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범 고려아연 회장(左), 장형진 영풍 고문(右). 뉴스1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등 최씨 일가가 출자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 제리코파트너스가 7일 이사회를 열고 영풍정밀 공개매수가를 올리는 방안을 논의한다. MBK파트너스·영풍이 지난 4일 공개매수가를 3만원으로 올린데 대한 대응책이다. 이날 이사회에서 최씨 일가가 3만원 초·중반대로 공개매수가를 올리고 인수 물량도 늘릴 가능성이 높다고 시장은 보고 있다.

고려아연의 계열사인 영풍정밀은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서 중요한 회사다. 고려아연 지분 1.85%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 회사를 누가 확보하느냐에 따라 상대방의 의결 지분을 낮추는 효과도 있다. MBK파트너스·영풍은 지난달 13일 2만원으로 영풍정밀 주식 공개매수를 시작했다. 26일 2만5000원으로 올렸고, 지난 2일 최씨 일가가 3만원으로 대항공개매수에 나서자 MBK·영풍도 지난 4일 공개매수가를 3만원으로 올렸다. 영풍정밀 주가는 3만1850원(4일 종가)으로 이미 양측의 공개매수가를 넘어섰다.

이번주에도 최 회장 측(고려아연)과 MBK·영풍의 ‘쩐의 전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고려아연이 지난 2일 자사주 공개매수가를 83만원으로 제시하자, MBK·영풍도 4일 같은 가격으로 끌어올렸다. MBK·영풍의 공개매수가 조정으로 공개매수 기간은 오는 14일까지로 연장됐다. 앞으로 시간이 남은 만큼 양측이 공개매수가를 더 높일 가능성은 남아있다.

특히 세금 문제 때문에 고려아연이 공개매수가를 올릴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MBK·영풍이 진행하는 일반 공개매수에 청약하면 0.35%의 증권거래세와 거래차익의 22%를 양도소득세로 내면 된다. 고려아연의 자사주 취득 공개매수는 배당소득세가 적용돼 금융소득이 연 2000만원을 넘어서면 최고 세율이 49.5%에 달할 수 있다. 같은 공개매수가라고 하더라도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가 세금 면에서 불리한 것이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 박기덕 고려아연 사장이 2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에서 열린 영풍과 MBK와의 경영권 분쟁 관련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쩐의 전쟁’이 계속될수록 양측의 자금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고려아연은 공개매수신고서에 공개매수 ‘실탄’으로 투입한다고 공시한 자기자금 1조5000억원에 사모사채 발행액 1조원을 포함했다. 금융감독원의 ‘기업공시 실무안내’에선 주식 취득자금 조성 내역을 공시할 때 ‘자기자금’과 ‘차입금’을 구분하도록 하고 있다. 사모사채 발행액은 차입금인데 자기자금으로 기재한 것이다. 고려아연이 차입 부담이 큰 것을 의식해 이렇게 기재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양측 모두 빚으로 ‘실탄’을 끌어오고 있어 경영권 분쟁에서 승리하더라도 승자의 저주를 피하긴 힘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양측은 명분 대결에서도 더욱 각을 세우고 있다. 고려아연은 보도자료를 내고 “고려아연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이 성사되면, 국내 반도체 산업에 막대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MBK·영풍의 공개매수에 반대하는 고려아연 노조의 파업과 핵심 기술인력의 이탈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공급되는 황산 생산에 차질이 불가피해질 것이라는 게 고려아연 측의 주장이다. 영풍정밀은 MBK·영풍 연합에 대해 “MBK에만 일방적인 이익을 주고 영풍에게는 상당한 손해를 끼치는 배임적 계약”이라며 경영협력계약 이행을 금지하는 가처분 신청을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했다.

MBK는 보도자료를 내고 글로벌 독립 투자 리서치 플랫폼인 ‘스마트카르마’가 최 회장의 자사주 공개매수에 대해 “고려아연의 재무구조에 더 큰 리스크를 부과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전달했다.

한편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된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 최윤범 회장은 7일 열리는 국감에 모두 불출석 의사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