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모래 황무지 적시는 ‘신의 물방울’...40년 역사 中 닝샤 와인의 도전[이도성의 본 차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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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8일 중국 닝샤후이족자치구 인촨시 샤무 와이너리 직원들이 와인용 포도를 수확하고 있다. 사진 샤무와이너리

"올해 포도는 신맛이 좋아 더욱 우아한 와인이 될 것 같다."

지난달 18일 중국 닝샤(寧夏) 후이족자치구 인촨(銀川)시에 위치한 샤무(夏木) 와이너리의 포도밭에선 비오니에와 피노누아 품종 포도 수확이 한창이었다. 작업자들이 손수 딴 탱글탱글한 포도알은 양조장으로 옮겨져 숙성 과정을 거친 뒤 와인으로 거듭난다.

농장주인 장파이(張湃)는 “예년보다 비가 많이 내려 일찍 수확을 시작했다”면서 “최근 몇 년보다 상태가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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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닝샤후이족자치구 인촨시 샤무와이너리에서 재배한 와인용 포도. 사진 샤무와이너리

이 포도밭은 허란산(賀蘭山) 동쪽 기슭에 자리한다. 닝샤와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사이 남북으로 300㎞ 가량 뻗은 허란산은 고비 사막 가장자리의 황무지다.

모래와 자갈을 캐던 벌거숭이산은 1980년대 들어 새로 태어났다. 풀 한 포기 나기 힘든 척박한 기후가 오히려 포도알을 살찌우는 천혜의 환경이었다. 허란산이 매서운 사막 바람을 막아주는 동쪽 기슭은 연간 3000시간이 넘는 누적 일조량, 200㎜가 안 되는 적은 연간 강수량에 해발고도(1100m)와 위도(북위 38도)까지 포도의 생육에 적합한 조건을 다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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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닝샤후이족자치구 인촨시 한 포도밭 뒤로 허란산이 보인다. 이도성 특파원.

와이너리가 있는 곳에 길이 생긴다

1984년 태동한 닝샤의 ‘보랏빛 꿈’은 40년 동안 무럭무럭 자랐다. 지난 한 해 무려 1억 4000만 병에 달하는 와인이 쏟아졌다. 포도밭 면적이 총 401㎢(축구장 6만 2000개 규모)에 이른다. 와이너리를 중심으로 도로가 닦이고 전선이 깔렸다. 동쪽으로 흐르는 황허(黃河)의 물은 젖줄이 됐다. 허란산 일대에서 펼쳐진 기적은 TV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기자는 지난 8월 닷새간 '중국의 보르도'로 불리는 허란산 동쪽 기슭을 방문했다. 현재까지 조성된 와이너리는 모두 200여 곳이다.  기자가 찾아간 샤무 와이너리는 비료·농약을 쓰지 않는 친환경 농업으로 길러낸 포도를 천연 발효 방식을 통해 와인으로 빚고 있다. 건축가 출신인 장파이는 와인 저장고를 바람이 잘 통하는 피라미드 구조로 설계했다. 그는 샤무 와이너리의 와인을 “중국 전통의 자연농업으로 가장 사실적인 자연의 향기를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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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닝샤후이족자치구 인촨시 샤무와이너리의 천연발효 시설. 이도성 특파원

인근에 있는 창청(長城)의 톈푸(天賦) 와이너리는 데이터에 기반한 스마트 시스템으로 와인을 생산하고 있었다. 창청은 중국 최대 국영 식품회사 중량(中糧)그룹 산하 브랜드로 1978년엔 중국 최초 화이트 와인을 선보였다. 국가 주요 행사 때마다 이름 올리는 와인 제조사로서 창청 와인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방중 만찬 때 국빈주로 등장했다.

