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질질 끄는 재판, 사법불신 원인"…조희대가 칼 뺀 까닭 [사법부, 시간과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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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지는데도 법원이 지키지 못해 국민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2023년 12월 11일 취임사)
“신속한 재판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에서 긍정적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9월 13일 법원의 날 기념사)
지난해 12월 취임부터 재판 지연 해소를 지상 과제로 꼽았던 조희대 대법원장이 9개월 만에 사법부 구성원의 심기일전과 성실한 업무 수행을 칭찬하면서 ‘긍정적 변화’를 언급했다. 조 대법원장은 국회 인사청문위 답변부터 사법부의 가장 시급히 해결할 문제로 “법원의 사건이 적체되고 재판이 지연되는 현상”을 꼽으며 ‘조희대 코트’의 최대 화두로 삼았다.
조 대법원장이 임기 중 최대 과제로 삼은 이유는 재판 지연이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해 국민의 사법 불신의 원인이 될 정도로 심각해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피고(인)에 따라 재판 기간이 다르다는 인상을 줄 경우 공정한 사법부란 기본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형사사건뿐만 아니라 경제적 이해관계가 걸린 민사사건 지연은 더 심각하다. 민사합의 사건 1심 평균처리기간은 2017년 293.3일에서 지난해 473.4일로 60% 넘게 늘어났다. 소송 과정에서 당사자들이 겪는 고통이 커졌고, 판결을 기다리는 사이 회사가 파산하거나 당사자가 사망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원장의 최대 관심사는 줄곧 재판 지연 해소”라며 “행정처에서도 최우선 과제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조 대법원장 이전 대법원장들은 이른바 사법개혁을 숙원 과제로 내세우곤 했다. 최종영 전 대법원장(1999~2005년) 시절 공판중심주의, 로스쿨 도입 등 의견 대립이 첨예한 변화들을 궤도에 올려놓는 게 요구됐다. 시스템 전산화도 이 시기 이뤄졌다. 최 전 대법원장은 사법부에 대한 국민 신뢰 구축을 강조했는데, 본인부터 구설에 휘말리지 않도록 혼자 구내에서 점심을 먹는 걸로 유명했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2005~2011년) 역시 ‘불구속 재판 원칙 확립’을 임기 중 밀어붙였다. 당시 법원이 “구속은 재판 절차일 뿐 형벌이 아니다”라며 론스타 수사 등에서 줄줄이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영장 기각으로 수사를 방해한다”고 반발하는 검찰과 갈등을 겪기도 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2011~2017년)의 대법원 사건 적체 해결을 위한 ‘상고법원 도입’이었다. ‘상고법원’은 대법원과 고등법원 사이에 비교적 단순한 사건의 3심을 맡는 상고사건 전담 법원을 신설해 대법원이 미국 연방대법원처럼 사회적으로 중대 사건에 집중할 수 있게 하자는 게 취지였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은 상고법원 도입의 박근혜 정부 지지를 얻으려 강제징용 등 재판을 지연시켰다는 이른바 ‘재판 거래’ 혐의로 구속기소됐고, 이후 5년간 재판 끝에 지난 1월 1심에서 47개 혐의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같은 ‘사법농단’ 의혹이란 태풍 속에 취임한 김명수 전 대법원장은 ‘사법 민주화’를 내걸었다. 그는 취임 첫날부터 ‘사법부 블랙리스트’ 추가 조사를 결정했고, 취임 1년 뒤엔 임기 내 사법 행정권을 내려놓겠다며 법원행정처 폐지를 약속하면서 행정처 근무 법관을 3분의 1로 축소했다. 임기 중 ‘법원장 후보 추천제’와 ‘고법부장 승진제 폐지’를 도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승진제 폐지 이후 법관들에게 열심히 일할 유인을 약화시켰고, 현재의 재판 지연 사태를 초래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이 시기 닥친 코로나19도 재판 지연을 가속화했다. 수도권의 한 20년 차 변호사는 “고법부장 승진제를 없애버린 후 재판부가 4~5주 안에 선고할 것도 두 달 뒤로 미뤄버린다”며 “판사들에게 법원이 오로지 하나의 직장이 돼버렸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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