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美대선 6번 다 맞춘 '족집게 지역'…열명 중 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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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월 27일 민주당 후보이던 조 바이든 대통령과 대선 TV 토론을 마친 다음날 찾아 유세 집회를 벌인 버지니아주 체서피크 카운티의 그린브라이어 농장. 취재진이 찾은 지난 3일 현장에는 가족 단위 손님 10여 명이 농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이들은 대선과 관련한 인터뷰 요청에 대부분 “지지 후보를 못 정했다”며 손사래를 쳤다. 체서피크=김형구 특파원

미국 대선이 가까워지면 동부 버지니아주 체서피크 카운티에 미 언론의 관심이 집중된다. 이곳이 미 전역 유권자 표심의 바로미터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2000년 이후 민주ㆍ공화 양당을 그네처럼 오간 대선 승자와 체서피크 카운티의 승리 후보는 모두 일치했다.

2020년 대선 때도 당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체서피크 카운티에서 기록한 득표율(52.22%대45.77%)은 전국 득표율(51.25%대46.80%)과 놀랄 만큼 근접했다. 미국 내 3143개 카운티(2022년 1월 기준) 가운데 최근 6번의 대선 결과와 정확하게 일치한 ‘족집게 선거구’는 체서피크 카운티를 비롯해 위스콘신 도어 카운티, 미네소타 클레이 카운티 등 모두 9곳뿐이다.

오는 16일로 미 대선이 정확히 D-50일을 맞는 가운데 높은 적중률을 자랑하는 초격전지의 바닥 민심을 들어보기 위해 지난 3~4일 현지를 방문했고 10일 열린 대선 TV 토론 직후 현지 주민과 추가로 통화해 기류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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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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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기자

“점잖은 양반 동네…미국의 충청도”

워싱턴 DC에서 차로 3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체서피크 카운티는 버지니아주 남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인구 24만여 명(2020년 기준) 규모의 소도시다. 이곳이 ‘벨웨더(bellweatherㆍ지표) 카운티’로 자리잡은 이유는 다양한 유권자 구성비가 한몫한 것으로 분석된다.

동부 해안가 관광 명소인 버지니아비치와 해군기지가 있는 노퍽의 베드타운 역할을 하면서 1980년대부터 유입 인구가 늘어난 이곳은 식민지 시대 초기 정착민의 후손 비율이 높고 교육과 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인 중산층 비율도 높다. 여기에 노퍽 기지에 연고를 둔 해군 관련 가족과 한국계ㆍ필리핀계ㆍ베트남계를 비롯한 아시아 이민자 등 다양한 배경의 유권자가 두루 혼재한 곳이다.

현지에서 만난 한국계 조낙현(65) 타이드워터한인침례교회 담임목사는 “가톨릭 신자 중심으로 보수 성향이 짙으면서도 이민자 유입 인구가 많아 개방적 성향도 뒤섞인 곳”이라며 “점잖은 양반 동네 이미지에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아 ‘미국의 충청도’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대선 시즌이면 주목도가 높아지는 이곳은 대선 후보 동선에서 빠지지 않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6월 27일 민주당 후보이던 조 바이든 대통령과 대선 TV 토론을 마친 다음날 곧바로 찾아 유세 집회를 벌인 곳도 체서피크 카운티 그린브라이어 농장이다.

중앙일보가 만난 현지 유권자들 중 일부는 정치 성향을 드러내길 자제하는 모습이었고 또 다른 일부는 정치 무관심 등을 이유로 취재진과의 대화를 피했다. 이틀 동안 인터뷰를 요청한 41명 중 이에 응한 사람은 11명이었고 이 중 1명은 사진 촬영을 거부했다. 그린브라이어 농장에서 만난 40대 백인 남성은 “물가가 너무 올라 마트 가는 횟수를 줄였다.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데 대선에 신경쓸 여유가 없다”고 했고, 30대 백인 여성은 “누구를 찍을지 마음의 결정을 못 했다”며 인터뷰 요청을 사양했다.

TV 토론 계기 민심 ‘들썩’

하지만 미 대선 판도가 하루가 다르게 출렁이고 10일 대선 TV 토론을 계기로 이 지역 민심도 들썩이기 시작했다. 30대 흑인 여성 콜먼은 “해리스를 잘 몰랐는데 토론을 보고 눈이 좀 뜨인 것 같다. 그녀가 더 좋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고 마음이 기울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천만 유권자가 시청하는 TV 토론은 영향력이 엄청나다. 나처럼 고민하고 있던 유권자들에게 결정적 계기를 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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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홍 기자

인터뷰와 사진 촬영에 모두 응한 현지 유권자 10명의 표심은 어느 한쪽에 쏠리지 않고 다양했다. 지지 후보가 누구냐는 물음에 ▶해리스 2명 ▶트럼프 4명 ▶미정 2명 ▶없음 2명 등으로 나타났다. 열 중 넷은 찍을 후보가 없어 기권하겠다거나 결정을 미루고 있는 상태라는 뜻이다.