토양과 기온, 습도 등 포도밭을 둘러싼 환경을 스마트 시스템이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와인 숙성과 병입, 라벨 부착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자동화했다. 지금까지 4억 2000만 위안(약 790억 원)을 투자했는데, 연간 2만t에 달하는 와인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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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청 와이너리 관계자가 스마트 양조 시스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도성 특파원

중국 특색의 와인도 생산한다. 3대째 경영 중인 화하오(華昊) 와이너리가 대표적이다. 이곳은 프랑스에서 카베르네 소비뇽과 그르나슈 품종을 교배해 만든 마르셀란 품종에 집중했다. 중국의 ‘떼루아(포도 재배 환경)’에 잘 어울린다는 판단에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대를 이어 와인 산업에 뛰어든 청이어우(程譯歐)는 “마치 ‘공주’ 같은 우아함을 가진 마르셀란 와인을 세계 최고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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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란 품종으로 생산한 중국 닝샤 화하오 와이너리의 레드와인. 이도성 특파원

낙후된 오지가 관광지로 재탄생

닝샤는 중국 31개 성·시 중 가장 낙후된 지역 중 하나다. 경제 규모도 작아, 전체 중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3%에 불과하다.

하지만 최근 닝샤는 와인을 동력 삼아 관광산업을 키우는 등 성장하고 있다. 와인과 예술 문화를 엮은 허둥(賀東) 와이너리가 대표적인 예다. 이 와이너리는 퇴역 기차를 들여와 호텔 객실로 꾸미고 와이너리 지하에 숙성 과정을 직접 보고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했다. 중국 정부가 인정한 국가 관광지가 된 이 곳엔 매년 최대 10만 명에 달하는 관광객이 찾아온다.

100년 된 포도덩굴이 이곳의 자랑거리다. 24년 전 황폐화된 국유 와이너리를 매입해 와인 산업에 뛰어든 궁제(龔傑) 대표는 “맛과 향은 기본이고 역사와 이야깃거리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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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둥와이너리의 궁제 대표가 100년 된 포도넝굴 앞에서 와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도성 특파원

안모(安漠) 리조트도 대표적인 명소다. 포도밭으로 둘러싸인 이 호텔은 허란산에 가장 가까이 맞닿은 건축물이다. 와인잔을 형상화한 로비와 창가에 앉아 허란산을 바라볼 수 있는 카페테리아를 내세운다. 비행기로 3시간 거리 장쑤성 난징시에서 온 한 30대 여성은 “친구들과 함께 자녀를 데리고 왔다”면서 “멋진 풍경을 보며 현지 와인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중국의 와인 1번지’를 찾은 관광객은 모두 300만 명으로 집계된다. 총생산 가치는 401억 6000만 위안(약 7조 5601억 원)에 달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6년과 2020년 두 차례 닝샤를 찾은 뒤 “와인 산업의 미래는 밝다”며 치켜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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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란산이 마주보이는 중국 닝샤 인촨시 안모 리조트 카페테리아를 둘러보는 관광객들. 이도성 특파원

“보르도 넘겠다”는 닝샤 와인, 낮은 인지도는 숙제

닝샤 와인은 최근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베를린 와인그랑프리에서만 금메달 3개를 거머쥐었다. 60여 개 국제 와인 대회에서도 상을 받았다. 허란산 일대 와인 브랜드 가치는 330억 위안(약 6조 1,845억 원) 규모로 성장했다.

세계 최대 샴페인 제조사 모엣샹동 등 유명 와인업체들도 자체 와이너리를 열었다. 호주의 대표적 브랜드 펜폴즈와 시바스 리갈로 유명한 페르노리카 등도 닝샤에 진출했다.

닝샤 정부는 내년까지 포도밭 규모를 600㎢로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연간 3억 병 이상의 와인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오는 2035년엔 생산량을 2배로 늘려 프랑스 보르도의 연간 생산량(5억 병)을 뛰어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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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중국 후이족자치구 인촨시에서 열린 국제와인문화박람회. 이도성 특파원

포도밭이 줄어드는 와인 대국 프랑스의 상황과는 대조적이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달 19일 포도 재배를 포기하는 농가를 위해 1억 2천만 유로(약 1755억 원) 규모의 국가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축구장 4만 2000개 면적의 포도밭이 사라진다.

물론 역사가 짧은 닝샤 와인이 수백 년 전통의 유럽 와인과 대결하기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가격 면에서도 칠레와 호주 등 신대륙 와인과 비교해 경쟁력이 낮은 편이다. 든든한 성장 받침대였던 내수 시장 역시 경제성장 둔화와 사치 소비를 배척하는 정부 기조 등으로 감소했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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