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LG전자 '이상한 실험'…실리콘밸리도 신기해했다, 자회사 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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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주 산타클라라에 위치한 LG전자 북미이노베이션센터(LG NOVA)에서 이석우 LG노바 센터장(부사장)이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이희권 기자

“LG전자가 요즘 실리콘밸리에서 하고 있는 일을 설명했더니 처음엔 모두가 의아해하더라고요. 실리콘밸리에도 이런 실험을 하는 곳이 그동안 없었던 겁니다. 이제 재밌는 일이 벌어질 거예요. 올해부터 LG 자회사가 매년 하나둘씩 쏟아질 겁니다.”

미국 실리콘밸리엔 제2의 엔비디아·애플·메타를 꿈꾸는 스타트업들과 이들의 꿈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VC)이 밀집해 있다. ‘가전 제조사 너머’를 모색하던 LG전자는 2020년 이곳에 전략적 투자 전담 조직 북미이노베이션센터(LG NOVA)를 열고 ‘이상한 실험’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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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민 기자

통상 벤처투자 시장에서 VC는 여러 스타트업에 투자해 기업가치가 오르면 지분 매각 등을 통해 수익을 내고, 대기업 산하 VC인 CVC는 모회사의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낼 만한 스타트업을 찾아 투자한다.

그러나 LG노바의 운영 방식은 이들과는 180도 다르다. 처음부터 내부에서 사업체를 육성해 자회사 형태로 독립시키는 일종의 컴퍼니 빌더다. 분사 과정에서 외부 투자를 받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초기 사업개발을 주도한 LG노바 소속 전문가들이 사업의 주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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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 주 산타클라라에 위치한 LG전자 북미이노베이션센터(LG NOVA). LG노바는 전사 관점의 미래 준비를 위한 새로운 사업모델 발굴 및 글로벌 스타트업과의 협력을 목적으로 지난 2020년 설립됐다. 실리콘밸리=이희권 기자

LG노바를 이끌고 있는 이석우 센터장(부사장)은 지난달 23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에서 중앙일보와 만나 “우린 회사를 발굴하는 게 아니라 ‘개발’하는 일을 한다”라고 소개했다. 그는 “LG가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새로운 사업을 찾는 것이 목표”라며 “기존 스타트업에 투자해 이익을 내는 데엔 관심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 센터장은 사물인터넷(IoT) 전문가다. 스타트업 밀레니얼넷을 창업했고, 백악관 이노베이션 펠로우와 국립표준기술원(NIST) 부국장을 역임했다. 그런 그가 LG전자에 합류하겠다고 하자 주위에서 우려가 많았다고 한다.

이 센터장은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이라 두려움이 없진 않았다”다면서도 “남들이 하는 것처럼 기존 스타트업에 투자를 하거나 인수·합병을 통해 이익을 내는 게 아니라, 직접 실리콘밸리에서 회사를 만들어 키워보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LG노바가 주목하는 영역은 헬스케어·클린테크 등 LG전자의 기존 주력 사업과는 거리가 멀다.

언뜻 보기에 무모한 실험은 LG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어 가능했다. 이 센터장은 “조주완 LG전자 CEO 등 주요 경영진이 고민 끝에 ‘한 번 탐색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길’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전폭적인 지원을 해줬다”면서 “솔직히 한국의 대기업 문화를 생각하면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전향적으로 기회를 주고 있어 놀랍다”라고 말했다. LG노바 밑에서 초기에 사업을 개발하던 리더들은 분사후 해당 기업을 이끄는 최고경영자(CEO)로 변신한다. 이 센터장은 “현재 사업 개발 중인 CEO 후보가 LG노바에만 10명 이상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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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 주 산타클라라에 위치한 LG전자 북미이노베이션센터(LG NOVA). LG노바는 전사 관점의 미래 준비를 위한 새로운 사업모델 발굴 및 글로벌 스타트업과의 협력을 목적으로 지난 2020년 설립됐다. 실리콘밸리=이희권 기자

물론 다른 스타트업과의 협업도 필수다. 사업 협력·지분 교환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찾다보면 자회사의 가치도 더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스타트업 관계자와 투자자·기업가 등이 한자리에 모이는 이노베이션 페스티벌을 2021년부터 개최하고 있다. 지난달 25일부터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올해 이노베이션 페스티벌에는 LG화학도 동참해 함께 혁신 스타트업 발굴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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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26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LG전자 북미이노베이션센터(LG NOVA) 이노베이션 페스티벌에서 스타트업 관계자들이 자사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 LG전자

최근 LG노바는 생태계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파트너 얼라이언스 프로그램을 출범해 다른 글로벌 대기업들과 협업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IBM, 현대차그룹 스타트업 허브 ‘현대 크래들’, ‘포켓몬고’ 개발사 나이언틱, 미국 메이오 클리닉, 일본 후지쯔리서치 아메리카 등이 참여한다. 또, LG노바가 제2의 거점으로 진출한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와 투자 펀드를 조성해 5년간 7억 달러(약 9200억원)를 스타트업 육성에 투입할 계획이다.

설립 5년차인 LG노바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매년 1~2개씩 새로운 자회사를 배출할 예정이다. 이 센터장은 “LG전자를 거대한 항공모함에 비유한다면 LG노바는 앞에서 항로를 탐색하는 고속함과 같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1호 자회사인 스타트업 ‘프라임포커스 헬스’가 분사했다”면서 “앞으로 많은 실패가 있겠지만 결국 미래에 조(兆) 단위 기업 가치를 인정받을 LG의 유니콘은 여기서 나올 것”이라 말하며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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