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이란 왜 잠잠하지? "돈도 없고, 자칫 참전했다간 제재 길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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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이란 테헤란에서 이란 여성이 이날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숨진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의 초상화를 들고 이스라엘의 공격을 규탄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스라엘이 친이란세력을 대상으로 무력 공격을 쏟아붓는 가운데 정작 반(反)이스라엘 세력 ‘저항의 축’의 맹주 이란이 행동에는 나서지 않고 있다. 이란이 보복을 외치면서도 참전 등에는 선을 긋는 배경에는 오랜 제재로 극심해진 경제난, 명분과 실리로 분열된 내부 갈등 등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이스라엘을 상대로 한 전면전을 감당할 여력이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깔렸다는 분석이다.

이스라엘은 레바논 친(親)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를 암살한 데 이어 1일(현지시간) 18년 만에 레바논 국경을 넘어 지상전에 돌입했다. 헤즈볼라는 이란이 가장 공을 들여 지원한 저항의 축의 ‘맏아들’ 이다.

하지만 나세르 카나니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이날 “(헤즈볼라 등이) 공격에 맞서 자신을 방어할 역량과 힘이 있다”며 “레바논에 추가 또는 자원 병력을 배치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직접 개입에는 선을 그은 셈인데, 앞서 나스랄라 암살 직후 아야톨라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도 “레바논과 헤즈볼라 지원에 나서는 것은 모든 무슬림의 의무”라면서도 “이 지역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헤즈볼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내부적으로는 격렬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외신들에 따르면 사이드 잘릴리 전 외교차관을 비롯한 강경 보수파는 이스라엘이 이란 본토까지 노리기 전에 이스라엘을 타격해 억지력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항의 축 구성원들의 굴욕을 이란이 방치하면 이란을 구심점에 둔 네트워크 운용 동력이 훼손될 거란 우려도 한다.

이미 이란은 지난 7월 31일 하마스 정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테헤란에서 암살된 후 3달 가까이 대(對)이스라엘 보복을 참았다. 명분은 충분하지만 행동에 나서지 않은 데 대해 미국 싱크탱크 퀸시연구소의 트리타 파르시 부소장은 “이 시점에서 이란이 반응하지 않는다면 다른 (저항의 축) 파트너의 신뢰가 무너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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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반면 온건 성향의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 측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파 놓은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며 ‘전략적 인내’를 유지하자는 입장이다. 여기엔 현실적 이유가 크다. 이미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경제 제재로 오랫동안 경제가 악화된 이란으로선 대규모 전쟁을 치를 여유가 없다. 이스라엘을 공격할 경우 이스라엘과 미국의 반격을 이란의 국가기간시설이 감당할 수 없다는 우려가 실존한다. 전쟁에서는 무기 조달 뿐 아니라 물자 보급 등이 승패를 가르는데, 이미 쪼그라든 이란 경제로 원활한 작전이 가능할지도 장담할 수 없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는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미국과의 핵협상을 통한 경제제재 해제를 최우선 과제로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됐는데 이스라엘과의 전쟁으로 이 목표를 물 건너가게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에 대한 실질적 보복 수단이 마땅치 않은 점도 이란이 망설이는 이유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헤즈볼라는 이란이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을 억제하기 위해 키운 핵심 수단이었는데, 헤즈볼라가 도리어 위기에 처하며 이란으로선 오히려 수세에 처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스라엘 본토를 향한 미사일 공격은 지난 4월처럼 미국·이스라엘·아랍 국가에 의해 요격된다면 도리어 더 큰 비난에 휩싸일 수 있다”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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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AFP=연합뉴스

미국도 이스라엘의 행동을 사실상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은 “미국은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의 공격 인프라를 해체해야 할 필요성에 동의했다”며 지상군 투입에 지지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스라엘의 지속적 ‘패싱’에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희수 명예교수는 “대선을 앞두고 중동에서 확전은 바이든 행정부로선 최악의 시나리오지만, 그렇다고 유대계 유권자를 의식해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을 적극적으로 막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현재로선 이란의 군사행동을 억제하면서 이스라엘의 작전 범위를 최대한 제한해 조기 휴전을 이루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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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의 탱크가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접경지역에서 이동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란과 미국의 이런 전략적 딜레마를 이스라엘은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양새다. 이란이 쉽사리 보복하지 못할 것이란 전제 하에 헤즈볼라가 레바논 남부에 배치한 라드완 특수부대 시설을 초토화할 생각이다. 이를 통해 지난해 10월 하마스 테러와 같은 본토 공격을 다시는 용납하지 않을 뿐 아니라 기회가 된다면 헤즈볼라 궤멸을 비롯한 저항의 축 세력 약화를 노리고 있다. 성일광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는 “저항의 축의 가장 큰 세력인 헤즈볼라가 흔들린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예멘 후티 반군이나 이라크·시리아 친이란 민병대의 공격도 크게 두렵지 않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네타냐후, 하메네이 암살 시도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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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 지도자. AFP=연합뉴스

나아가 이스라엘이 이란을 더 자극할 우려도 제기된다. 인남식 교수는 “이미 하니예 암살을 통해 이란 내 공작에 성공한 네타냐후는 이란이 전략적 인내를 지속할 경우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나 하메네이의 최측근을 암살할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이란으로서도 전쟁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무기력한 상황에 빠진 이란이 최후의 억지력 확보 수단인 핵무기 개발에 속도를 낼 수 있다는 ‘풍선 효과’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레바논과 가자지구의 대리인들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으면서 이란 지도부는 더 강력한 정권 유지 수단 확보를 위해 핵 개발에 몰두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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