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시카고' 최장수 출연 최정원 "무대 오르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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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최정원(55)은 뮤지컬 '시카고'의 역사를 썼다. 2000년 '시카고' 한국 초연 당시 록시로 데뷔해 2007년에는 벨마가 됐고, 24년 동안 모든 시즌에 참여했다. 장수 뮤지컬 '시카고' 흥행의 주역이자, 산 증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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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배우 최정원이 10일 오후 서울 구로구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192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시카고'는 불륜을 저지른 남편을 살해한 가수 벨마 켈리와 내연남을 죽인 코러스걸 록시 하트의 몰락과 재기를 그린 작품. 미국 브로드웨이 최장기 공연 순위에서 '오페라의 유령'에 이어 2위를 지키고 있는 이 작품은 한국에서도 2000년 초연 후 지금껏 1600회 공연, 누적 관객 166만명을 기록했다. 지난 6월 개막한 이번 시즌은 최근 100회 공연, 객석점유율 99%를 달성하며 또 한 번 저력을 입증했다.

31세부터 55세까지 '시카고'와 인생을 함께하고 있는 배우 최정원을 지난 10일 서울 구로구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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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최정원(오른쪽)과 김영주가 지난 6월 11일 서울 구로구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열린 뮤지컬' 시카고' 프레스콜에서 주요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카고' 초연 무대에 선 지 24년이 됐다.
지금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50살이 넘으니까 더 잘 보인다. 골프를 칠 때 장타를 치고 싶으면 힘을 빼라고 하지 않나. 뮤지컬도 똑같다. 힘을 빼야 힘을 줄 수 있더라. 그렇다고 힘이 없어 보이면 안 되고 강약조절을 해야 한다. 그걸 지금도 배우는 중이다. 
배우 최정원에게 '시카고'는 어떤 의미인가.
31세에 록시가 됐다. 출산 직후였고 복귀에 대한 두려움이 많은 시기였다. 그때 록시를 만나서 한국뮤지컬대상 여우주연상을 받고 팬도 많이 생겼다. '한 번만 더하면 정말 잘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이번엔 벨마를 하라는 거다. 
록시가 아니라 아쉬웠나.
그땐 섭섭했다. 그런데 다시 대본을 읽어보니 '벨마가 내게 더 잘 맞는 옷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험도 쌓였고, 후배들도 많이 생겼으니까.  

뮤지컬 '시카고'에서 벨마는 불륜을 저지른 남편을 죽이고 감옥에 간다. 잘나가는 가수였던 벨마는 감옥에서도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하지만 내연남을 죽인 록시가 감옥에 들어오자 사람들의 시선은 새로운 '미녀 죄수'에게 쏠리고 벨마는 점차 잊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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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1일 오후 서울 구로구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열린 2024 뮤지컬 시카고 프레스콜에서 '벨마' 역의 배우들이 취재진에게 시카고 주요 안무를 보여주고 있다. 왼쪽부터 최정원, 정선아, 윤공주. 뉴스1

록시로 무대에 서 본 경험이 벨마 연기에 도움이 됐나.
록시와 벨마의 합이 정말 중요하다. 2007년 처음 벨마를 맡았을 때 록시는 두 명이었지만 벨마는 나 하나였다. 혼자서 두 명의 록시를 상대하니 실력이 빨리 늘었다. 이때 벨마를 맡고 나서 뮤지컬 '맘마미아!'의 도나 역할도 들어왔다. 벨마를 만나고 크게 성장했다. 17년을 함께했지만 여전히 각별하다.
스무살에 데뷔해 35년간 뮤지컬 외길을 걸었다. 드라마·영화 출연 제안도 있었을 텐데.
아직은 무대가 더 고프다. 관객이 없는 곳에서 노래하고 연기하는 내 모습이 상상이 안 된다. 특히 '시카고' 같은 작품은 벨마나 록시가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걸듯 연기하는 파트도 많다. 관객에게 받는 에너지가 있어야 신이 난다. 
천상 무대 체질이다.
그런 면도 있는 것 같다. 무대 위에 서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쇼는 계속돼야 한다. 틀리면 틀리는 대로, 컨디션이 나쁘면 나쁜 대로 가는 거다. 실수를 돌이킬 수도 없고 편집할 수도 없다. 물론 포토샵도 안 되고. (웃음) 그래서 배우의 역할이 크다. 무대에 올랐을 때만큼은 연출도, 프로듀서도 아닌 배우가 왕이다.
시카고는 유독 더 그렇다.
배우를 엄청나게 돋보이게 해주는 작품이다. 무대 세트도 별것 없고, 의상 변화도 없다. 노래·춤·연기가 1:1:1 비중으로 들어가 있다. 당연히 다 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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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배우 최정원이 10일 오후 서울 구로구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어둠을 뚫고 벨마가 등장하는 오프닝 장면은 늘 숨죽이고 보게 된다. 
벨마가 등장할 때 모든 앙상블 배우와 스태프들, 1000명 넘는 관객 한 명 한 명이 숨죽이고 나를 지켜보고 있다. 적막 속에서 벨마가 '후'하고 숨을 내쉬면 그제야 관객들도 숨을 내뱉는 게 느껴진다. 그때마다 전기에 감전된 듯 짜릿하다. 아이가 기어 다니다가 처음 두 발로 일어섰을 때의 느낌이 이럴까? 그냥 좋은 게 아니라 미치도록 좋다. 새가 돼 날아가는 것 같다.

최정원은 극장 어셔(안내원)의 이름을 일일이 외운다. "내가 무대에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분들이 너무 감사하기 때문"이란다.

최근엔 어셔들에게 편지도 썼다고.
그분들이 일을 하면서 동시에 매일 공연을 보니까 동료이자 관객이다. 뮤지컬은 팀워크인데 스포트라이트는 배우에게만 쏟아진다. 조명 스태프들은 배우를 빛나게 해주려고 두 시간 넘게 뜨거운 조명과 씨름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 늘 가슴이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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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원은 "24년 동안 시카고를 하면서 저절로 건강 관리가 됐다"고 했다. 장진영 기자

공연 전 지키는 루틴이 있다면.
록시를 보필해야 한다. (웃음) 록시가 기분이 좋아야 나도 잘할 수 있다. 동료들과 기분 좋은 텐션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서로 칭찬하면서 분위기를 띄운다. 
힘들 땐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나.
내일 죽는다고 생각한다. 진짜 그럴 수도 있는 게 인생이니까. 그러면 대부분은 별것 아닌 일이 된다. 누가 내게 상처를 줘도 내일 죽는다고 생각하면 섭섭할 것도 아니다. 내일 죽는다고 생각하면 '세상에 없던 공연을 보여주고 죽자'는 생각이 들면서 힘이 난다. (웃음) '최정원, 저러다 죽는 거 아니야?' 란 말이 나오게 공연을 하고 싶다. 
배우 최정원의 꿈은.
70살 넘어서도 무대에 서고 싶다. 지금보다 더 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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