해리스 지지 이유: 낙태권ㆍ민주주의

해리스를 지지하는 이유로는 낙태권과 민주주의 수호 등의 이유를 제시했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해리스와 더 비슷하다”며 지지 이유를 밝힌 샌디 그리샴(48)은 “트럼프는 그냥 기업가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치솟는 식료품 물가와 기름값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지난 4월 일자리를 잃은 뒤 구직 중이지만 인플레이션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며 바이든ㆍ해리스 행정부의 경제 정책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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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미국 대선 및 버지니아주 체서피크 카운티 유권자 민심과 관련해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랍 스미스. 체서피크=김형구 특파원

반려견과 조깅하다 취재진과 만난 랍 스미스(70)는 자신을 민주당원으로 소개한 뒤 “후보 정책이 중요하긴 하지만 민주주의를 잃으면 정책을 조정할 기회가 없어진다”며 “트럼프는 우리 민주주의에 분명한 위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리스는 젊다는 게 강점이고 결국 선거에서 이길 것”이라고 예상했다.

트럼프 지지 이유: 경제ㆍ국경정책

트럼프를 지지하는 쪽은 경제와 국경정책의 강점과 강인한 리더십 등을 이유로 꼽았다. 지난 6월 그린브라이어 농장에서 열린 트럼프 유세 집회에 참석했다는 필리핀계 리파 올리바스(50대 중반)는 “강하고 용감한 국정 지도자가 필요한 때”라며 “지역 경제도 망가졌기 때문에 이를 원래대로 되돌릴 사람은 트럼프”라고 말했다. 체서피크 시청 앞에서 만난 백인 여성 메릴린 힉스(69)는 “불법 이민자들 때문에 범죄가 늘어 무서워 죽겠다”며 “트럼프는 우리의 국경을 확실하게 지켜줄 사람”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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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미국 대선 및 버지니아주 체서피크 카운티 유권자 민심과 관련해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필리핀계 미국인 리파 올리바스. 체서피크=김형구 특파원

흑인 소상공인 여성 조니건(39)은 “나와 피부색이 같은 흑인 상당수가 해리스를 좋아하지만 그녀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진정으로 대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했다며 “반면 트럼프는 하겠다고 말한 것은 모두 실행에 옮기는 사람”이라고 지지 이유를 밝혔다. “그가 대통령일 때 기름값은 낮았고 전쟁이 없었다”고도 했다.

“공화당 후보 헤일리였다면 지지”

어느 후보에게도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유권자들도 확인할 수 있었다. 2016ㆍ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를 찍었다는 짐 셀즈(65) 리젠트대학 심리학과 교수는 “힘을 앞세워 동맹국들에게 방위비 분담을 요구하는 트럼프의 유치한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대선 투표는 하지 않을 것이지만 만약 니키 헤일리가 공화당 대선 후보였다면 그녀를 찍기로 마음 먹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셀즈 교수는 체서피크 카운티 유권자들의 표심을 결정할 이슈로는 전 세계 평화를 바라는 마음과 이민자 문제, 경제 문제가 될 것이라고 봤다. 상대적으로 트럼프에게 강점이 있다고 분류되는 이슈들이다. 셀즈 교수는 “아마도 선거는 트럼프가 이길 것 같다. 그래서 슬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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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미국 대선 및 버지니아주 체서피크 카운티 유권자 민심과 관련해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짐 셀즈 리젠트대학 심리학과 교수. 체서피크=김형구 특파원

블루칼라 흑인 노동자인 브랜던 데브로우(39)도 “버락 오바마를 찍은 게 마지막 대선 투표였고 이번에도 기권할 것”이라며 “해리스나 트럼프나 내가 생각하는 국가 지도자의 상과 맞지 않다”고 했다. 체서피크 카운티의 승자로 누구를 예상하느냐는 물음에는 “지역 내 많은 여성에 힘입어 해리스가 더 많은 표를 얻을 것 같다”고 했다.

리젠트대 학생인 케이틀린(26)은 투표를 할 생각이긴 하지만 지지 후보를 못 정했다고 했다. 그는 “여성 혐오 등 트럼프의 거친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고 해리스도 믿음을 못 줬고 정책에 완전히 동의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어 결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2030 세대 젊은 층 유권자들에게 소구력이 높은 이슈에 대해서는 여성 생식권과 이민 문제를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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