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1000년전 고려 개 되살렸다…"반려동물 메카" 임실의 꿈, 오수개[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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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 고장' 전북 임실…1996년 문 열어

지난 9일 오후 3시 의견(義犬)의 고장 전북 임실군 오수면 오수개연구소. '출입 제한' 현수막이 걸린 건물 안쪽으로 들어서자 '컹컹' 개 짖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사육장·운동장에 있던 오수개들이 불청객을 보자 일제히 경계 태세로 돌변했다.

오수개연구소 이정현(36) 기획연구팀장은 "조금 전 방역을 마쳤다"며 "아무리 소독을 잘해도 외부인이 들어오면 면역력이 떨어지거나 심장사상충 등 질병에 걸릴 수 있기 때문에 평상시 일반인에게 연구소를 공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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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전북 임실군 오수면 오수개연구소 내 오수개 사육장. 김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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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개 UN 식량농업기구 품종 등재

1996년 문을 연 민간 단체인 오수개연구소는 임실군 보조를 받아 현재 오수개 약 70마리(민간 위탁 20마리 포함)를 사육 중이다. 이 팀장 등 직원 2명이 오수개 육종·관리 등을 하고, 전담 수의사도 2명 있다고 한다. 목욕·건조 등 위생 시설도 갖췄다.

연구소에 최근 경사가 생겼다. 오수개가 지난 6월 유엔(UN) 식량농업기구(FAO)가 운영하는 가축다양성정보시스템(DAD-IS)에 '대한민국 개 오수개(Osugae)' 품종으로 새로 등재되면서다. 이로써 현재까지 가축다양성정보시스템에 등재된 한국 개는 오수개를 포함해 진도개·제주개·동경이·불개·삽살개(삽살개·고려개·바둑이)·풍산개 등 모두 7개 품종(9계통)이 됐다.

국립축산과학원 가축유전자원센터 김승창 연구사는 "오수개가 토착 재래종은 아니지만, (오수개연구소가) 문헌을 바탕으로 티베탄 마스티프라는 견종을 들여와 한국 환경에 맞게 오랜 세대에 걸쳐 육종했다"며 "이에 국립축산과학원은 오수개를 지역 적응 품종으로 인정, 전문가 심의 등을 거쳐 우리나라 고유 자원으로 등재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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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개연구소가 1000여 년 전 실존했던 고려개를 근간으로 2008년 복원한 오수개 '다롱이'. 사진 오수개연구소

"1000년 전 고려개 근간…2008년 복원" 

주인을 구하고 죽은 오수개 이야기는 고려시대 문인 최자가 1254년에 쓴 『보한집』에 수록됐다. 973년 김개인이란 사람이 집에서 키우던 개와 외출해 술을 먹고 귀가하다가 숲에서 잠들었는데, 갑자기 들불이 번지자 개가 근처 냇가를 수백 번 왕복하며 몸에 적신 물로 불길을 막아 주인을 살렸다. 잠에서 깬 김개인이 몹시 슬퍼하며 죽은 개를 땅에 묻고 갖고 있던 지팡이를 꽂았다. 이 지팡이가 나중에 커다란 나무가 됐다. 개 오(獒)와 나무 수(樹)를 합한 지명 '오수'가 여기서 유래했다는 게 연구소 설명이다.

오수개 연구는 1995년 '오수 의견의 뿌리를 찾자'는 주민 서명 운동이 계기가 됐다. 오수개의 정확한 형태를 몰라 이전에 세운 의견 석상·동상은 진도개·셰퍼드·삽살개 모양을 본떴다고 한다. 이에 오수개연구소는 1000여 년 전 실존했던 고려개를 근간으로 2008년 오수개를 복원했다.

한홍률 서울대 수의대 명예교수와 윤신근 한국동물보호연구회장(수의사) 등 전문가를 주축으로 3차례에 걸쳐 복원·육종 사업을 추진한 끝에 '다롱이(암컷)'를 오수개 기본형으로 제정·선포했다. 연구소는 오수개 복원 이후 새끼를 계속 낳아도 똑같은 모양을 유지하는 '유전적 고정률'을 높이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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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개연구소 내 운동장에 있는 오수개. 김준희 기자

"경비견·보호견 역할 충실" 

연구소에 따르면 오수개 눈은 황금빛에 아몬드 형태다. 귀는 역삼각형이고, 털은 주황색이다. 꼬리는 공작처럼 말려 올라갔다. 성품은 충직하고 독립심·경계성이 강해 집을 지키는 번견(番犬)이나 경비견, 가축 보호견, 가드견(사람 지키는 개) 역할에 충실하다고 한다.

이 팀장은 이날 4살 오수개 암컷 '거령(설화 속 김개인 고향 옛 이름)'을 데리고 현재 공사 중인 반려동물 지원센터(오수반려누리) 주변을 산책했다. 대학에서 반려동물을 공부한 뒤 2013년부터 연구소에서 일한 이 팀장은 "기초 사회화 훈련으로 사람과 친해지는 연습"이라며 "오수개는 경찰견처럼 '엎드려' '물어 와' 등 강압적인 훈련은 싫어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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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오수개연구소 이정현 기획연구팀장이 4살 오수개 암컷 '거령'과 함께 반려동물 지원센터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센터 앞에 지난달 29일 제막식을 한 '오수개 UN FAO 품종 등재' 기념비가 있다. 김준희 기자

임실군 "국제적인 반려동물 도시 조성" 

임실군은 지난달 29일 반려동물 지원센터에서 '오수개 UN FAO 품종 등재' 기념비 제막식을 열었다. 심재석 오수개연구소 운영위원회 회장은 "오수개 품종 등재로 오수의 역사성·정체성이 확보됐다"며 "임실군이 추진하는 반려동물 프로젝트에 오수개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임실군은 국내 유일한 공공 반려동물 장례식장인 오수 펫 추모공원을 비롯해 ▶반려동물 지원센터 ▶반려동물 특화농공단지 ▶세계 명견 테마랜드 ▶반려동물 캠핑장 등을 연계한 반려동물 클러스터를 조성 중이다. 2026년까지 408억 원을 들여 오수면 오수리 일대 24만㎡를 반려동물 산업·관광·교육 거점으로 만들기로 했다.

이와 함께 임실군은 전북 민속자료 1호인 오수 의견비를 국가유형문화재로 승격하고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할 방침이다. 심민 임실군수는 "임실을 전 세계 반려인이 찾는 국제적인 반려동물 친화 도시로 만들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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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전북 임실군 오수면 오수개연구소 이정현 기획연구팀장이 4살 오수개 암컷 '거령'을 데리고 연구소 주변을 산책하고 있다. 김준희 기자

▶가축다양성정보시스템이란
농촌진흥청(청장 조재호)은 지난 7월 3일 "국내에서 보존·육종한 가축 11축종(가축 종류) 32자원(품종·계통)을 국제연합(UN) 식량농업기구(FAO)가 운영하는 가축다양성정보시스템(DAD-IS)에 새로 등재했다"고 밝혔다. 가축다양성정보시스템은 세계 각국 고유 가축 유전자원의 보존·관리 및 활용을 지원하는 국제 시스템이다. 현재 199개 나라 39축종 1만5188계통의 정보가 등재돼 있다.

동물 유전자원의 접근 및 이익 공유(ABS)를 위한 범지구적 정보 공유 체계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국제연합 식량농업기구 식량농업유전자원위원회(CGRFA)는 각 나라의 국가조정관에게 해당 나라의 품종 정보를 갱신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한국은 국립축산과학원장이 국가조정관으로서 등재 자원 모집, 심의회 개최 등 신규 자원 등록 업무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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