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조기분만 위기 임신부 받아주세요" 응급실, 지자체도 거들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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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도청 본관 전경. 사진 충북도

충북 청주의 충북도청 보건정책과는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달 10일부터 '비상의료관리상황반' 체제로 전환했다. 소속 공무원 25명 모두가 도내 응급의료체계 관리·대응을 위해 투입됐다. 예전엔 의료관리팀 소속 4명만 설·추석 대응을 위한 상황반을 담당했는데, 의료공백 사태를 겪는 올해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위기감이 최고조였던 추석은 넘겼지만,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우려에 따른 긴장감은 여전하다. 상황반 운영 기간도 10월 초 '징검다리 연휴'를 고려해 이달 10일까지 연장했다.

지난달 25일 충북도청에서 만난 상황반 소속 최선익 주무관은 추석 연휴 첫날의 긴장을 아직 놓지 못했다. 그는 '임신부가 응급실에 못 가고 있다'는 전화를 받고 “눈앞이 깜깜해졌다”고 말했다. 지난달 14일 오전 11시 25분쯤 청주에서 양수가 터진 25주차 임신부를 이송하던 119구급대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구급대는 서울·수도권, 영·호남과 제주도까지 75곳에 이송을 요청했지만 '의료진 부족'을 이유로 거절당했다.

상황반은 구급대의 사실상 마지막 전화를 받았다. 응급실 전원·이송 업무를 직접 맡고 있지 않았지만, 구급대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도청에까지 전화했다. 당시 접수를 한 최 주무관은 "산모를 살리자는 마음뿐이었다"며 "도내 산부인과 병원 이곳저곳에 부리나케 전화를 돌렸다"고 말했다.

상황반의 노력으로 임신부는 신고 6시간 만인 오후 5시 32분쯤 청주 시내 한 산부인과에서 1차 진료를 받았다. 그 후 상태가 호전된 임신부는 조기분만 가능성 등을 고려해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다. 최 주무관은 "구두로 상태를 확인한 뒤 어렵게 임신부를 받기로 결정한 산부인과 원장이 칭찬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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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도청 보건정책과. 문상혁 기자

응급실을 비롯한 필수의료 공백 문제가 장기화하면서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도 팔을 걷고 나섰다. 평소 도내 의료기관 네트워크를 촘촘히 다진 뒤, 위급 상황 발생 시 응급실 전원·이송까지 거들고 있다. 의료공백을 줄이기 위해 의료기관에 대한 예산 지원도 늘리는 양상이다.

정부는 추석 연휴 중증·응급을 의미하는 KTAS(한국형 응급환자 분류도구) 1~2단계 환자 위주로 응급실 이용을 요청했다. 하지만 청주의 25주차 임신부는 3단계로 판정돼 병원 이송에 어려움을 겪었다. 의정갈등 국면에서 드러나지 않던 지자체가 직접 나서 이러한 응급 사각지대를 메워준 셈이다.

충북도청 상황반은 지난달 15일에도 바삐 움직였다. 오전 6시 30분쯤 논에서 넘어져 안구 전방 출혈을 겪은 89세 환자 이모 씨의 응급실행을 도왔다. 이씨는 사고 2시간이 지나서도 충북대병원의 안과 의사 부재로 응급실에 가지 못했다. 하지만 상황반에서 병원 측에 수용 의사를 다시 타진했고, 이씨는 오후 출근한 안과 전문의에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실제로 추석 연휴 '응급실 대란'이 없었던 데엔 지자체의 지원사격이 있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국 시·도지사 대부분은 비상의료관리상황반장을 맡아 진료 차질 최소화에 나섰다. 각 지자체가 문 여는 병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면서 올 추석 연휴엔 하루 평균 9781곳의 의료기관이 진료를 이어갔다. 지난해 추석 연휴(5020곳)의 두 배 가까운 수치다. 강원도(90억원), 서울시(71억원), 경기도(50억원) 등은 비상응급의료체계에 예산을 투입해 응급실 공백을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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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 응급실 진료 지연 안내문이 놓여 있다.연합뉴스

다만 풀어야 할 과제도 있다. 의료 부문을 전문적으로 맡지 않는 지자체가 응급실 전원·이송 업무를 담당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통상적으론 지자체가 직접 응급실 업무에 관여하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의료공백 장기화에 담당 공무원 부담도 크게 늘었다. 한찬오 충북도청 보건정책과장은 “보건의료 분야에서만 30년 일했지만 처음 겪는 상황”이라면서 “비상의료담당이 주 업무인 의료관리팀은 야간·주말 당직이 잦아지면서 피로감이 커졌다”고 말했다. 최선익 주무관은 “추석 연휴 하루 평균 40통 넘는 전화를 걸었다”면서 “병원, 도내 시·군 등이 응급실 문의로 북새통”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자체에선 "보람도 적지 않다"면서 의료공백 해소에 노력하겠다고 강조한다. 한찬오 과장은 “도청의 임신부·노인 응급실 이송은 현장에 자주 가봤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일”이라면서 “최근 의료기관에서 싫은 소리를 하는 경우도 늘었지만, 그래도 현장에서 들어주면 '고맙다'고 전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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