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긴 머리 잘라, 남편 저승길 신발 삼았나…안동 미투리, 절절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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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이 아버지에게
당신이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나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중략)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중략)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주세요.
(후략)
병술년(1586년) 유월 초하룻날 아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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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구박물관에서 개관 3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 전시 '한국의 신발, 발과 신'은 지난 5월 개막 이래 14만5000여명이 찾았다. 사진은 16세기 무덤에서 발견된 원이 엄마 미투리와 한글 편지. 사진 국립대구박물관

1998년 경북 안동에서 택지 개발로 무덤을 이장하는 중에 발견된 한글 편지다. 당시 시신의 가슴 위에 덮여 있던 편지 외에도 무덤 안에선 한지에 싸인 미투리 한 켤레가 발견됐다. 특이하게도 미투리의 원 재료인 짚과 삼(대마·大麻) 외에 사람의 머리카락을 엮어 짰다.

학계 연구 결과 무덤의 주인공은 31세 젊은 나이에 전염병으로 숨진 선비 이응태로 밝혀졌다. 편지는 부인이었던 ‘원이 엄마’가 쓴 것으로 미투리 역시 남편을 위해 만든 것으로 보인다. 신발을 싼 한지에는 ‘…이 신 신어보지도 못하고’ ‘…곁에 넣어’ 등이 적혀있었다. 절절한 편지 내용으로 미뤄볼 때 남편의 회복을 기원하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넣어 짠 신발로 보인다.

지금 국립대구박물관에선 원이 엄마 미투리와 한글편지가 함께 전시되고 있다. 지난 5월 개막해 현재까지 14만5000여명이 관람한 개관 30주년 특별전 ‘한국의 신발, 발과 신’을 통해서다. 전시는 무령왕비 금동신발 등 313건 531점의 유물을 바탕으로 우리 신발의 역사를 돌아보고 문화사적 의미를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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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구박물관 특별 전시 '한국의 신발, 발과 신'에서 선보이고 있는 발목 낮은 가죽신 혜(鞋). 사진 국립대구박물관

고대부터 현대까지 신발을 둘러싼 문화사 조명

원이 아버지는 양반이었음에도 왜 미투리를 넣어줬을까. 조선시대 짚신과 미투리는 평민뿐만 아니라 형편이 어려운 양반, 상인 등도 즐겨 신었다. 짚신은 상대적으로 만들기 쉬운 대신 빨리 닳았다. 농민은 한 켤레를 4일 정도 신었다는데 1년으로 환산하면 매년 90켤레 이상 필요했다.

미투리는 짚신과 비슷해도 좀 더 질기고 바닥 날도 짚신(4개)보다 많아 6~8개였다. 발 앞쪽을 감싸는 부위도 보다 촘촘하게 만든 고급품이었다. 어린아이를 홀로 키워야 할 원이 엄마가 요절한 남편의 저승길에 할 수 있던 최선의 이별 선물이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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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북천동에서 발굴된 삼국시대 신발모양 토기(국립김해박물관 소장). 조선시대 짚신과 비슷한 꼴을 고대서부터 신었음을 알 수 있다. 국립대구박물관 특별전 '한국의 신발, 발과 신'(9월22일까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사진 국립대구박물관

총 7부로 나뉜 전시는 발의 진화과정부터 시작해 신발의 재료, 짚신과 미투리, 신분과 신발, 기후와 신발, 혼롓날에 신는 신발, 죽은 이를 위한 신발, 근현대 신발까지 폭넓게 다룬다. 기후에 따라, 직업과 신분에 따라, 때로는 특별한 날에 신었던 다양한 신발을 통해서 우리 문화 속 신발의 의미를 살핀다.

특히 지난 8월27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대여 전시 중인 ‘대쾌도(大快圖)’를 통해 조선 시대 신발의 다채로운 양태를 확인할 수 있다. 이 그림은 ‘대쾌’ 즉, 크게 유쾌한 어느 날 씨름과 택견을 겨루는 놀이판에서 이를 구경하는 사람들을 그린 19세기 풍속화다. 등장인물이 91명이나 되는데 이 중 20명은 발까지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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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구박물관 특별전 '한국의 신발, 발과 신'에서 만날 수 있는 '대쾌도'. 사진 국립대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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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풍속화인 '대쾌도' 부분을 확대한 모습. 다양한 신발을 신은 한양 사람들이 등장한다.

