절 백주 시장이 10년 만에 가장 차갑다”고 전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중추절 대목까지 실종될 정도로 중국 경제에 불황의 그늘이 드리우고 있다. 10일 중국 국가통계국 등에 따르면 경기 동향을 보여주는 대표 지표인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지난달 49.1을 기록했다. 전월(49.4)과 시장 예상치(49.5)를 밑돌면서 지난 2월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4개월 연속 경기 위축의 기준점인 50을 밑돌고 있다.

다른 지표도 빨간 불이다. 8월 소비자물가(CPI)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0.6% 올랐다. 지난해 2월(1.0%) 이후 18개월째 1%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주요 제품에 대한 구입을 망설일 정도로 중국 내 수요가 위축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중국에서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중국 내 명품과 럭셔리카의 황금기도 저물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LVMH의 쥬얼리 브랜드 티파니앤코는 중국 상하이 플래그십 매장(1115㎡) 규모를 절반으로 줄인다. 올 상반기 중국 내 LVMH그룹의 시계 및 보석 부문 매출이 최악의 실적을 기록한 영향이다. 독일 포르쉐의 올해 상반기 중국 인도량은 전년 동기 대비 33% 급감했다. 독일 경제지 한델스블라트는 “중국 부자들이 부동산 위기의 영향을 받으며 명품 수요가 줄고 있다”고 분석했다.

선전의 특급 호텔의 리샤(李霞) 식음료 담당 이사는 “9월 새 학기를 맞은 가족 단위의 입학 축하연과 중추절 연회 예약 감소세가 뚜렷하다”며 “가족당 매출도 예년의 3000위안(약 57만원)에서 1600위안(약 30만원)대로 줄었다”고 말했다.

소비가 위축되면 기업 수익성이 떨어져 투자와 채용 줄인다. 이는 직원 임금 삭감이나 해고로 이어진다. 결국 더 큰 소비 위축을 불러와 올해 중국 정부의 목표인 ‘5% 성장률’ 달성 가능성은 낮아질 수 밖에 없다. 실제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속속 중국 경제 성장률 예상치를 낮추고 있다. BoA(뱅크오브아메리카)는 중국의 연간 경제성장률 예상치를 5%에서 4.8%로 내렸다. 골드만삭스ㆍUBS도 각각 5.0%에서 4.9%로, 4.9%에서 4.6%로 내려 잡았다.

김영옥 기자

뉴욕타임스(NYT)는 중국에서 5년 전보다 재정적으로 나아졌는지를 묻는 설문에서 '부유해졌다'는 답변 비율이 2014년 77%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지난해엔 39%로 급락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중국 경제는 40년 전 경제 개방 이래 경험한 적 없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이전부터 저축 경향이 강했던 중국 소비자들은 더 검소해졌다"고 했다. 올해 상반기 중국 내 폐업 식당은 국숫집 3만여 곳을 포함한 105만6000여곳으로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2년 대비 4배 많은 수준이다.

경기 침체의 주범으로는 부동산 문제가 꼽힌다. 블룸버그는 2015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선분양·미완공 주택 규모가 4800만채에 이른다며 중국의 부동산 위기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부동산은 중국의 경제 성장 기여도가 30%가 넘을 정도로 중요한 경제 중심축이다. 부동산 시장 침체가 길어지면 내수와 소비가 둔화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처럼 경영환경이 불확실해지면서 글로벌 기업들의 탈중국 흐름도 빨라지고 있다. 최근 미국의 IBM은 중국 내 연구개발(R&D) 부서를 폐쇄하고 1000명 이상을 정리해고 한다고 밝혔다. LVMH의 뷰티 편집숍 세포라도 중국 내 직원(4000명) 중 3%(120명) 감축안을 내놨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7월부터 중국 내 오프라인 매장을 전면 폐쇄하고 온라인 직원만 유지하기로 했다. 올해 1~7월 외국인의 대중국 직접투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9.6% 줄어든 5395억 위안(102조1300억원)에 그쳤다.

중국의 경기 회복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중국 정부는 올해 초부터 소비재나 생산설비를 교체할 때 지원금을 주는 식의 내수 진작 정책을 내놨으나 효과는 미미하다. 로이터는 “장기화한 부동산 침체와 지속적인 실업, 늘어나는 부채, 높아지는 무역 긴장 속에서 중국 경제가 더 많은 부양 정책을 내놔야 한다는 압력이 커졌다”고 보도했다.

한편 내수와 달리 중국 수출 경쟁력은 강세다. 저가 수출 공세 때문인데, 이는 내수 부진이 야기한 공급 과잉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중국이 내수 침체 극복을 위해 자국 생산품을 헐값에 밀어내는 수출 전략을 쓴다는 의미다. NYT는“중국의 공급 과잉으로 첨단 제조업계 수익성이 훼손된 데다 주요 무역 상대국의 반발까지 사고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