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단독] '회계감사'하며 '회계일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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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브뤼셀 사무소 건물에 내걸린 pwc(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 로고. 국내 빅4 회계법인 중 하나인 삼일회계법인은 이 글로벌 회계법인의 브랜드를 사용한다. 로이터=연합뉴스

# PwC컨설팅은 지난해 대형 유통기업인 신세계의 재무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주는 계약을 맺었다. 이 시스템은 인사·재무·공급망 등을 관리하는 전사적자원관리(ERP) 프로그램의 일부다. 신세계는 이 시스템을 통해 자금 흐름과 수익성 등을 관리하고 재무제표 작성에 활용한다.

문제는 PwC컨설팅이 신세계의 외부 감사인인 삼일회계법인과 ‘PwC(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란 브랜드를 공유하는 관계라는 점이다. 국내 한 회계법인 고위 관계자는 “공인회계사법은 외부 감사인이 감사하는 법인의 재무제표 대리 작성 행위는 물론 재무 정보 체제 구축 업무도 금지하고 있다”며 “법의 취지를 고려하면 외부 감사인과 같은 브랜드를 쓰는 회사가 재무 관리 시스템까지 구축하는 행위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9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재무 관리 시스템 구축, 재무 자문 등 기업의 재무 용역 사업을 둘러싸고 감사인의 독립성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업계에선 KPMG·딜로이트·EY 등 글로벌 회계법인과 브랜드를 공유하는 회사 간에는 외부 감사와 재무 용역을 겹치지 않게 수주하는 게 불문율로 통한다. 하지만 국내 최대 회계법인인 삼일회계법인(이하 삼일회계)은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경쟁 관계에 있는 삼정·안진·한영 등 대형회계법인들은 이 같은 영업 행태가 시장 질서를 어지럽힌다며 한국공인회계사회(한공회)에 문제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현행 공인회계사법 21조2항에 따르면 공인회계사는 재무제표 감사 업무를 하는 중에는 재무 정보 체제 구축·운영 업무 등을 금지하고 있다. 감사 대상 법인과 이해관계가 얽히는 일을 사전에 차단해 외부 감사인의 독립적인 회계감사를 보장하기 위해서다. 다만 이 법은 같은 브랜드를 쓰는 회사 간의 비즈니스에 대해선 별다른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하지만 글로벌 윤리 기준이라 볼 수 있는 국제공인회계사윤리기준(IESBA)은 같은 브랜드를 쓰는 회사 간에도 이 같은 독립성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브랜드를 공유하는 컨설팅 회사가 만든 재무 시스템으로 작성된 재무제표의 오류를 회계감사법인이 지적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 회계업계 관계자는 “회계감사는 재무제표의 오류를 찾아내는 게 목적인데, 재무 시스템 구축업체와 감사업체가 같은 브랜드를 쓴다는 것은 마치 중요한 올림픽 결승전에서 심판과 선수가 같은 이해관계에 있는 것처럼 부자연스럽다”고 지적했다.

삼일회계는 신세계 뿐 아니라, 지난 2021년부터 현대차 계열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개발사 포티투닷의 외부 감사인으로 활동 중인데, 포티투닷의 재무 시스템 용역도 PwC컨설팅이 맡고 있다. 이에 업계에서 문제 제기가 이어졌지만, 한공회 입장에선 국내법상 이를 명확히 금지하는 규정이 없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삼일회계는 이 같은 논란에 대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삼일회계법인 고위 관계자는 “삼일회계와 PwC컨설팅은 경영 의사 결정을 일절 공유하지 않는 독립 회사”라며 “PwC컨설팅이 재무 관리 시스템 용역을 수주할 때도 건 별로 독립성 검토를 거치기 때문에 현행법상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금융감독원에서도 이미 관련 사항을 들여다봤지만, 지적받은 게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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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본원에 있는 표지석.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결국 금감원·한공회 등 관련 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정리해야 할 때가 됐다고 강조한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나 국제공인회계사윤리기준 등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독립성 기준을 강화하거나, 한국 실정에 맞는 새로운 기준을 마련하는 등 명확히 가르마를 타줘야 업계 혼란을 줄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금감원이 같은 브랜드를 쓰는 회사끼리 감사 업무와 재무 업무가 겹치면 독립성 논란이 생길 수 있는지부터 검증한 뒤, 독립성에 위배된다면 이를 금지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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