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명절, 실험적 예능 사라졌다…'가수 특집쇼' 불러낸 드라마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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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박진영(JYP)은 KBS 2024 추석 특집 '딴따라 JYP' 포토월 행사에 올랐다. 사진 뉴스1

2년 연속 추석 기간 지상파의 파일럿 예능이 사라졌다. 지난해는 ‘항저우 아시안게임’ 중계와 추석 연휴가 겹친 영향이 있었다지만, 올해는 주말을 낀 5일 간의 연휴에도 지상파 파일럿 예능이 전무하다.

매년 명절 연휴는 방송사들의 파일럿 예능 시험 무대였다. 현재 인기리에 방영 중인 MBC ‘나 혼자 산다’·‘구해줘 홈즈’·‘복면가왕’,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SBS ‘골 때리는 그녀들’은 모두 명절 파일럿에서 시작해 정규 편성된 프로그램이다. 파일럿 예능은 다양한 실험이 가능하고 명절 기간 즉각적으로 시청자 반응을 파악할 수 있기에 활발히 시도돼 왔다.

올해는 MBN만이 추석특집 파일럿 예능 세 편을 선보인다. 14일 부모와 성인 자녀 간 갈등을 다룬 ‘내 부모님을 고발합니다! 내부고발’을 방영했고, 15일에는 동일한 사건을 각기 다르게 판결한 해외 사례를 살펴보는 ‘국경 없는 변호사들’을 선보였다. 16일과 17일에는 장윤정이 MC를 맡은 ‘언포게터블 듀엣’이 편성됐다.

“드라마 편수 줄어든 영향”

최영균 대중문화평론가는 지상파 파일럿 예능이 줄어든 배경으로, 드라마의 공백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지상파 3사는 월화극 편성을 하지 않고 있으며, SBS와 MBC는 수목극 편성도 미뤄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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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더 매직스타’ 스핀오프 프로그램 ‘마슐랭 1호점’이 추석 특집으로 방송된다. 사진 SBS

드라마 편성에서 생긴 공백은 자연스럽게 예능국이 채워야 할 몫이 됐다. 지난달 지상파 3사는 일제히 새로운 평일 예능을 론칭했다. KBS2는 개그맨이 배우에게 연기를 가르치는 예능 ‘매소드클럽’(매주 월)을 방영 중이며, MBC는 유튜브의 인기 예능이었던 ‘청소광 브라이언’(매주 화)을 TV로 옮겨왔고, SBS는 정글 식재료로 한식을 선보이는 예능 ‘정글밥’(매주 화)을 편성했다.

또 KBS는 추석 연휴인 16일에 유재석의 새 예능 ‘싱크로유’를 방송하고 2화부터는 매주 월요일 오후 8시 30분 방영하기로 했다. AI가수와 진짜 가수를 구별하는 콘셉트의 이 예능은 지난 5월 파일럿으로 선보인 바 있다. SBS에서는 ‘더 매직스타’ 스핀오프 프로그램 ‘마슐랭 1호점’을 추석 특집으로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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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인 16일 오후 6시 40분 첫 방송하는 KBS2 '싱크로유' 사진 KBS

최 평론가는 “예능이 드라마 시간대를 채우게 되면서 ‘상시 파일럿 체제’로 바뀐 모양새다. 명절 파일럿 형태로 새 예능을 보여주는 게 힘들게 됐다. 명절 연휴에 인기 예능의 재방송이나, 새로운 프로그램을 론칭해 주목을 끄는 형태로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예능 수요가 늘면서 비슷한 포맷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것에 대한 우려도 내비쳤다. ENA ‘나는 솔로’, SBS ‘신들린 연애’ 등 여러 형태로 세분화해 변주한 연애 예능,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MBC ‘심야괴담회’와 같은 스토리텔링 예능이 대표적이다. 최 평론가는 “창의성을 신경 쓰며 체계적으로 개발했던 시기에 비해 지금은 빨리빨리 만들어서 시간대를 채워야 하는 부담이 크다. 방송사 입장에서도 오래 기다려 줄 여유가 없다 보니, 인기 포맷을 가져다 쓰는 측면이 많다”고 아쉬워했다.

파일럿 예능 대신 가수 특집쇼

명절 파일럿 예능의 빈자리는 가수들이 차지했다. KBS가 2020년 추석에 나훈아 특집쇼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로 대박을 터뜨린 후, 여러 방송사에서 가수들을 데리고 명절마다 미니 콘서트를 TV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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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020년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의 장면. 사진 KBS2

KBS는 나훈아 이후 심수봉, 임영웅, 송해, 송골매, 지오디, 김연자, 진성 등을 연달아 선보였고 올해 추석 특집쇼의 주인공으로 JYP 박진영을 초대했다. 1993년 데뷔한 박진영은 16일 방송한 ‘KBS 대기획 - 데뷔 30주년 특집 딴따라 JYP’를 통해 30년의 음악 인생을 총망라한 무대를 보여줬다. 박진영의 메가 히트곡 메들리에 더해 지오디, 비, 원더걸스, 2PM, 트와이스와의 합동 무대도 공개됐다.

추석 당일인 17일 오후 7시 50분엔 이찬원의 단독쇼도 방송한다. 과거 트로트 신동으로 이름을 알렸던 이찬원은 ‘진또배기’ 등으로 시원한 노래 실력을 뽐냈고, KBS2 ‘불후의 명곡’ 등 각종 예능에서 MC로도 활약 중이다. TV조선은 지난해 김호중에 이어 영탁을 16일 방영한 추석특집 단독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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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의 추석쇼 '이찬원의 선물', TV조선의 추석특집 '영탁쇼' 사진 각 방송사

MBC는 아이돌 스타들이 여러 스포츠 종목에 도전하는 ‘아이돌스타 선수권대회’(16~18일 방영)를 2년 만에 부활시켰다. K팝 스타를 한자리에 모은다는 것 만으로도 국내외 K팝 팬들의 관심이 크다. 올해는 장민호, 영탁, 이찬원, 정동원이 ‘트롯보이즈’로 참가해 중장년층 시청자까지 사로잡는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명절 예능을 가수들에게 의존하는 건 한계가 분명하다. 히트곡이 많고 국민적 인지도가 있는 가수를 찾는 것이 어려워졌고, 글로벌 시장에서 유명한 아이돌은 녹화시간이 길고 고된 ‘아이돌스타 선수권대회’에 출연하길 꺼려한다. 코로나19 때와 달리 공연 수요도 활발한 상황이기에 굳이 TV쇼를 이어갈 필요도 없다. 최 평론가는 “실제로 이전보다 가수 특집쇼 횟수가 줄어들고 있다. 결국 명절 예능은 인기 예능의 재방송 시간으로 굳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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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의 2024 추석특집 편성표. 사진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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