씨름과 택견을 겨루는 소년 장사를 비롯해 버선 차림이 5명이고 나막신을 벗고 장죽을 든 사람도 있다. 짚신이나 미투리를 신은 사람이 9명으로 가장 많다. 짚신은 승려·엿장수·군관 등 다양한 신분·직업이 신고 있어 가장 대중적인 신발임을 알 수 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짚신, 미투리, 나막신, 혜의 실물이 모두 전시돼 있어 비교할 수 있다.

전시 마무리에선 평생 검약하게 살다 간 성철스님(1912~1993)의 고무신과 엄홍길 산악대장의 등산화 등 근현대 인물들의 특징적인 신발을 모았다. 전시는 9월2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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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구박물관 특별 전시 '한국의 신발, 발과 신' 전시장 풍경. 연합뉴스

107만명이 관람한 '이건희 기증전', 춘천서 마지막 여정 

전국적으로 100만명 이상 관람한 '어느 수집가의 초대-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특별전'은 춘천에서 열기를 이어간다. 지난 11일 국립춘천박물관에서 개막한 이건희 기증전은 겸재 정선이 그린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국보)를 비롯해 이건희(1942~2020) 회장 기증품 169건 282점을 선보인다. 김홍도가 그린 ‘추성부도(秋聲賦圖)’ 등 국보·보물로 지정된 국가지정문화유산 19건 24점이 포함돼 있다.

2021년 4월 이건희 회장 유족이 문화유산 2만1693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뒤 이듬해인 2022년 4월 열린 서울 전시는 코로나19 기간임에도 22만9892명이 관람했다. 이어 광주(30만9733명), 대구(26만3823명), 청주(16만8091명), 제주(10만4834명)를 거치며 누적 관람객이 107만6373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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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의 자연을 닮은 동정추월무늬 항아리. 국립춘천박물관에서 11월 24일까지 개최되는 '어느 수집가의 초대-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국립춘천박물관 특별전'에서 만날 수 있다. 사진 국립춘천박물관

국내 순회 전시의 마지막이 될 춘천 전시는 수집가가 '강원 별장'을 찾는다는 콘셉트로 꾸려졌다. 지역 특성을 살려 전시실 초입에 강원도 반닫이를 배치했고 문인 화가 강세황(1713∼1791)이 그린 ‘금강산도’는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공개된다(11월부터).

춘천 전시가 끝나면 이건희 기증품 전시는 2025년 11월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을 시작으로 시카고박물관, 영국박물관 등 해외로 옮겨 순회하게 된다.

국보순회전 6곳서 잇따라…공주선 '백제의 용' 특별전

교과서 속 국보·보물을 ‘우리 동네’에서 만날 수 있는 ‘국보순회전: 모두의 곁으로’가 상반기 6곳에 이어 하반기 새로운 6개 지역을 찾는다.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농경문청동기, 화려한 신라 금관, 갓맑은 하늘빛의 고려청자, 순백의 달항아리 등 국보·보물 6종(총 22건 29점)은 순회 개최한 박물관·미술관의 관람 인원을 전년 대비 2~3배 끌어올리며 인기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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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순회전:모두의 곁으로'가 6일 충북 증평민속체험박물관에서 개막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주최하고 민속체험박물관과 국립청주박물관이 주관하는 전시회는 12월 8일까지 이어진다.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이 기증한 청동방울 등이 전시된다. 사진 증평군

9월 6일 충북 증평민속체험박물관을 시작으로, 9월 12일 강원 양구백자박물관, 9월 13일 전북 장수역사전시관, 9월 26일 경북 고령 대가야박물관, 9월 30일 경남 함안박물관, 10월 2일 전남 해남공룡박물관에서 잇따라 전시 막이 오른다.

국립공주박물관에선 내년 2월 9일까지 특별전 ‘상상의 동물사전-백제의 용’이 열리고 있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받침 있는 은잔을 포함하여 용 관련 유물 148건 174점을 선보이는데 그중 국가지정문화유산 13점(국보 6점, 보물 7점)이 포함됐다.

백제 사람들이 용을 어떻게 생각하고 구현했는지 실제 유물 외에 디지털 영상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용의 머리 모양을 상상해 만든 용머리 조각, 용무늬를 새긴 목판, 용무늬 벽돌, 숙종(재위 1674∼1720)이 돌에 쓴 ‘용’ 글씨 등 면면히 이어져온 용 유물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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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봉황장식 고리자루큰칼. 공주 무령왕릉 출토품으로 국립공주박물관 특별전 ‘상상의 동물사전-백제의 용’(내년 2월 9일까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사진 국립공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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