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대통령상 받은 곳마저…"추억 못 지켜 죄송" 줄폐업 동네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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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에 있는 64년 된 헌책방 '소문난 서점'은 최근 폐점 위기에 처했다. 이 곳에 보관된 고서와 역사서 등 서적은 30만 권이 넘는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수십 년 동안 지역을 지켜온 서점들이 경영난을 버티지 못하고 존폐 위기에 섰다.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텍스트힙(Text hip·활자 인쇄물을 읽는 것을 멋으로 여기는 유행)’ 열풍이 불고 있지만 오랜 서점이 사라지는 큰 흐름을 막진 못하는 모양새다.

대전의 마지막 남은 향토 서점이었던 계룡문고는 지난달 27일 폐업 소식을 알렸다. 서점 측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예고 없이 급작스럽게 영업을 종료하게 됐다. 계룡문고를 끝내 지키지 못하고 문을 닫은 점을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글을 썼다. 지난 1996년 대전 중구에 처음 문을 연 지 29년 만이다.

이동선 계룡문고 대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계룡문고가 대전 지역 향토서점으로 버텨왔다”며 “무엇보다 아이들이 친구들과 함께한 즐거운 공간을 끝내 지키지 못해 추억을 송두리째 빼앗아버린 것 같아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이어 “부디 계룡문고에서 책과 함께 한 경험을 마중물 삼아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하길 소망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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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마지막 남은 향토서점인 계룡문고가 지난달 27일 경영난에 문을 닫았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계룡문고는 학생 견학 프로그램과 북콘서트 등 여러 행사를 진행하며 지역 독서 문화를 이끌었다는 평을 받았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2022년 이 대표는 대한민국 독서대전에서 대통령상 표창을 받기도 했다.

폐업 소식이 전해지자 주민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대전에 사는 장모(23)씨는 “2년 전부터 건물 임대료·관리비도 못 냈다는 소식에 마음 아팠다”며 “서점을 지키기 위해 대표님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대전 토박이라면 모를 수 없다. 행복한 어린 시절의 추억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조모씨는 “서점에 놀러 온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시던 대표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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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대전 계룡문고에서 열린 전시회에 아이들이 참석한 모습.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경남 진주의 64년 된 책방인 ‘소문난 서점’도 폐점 위기에 처해있다. 진주고속버스터미널 2층에 위치한 이 책방엔 고서와 역사서를 비롯해 30만여 권의 책이 있다고 한다.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서점은 호황을 누렸지만, 온라인 서점 판매가 활발해지면서 경영 위기를 겪었다.

적자에 시달리던 책방은 지난 7월 임대 계약 기간을 끝으로 문을 닫을 처지에 놓였다가, 고속버스터미널 측이 임대료를 삭감해주면서 명맥을 잇고 있다. 책방을 운영하는 유미순(76)씨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책들이 폐점으로 폐기처분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진주시에서 운영하는 박물관이나 도서관에서 이를 인수해 관리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프라인 서점이 온라인 서점과의 가격 경쟁에서 지고 폐점 수순을 밟는 건 오래된 현상이다. 하지만 대형 서점이 별로 없는 지방에서 버티던 향토 서점들도 끝내 사라지는 추세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 따르면, 전국 기초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서점이 한 곳도 없는 지역은 무주·순창·장수·임실 등 총 10곳에 달한다. 지난해 국내 서점 수는 2484개로, 2005년(3429개) 대비 1000여 곳 줄었다. 수도권 등을 중심으로 중소 형 독립 서점이 늘어난 걸 감안하면 군 단위 지역의 일반 서점들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책 읽는 국민 수도 매년 감소하는 추세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3 국민 독서실태조사’ 결과, 지난해 종이책을 한 권 이상 읽은 성인은 10명 중 3명에 불과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텍스트힙 유행은 인문·사회과학 등 책을 읽는다기보다 개성을 표출하는 수단 중 하나로 소비되는 측면이 있다”며 “젊고 신선한 독립 서점을 찾는 사람은 늘고, 고서 등을 보유한 서점은 찾지 않는 서점 간 양극화 현상도 나타난다”고 말했다.

정부는 국민독서문화증진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실효성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올해는 관련 예산이 59억8500만원 상당 삭감됐다. 조주현 한국서점조합연합회 종로서점조합장은 “서울시에선 중고 서점에 대한 물리적 공간 지원을 하고 있지만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지자체별로 온라인 판매 플랫폼을 형성하는 등 활성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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