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나이·출전시간 핑계 댈 생각 없다, 오로지 골 생각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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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대표팀 공격수 주민규. 김경록 기자

“단 1분을 뛰어도 골을 넣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경기에 나섭니다. 스트라이커가 포기하는 순간 팀 승리도 멀어지거든요.”

축구대표팀 공격수 주민규(34·울산HD)가 집념의 쐐기 골을 터뜨린 비결을 이렇게 밝혔다.

지난 10일 오만 무스카트의 술탄 카부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B조 2차전 오만과의 원정경기에서 주민규는 정규시간이 불과 1분 남은 후반 44분 황희찬(28·울버햄프턴)과 교체 투입됐다. 한국이 2-1, 한 점 차로 불안하게 앞선 상황. 하지만 오만의 막판 반격이 거센 데다 이날 후반 추가시간이 무려 16분이나 주어지면서 한국의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웠다.

후반 추가시간 11분 주민규의 오른발이 번뜩였다. 손흥민(32·토트넘)이 오른쪽에서 내준 공을 받은 그는 페널티박스 정면에서 깔끔한 오른발 슛으로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주민규의 쐐기 포(후반 56분)는 역대 한국 축구 A매치에서 나온 정규시간 득점 중 가장 늦게 터진 골로 기록됐다. 종전 기록은 지난 1월 카타르 아시안컵 16강전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기에서 후반 추가시간 9분 조규성(26·미트윌란)이 기록한 극적인 헤딩 동점 골이었다.

오만 원정을 마치고 12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주민규는 “(손)흥민이가 좋은 찬스에서 완벽한 패스를 해줘서 골을 넣을 수 있었다. 그 순간 ‘패스가 완벽해서 나만 잘 차면 된다’고 생각했다. 평소 정확한 슈팅은 자신이 있어서 왼쪽 구석을 보고 찼는데 노린 곳에 그대로 꽂혔다. 한마디로 짜릿했다”고 밝혔다.

주민규의 골은 옛 스승 홍명보(55) 대표팀 감독을 벼랑 끝에서 구했다. 홍 감독은 선임 과정에서 공정성 논란에 휩싸인 데다 10여년 만의 복귀전이었던 지난 5일 약체 팔레스타인과의 홈 1차전에서 0-0으로 비기면서 팬들의 야유를 받았다. 이날 오만전까지 비겼다면 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두 번째 경기에서 3-1로 승리를 거두면서 홍 감독은 한숨을 돌렸다. 홍 감독은 지난 7월 대표팀을 맡기 전까지 주민규의 소속팀인 K리그 울산을 이끌었다. 주민규는 “아슬아슬한 경기는 홍 감독님과 K리그에서 이미 여러 차례 경험했다. 막판에 나를 투입한 건 ‘한 방’을 기대한다는 의미다. 쐐기 골로 승리에 일조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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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만전에서 골을 터뜨린 국가대표 공격수 주민규. 출산을 앞둔 아내를 위한 세리머니를 했다. [연합뉴스]

주민규는 두 차례 K리그1 득점왕(2021·23년)에 K리그 역대 득점 3위(142골)를 기록 중인 베테랑 골잡이다. 그러나 대표팀에선 태극마크를 갓 단 신입 축에 속한다. 그는 지난 3월 태국과의 경기에서 ‘만 33세 343일’의 나이에 국가대표로 처음 출전해 역대 한국 선수 최고령 A매치 데뷔 기록을 세웠다.

이번 오만전 골은 그가 6번째 A매치에서 기록한 2호 골이다. 대표팀에서 주민규는 아홉 살 어린 공격수 오세훈(25·마치다)과 최전방 공격수 자리를 두고 경쟁을 벌이고 있다. 주민규는 “같은 공격수라도 20대 선수가 한두 경기 못 하면 이해해주지만, 30대 중반의 선수는 부진하면 바로 ‘나이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슬프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다”면서 “그래도 나이 핑계를 댈 생각은 없다. 국가대표라면 매 경기 120%의 실력을 팬들에게 보여줄 의무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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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주민규는 오만전에서 골을 넣은 뒤 유니폼 속에 공을 넣고 손가락을 빠는 ‘엄지 세리머니’를 해서 화제가 됐다. 오는 12월 첫 아이 출산을 앞둔 아내를 위해 이런 세리머니를 했다. 주민규는 “딸 출산을 앞두고 아내와 기쁨을 나누고 싶었다”며 “베테랑의 노련미를 발휘해 대표팀 골잡이 경쟁에서 반드시 살아남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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