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개화파 지식인 유길준의 설렘과 꿈, K컬처로 꽃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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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한 미국 피바디에섹스 박물관의 린다 하티건 관장(가운데)과 수 킴 수석기금 담당(왼쪽), 김지연 한국 담당 큐레이터.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

1799년 설립돼 미국 박물관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매사추세츠주 세일럼의 피바디에섹스 박물관. 2003년 문을 연 이곳 한국실 이름은 ‘유길준 갤러리’다. 19세기 말 고종의 명을 받아 미국을 방문했던 개화파 지식인 유길준(1856~1914)의 이름을 땄다. 당시 유길준의 도움으로 박물관이 미국에서 최초로 한국 유물을 수집한 것을 기리는 의미다.

연간 방문객 25만명(2019년 기준)을 헤아리는 피바디에섹스 박물관이 내년 5월 유길준 갤러리를 대폭 확장해 재개관한다. 한국 기관들과 이를 협의하기 위해 최근 내한한 린다 하티건 관장은 지난 3일 인터뷰에서 “한국 관련 컬렉션을 가장 먼저 시작한 박물관으로서 시대 변화에 맞게 현대 컬렉션을 늘려가는 중이고 재개관전도 이를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까진 조선시대부터 한국인의 삶이 어땠나 보여주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젠 ‘K컬처’와 관련해 훨씬 다양해진 관심과 요구를 전시물로 드러내겠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박물관은 최근 백남준 미디어아트 작품을 구입하기도 했다.

박물관이 소장한 한국 유물은 약 2000여점으로 대부분 조선 후기 회화·복식·민속품 등이다. 이 컬렉션의 시작에 유길준이 있다. 1883년 보빙사(방미 사절단)의 일원으로 미국에 간 유길준은 한국에 관심이 많던 당시 박물관장(에드워드 실베스터 모스)과 교분 속에 세일럼에 정착해 ‘유학생 1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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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이 소장한 유길준의 갓.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

그는 1884년 말까지 머무르면서 박물관 측이 독일인 파물 묄렌도르프를 통해 조선 유물 225점을 사들일 때 자문해줬다. 귀국할 땐 자신의 옷·갓·신발·부채 등을 남겨 컬렉션에 보탰다. 당시 관장과 오고 간 40여통의 편지는 교육과 개화에 목말랐던 젊은 지식인의 고민을 드러낸다. 이 유물들은 국립중앙박물관이 1994년 특별전 ‘유길준과 개화의 꿈’을 개최하면서 국내에도 소개됐다.

이번 재개관은 피바디에섹스 박물관의 전면 확장에 따른 것으로 예산은 모두 박물관이 부담한다. 하티건 관장은 “한국실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는데 규모를 키우는 건 당연한 결정”이라고 했다.

260㎡(약 79평) 규모로 늘어나는 한국실은 조선시대 나전칠기 등 80여점을 상설 전시하면서 현대 한국작가와의 협업도 모색한다. 재개관전에선 정연두 작가의 사진전과 함께 유길준의 편지를 모티브로 삼은 양숙현 작가의 미디어아트가 선보인다.

지난해부터 박물관 한국실을 담당해온 김지연 큐레이터는 “당시 유길준이 전통 사회에서 일종의 세계화를 겪으면서 가졌던 설렘, 슬픔과 같은 걸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로 느낀다”면서 “유물이 과거의 잔재가 아니라 현재 우리가 꿈꾸는 것과도 연결된다는 걸 보여주려 한다”고 말했다.

“재개관 상설전은 조선 후기부터 20세기 초까지 한국미술과 문화를 두루 조명하면서 한국의 장인·예술가들이 어떻게 세계적인 변화의 물결을 헤쳐갔는지를 보여주려고 해요. 한국인의 뿌리 깊은 생명력과 창의성이 오늘날 한국 문화의 글로벌 영향력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확인하실 겁니다.”(하티건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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