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돈 더 준다고 출산율 안 올라"…매년 불붙던 지원금 제동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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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단체가 ‘억 소리’가 날 정도로 많은 현금을 주는 저출산 대책 확대에 제동을 걸고 있다. 출산지원금 등 현금성 지원이 출산율 감소세를 잠시 완화하거나 반등하긴 했지만, 그 효과가 지속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자치단체마다 앞다퉈 현금성 지원을 늘리는 ‘과도한 출혈 경쟁’은 장기적으로 인구 뺏기로 귀결되거나 재정 부담을 초래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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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베페 베이비페어를 찾은 시민들이 판매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뉴스1

“불필요한 경쟁 그만”…현금지원 상한제 도입

경남도는 이번 달부터 ‘시군별 현금지원 인구정책’에 상한제를 도입하려고 각 시·군과 논의 중이다. 시장·군수정책회의를 거쳐 올해 안에 상한액을 확정하고 내년 상반기에 시행할 계획이다. 도 단위에서 현금성 지원의 상한액을 정하는 광역단체는 경남도가 처음이다. 매년 현금 지원 규모는 늘었는데, 출산율 하락세는 꺾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26일 경남도에 따르면 경남 18개 시·군의 출산·양육·결혼·전입 지원금 재정 규모는 2014년 176억원에서 지난해 254억원으로 44% 증가했다. 올해는 330억원으로, 2014년 대비 2배 가까이 커졌다. 반면, 같은 기간(2014~2023년) 합계출산율은 1.4명에서 0.8명으로 감소했다. 전국적으로도 출산·양육지원금이 2103억원에서 5735억원으로 172% 올랐지만 합계출산율은 1.2명에서 0.7명으로 40%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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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국 경남도 교육청년국장이 지난 10일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저출생 극복 인구 위기 대응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경남도

이에 경남도는 상한액을 정해 지원금이 계속 오르는 걸 막겠다는 취지다. 도 관계자는 “시·군 간 불필요한 낭비성 경쟁이 과열돼 조정이 필요했다”고 했다. 이어 “결과적으로 지방 재정 부담도 가중한다”며 “이를 조정해 관련 예산을 긴급·틈새 돌봄 등 보육이나 출산 건강관리 서비스 등 지역별 현장 중심의 시책에 투입해 정책 실효성을 높이려 한다”고 했다.

“정부가 현금 지원액 통일해달라” 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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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지난 5월 도청에서 저출생 극복을 위한 과제 실행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경북도

경북도 역시 같은 판단이다. 앞서 경북도가 도내 22개 시·군을 조사한 결과, ‘출산지원금을 시·군별로 차등 지급하는 게 부적합하다’는 의견이 82%(18개 시·군)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적절한 지급 방법으로 ‘전국 동일 지급’을 꼽았다. 시·군 현장에서는 ‘과도한 경쟁’을 우려해서다.

이 때문에 경북도는 지난 5월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현금성 지원 대상과 적정 금액을 정부에서 통일해줄 것을 건의했다. 경북의 한 기초단체 관계자는 “현금성 지원은 국가에서 일괄 지급하고 지역에서는 현장 요구에 맞는 돌봄 기반과 서비스를 신속히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현재 경북도는 정책 방향을 현금 지급보다 지역별 특색 있는 돌봄 기반‧서비스 확충 등으로 잡았다. 해외 사례를 봐도, 독일은 중앙정부가 만 18세까지 아동수당을 지급하고 지방정부는 돌봄·양육 서비스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도 기본수당·보육료 지원 등 현금지원 정책은 중앙정부가 주도하고 지방은 돌봄 서비스 지원에 중점을 둔다.

‘더 늘리자 vs 못 늘린다’…도 사업 불참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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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충북지사(왼쪽)과 이범석 청주시장. 연합뉴스

현금성 지원을 확대하려는 광역단체와 이를 거부하는 기초단체가 갈등을 빚기도 한다. 지난달 새로 도입된 저출산 대책을 두고, 충북도와 청주시가 충돌한 게 대표적이다. 충북도의 신규 현금성 지원 사업에 청주시가 “예산이 부담된다”며 불참하면서다.

충북도는 ▶결혼비용 대출이자 지원 ▶임신·출산 가정 대출이자 지원 ▶다자녀가정 지원(5명 이상) 사업 등을 추진 중이다. 이는 도비와 시·군비를 매칭한 사업으로 각 50대50(결혼비용, 임신·출산), 40대60(다자녀) 비율로 도와 시·군이 예산을 부담한다. 충북 11개 시·군 중 청주시만 이 사업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충북 인구(159만명)의 53.4%가 사는 청주시 분담 비율이 전체 시·군 중 가장 높기 때문이다.

충북도에 따르면 3개 사업을 정상 추진하면 올해 예산 18억6000여 만원이 들어간다. 이 중 청주시가 차지하는 비율은 70%(12억9000여 만원)에 달한다. 청주시는 지난해 5월부터 충북도가 시행한 ‘출산양육수당’만으로도 버겁다고 한다. 이는 출산가정에 6년간 1000만원을 주는 사업이다. 지난해 출산양육수당으로 집행된 예산 218억원 중 청주시가 139억원(63.7%)을 냈다. 올해(1~8월)도 58억원 중 36억(62%)이 청주시 몫이었다.

“기존 사업도 버거워”…전문가 “정부가 조정해야”

청주시 관계자는 “다른 광역단체는 시·군 재정여건을 고려해 도 분담비율을 70~80% 이상까지 높여가는 추세”라며 “충북도가 예산 부담이 가장 큰 청주시와 제대로 된 협의 없이 신규 사업을 자꾸 내려보내고 있다”고 토로했다. “각종 현금성 지원금이 연차별로 누적됨에 따라 예산 부담은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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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서울 시내 한 산후조리원 신생아실에서 간호사 등 관계자들이 신생아들을 돌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혜진 경남연구원 사회문화연구실 연구위원은 “과도한 지원금 격차는 ‘제 살 뜯어먹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은 “기초단체 처지에선 1명이라도 더 데려오고 출산하는 게 사활이 걸린 문제이니 경쟁이 붙을 수 있다”며 “출산·양육 부담을 줄이는 현금성 지원은 필요한 정책이다. 다만, 소모성 경쟁으로 행정 비용이 낭비될 수 있으니 정부나 광역 단체 차원에서 원칙을 정해 조정해줘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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