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가자지구 하루 119명 사망, 이중 40%가 어린이였다 [가자전쟁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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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 파편을 맞아 사지가 크게 훼손된 환자 수술로 하루를 보낸다. 많은 이들이 병원 문턱도 밟지 못하고 숨진다.”(국제적십자위원회(ICRC) 소속 판카즈 잘디얄 박사)

“자원 부족으로 아이들이 병원 바닥에서 죽고, 마취 없이 수술을 한다. 최후 수단으로 야전 병원을 설치했지만, 막대한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국경없는의사회(MSF) 소속 앰버 알라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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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과 이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격으로 가자전쟁이 시작된 지 1년째 되는 날이다. 사진은 2023년 11월 15일 가자 지구 남부의 칸 유니스에 이스라엘이 폭격을 가한 이후 부상당한 팔레스타인 여성이 부상당한 여아를 껴안고 있는 모습. AFP=연합뉴스

7일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지 1년 되는 날이다. 이후 이스라엘의 반격으로 가자 전쟁이 발발했다. 중앙일보는 가자지구에서 인도주의 활동을 하고 있는 ICRC와 MSF 활동가들을 지난달 30일부터 e메일로 인터뷰했다.

최근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지원해온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로 공격 대상을 확대하며 가자지구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줄고 있으나, 가자에서는 이미 한계 상황이 도래했다고 이들은 전했다. 대다수 건물이 파괴돼 수술실조차 없고, 병원 발전기용 연료, 전기·물과 의약품 재고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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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에서 의료진들은 한계 상황에 직면해 있다. ICRC 홈페이지

“대피 명령에 100번 넘게 이동…비누 구하기도 힘들어”

벨기에 출신의 응급 간호사인 카트리엔 클레이스(33)는 “200병상 규모의 병원에 600명의 환자가 몰렸고, 응급실 입구에서 환자가 줄지어 사망했다”고 말했다. 의료 활동 매니저 아흐메드 아부 와르다 박사는 “깨끗한 물을 구하는 것도, 손을 씻기 위한 비누를 구하는 것도 힘들다”고 전했다. ICRC 수석기술자 파올라 펠톨라는 X(트위터)에 “목발 등 병원 필수품을 외부에서 구할 수 없어 직접 만들어 쓰고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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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없는의사회'(MSF) 소속 응급 간호사로 가자지구에서 활동해온 카트리엔 클레이스(33). 벨기에 출신인 클레이스는 지난해부터 이달까지 3차례에 걸쳐 공습을 피해 대피했다가 거듭 가자지구에 들어갔다. 사진 MSF 제공

병원의 열악한 상황은 하마스 지휘부가 병원·난민촌에 은신한다며 이스라엘군이 공습 타깃으로 삼으며 더 악화했다. 가자 남부 도시인 칸유니스 서쪽 해안의 알마와시를 중심으로 지정된 60㎢ 크기의 인도주의 구역에는 피란민 170만 명이 몰려 있다. 알마와시는 ‘인도주의 구역’인데도 공습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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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0일 팔레스타인인들이 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 서쪽 알마와시의 지정된 인도주의 구역에 대한 이스라엘 공습 이후 잔해 아래에서 실종자를 수색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의료진도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 MSF 소속 의사 하야 하솀 살만은 “매일 포격에 따른 대피 명령으로 거의 100번 가깝게 위치를 옮겼다”며 “환자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는 것이 힘겹다”고 호소했다. ICRC 매니저 크리스 행어(36)는 “의료품, 식량 등이 절실하다”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인 한국이 민간인 보호와 가자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 제공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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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행어 ICRC 활동가. 사진 본인 제공

잔해만 3900만t…일자리 2/3 없어져

지난달 말까지 가자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팔레스타인인은 총 4만2255명, 이 중 신생아를 포함한 아동이 1만7019명으로 집계됐다. 하루 119명이 사망한다는 추산이다. 이스라엘 측은 팔레스타인인 사망자 중 절반 가까이가 하마스 대원이라 주장한다.

이스라엘 측 사망자는 1139명이다. 하마스에게 인질로 잡혀간 이들은 251명이다. 이 중 101명은 아직 가자지구에 억류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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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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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전쟁의 파괴적 여파는 인명 피해를 넘어 사실상 전 영역에 미친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가자에서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무너진 건물·도로 등 잔해가 지난 5월 기준 3900만t이 넘는다. 이 ‘쓰레기산’에서 나오는 악취와 파리떼 등으로 보건 위기도 심각하다.

소아마비 백신접종이 끊겨 25년만에 가자지구에 최소 수백 명의 소아마비 환자가 나왔다. 용변을 처리하거나 씻을 물이 충분치 않아 일부 여성들은 부작용을 알면서도 생리 늦추는 약을 먹는 사례도 있다.

경제가 쪼그라든지는 오래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보고서에 따르면 가자지구의 국내총생산(GDP)은 전쟁 발발 이후 81% 급감했다. 가자지구 기업의 82%가 공습 피해로 문을 닫으면서 전쟁 직전 대비 일자리는 3분의 2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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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공격을 이어가는 이스라엘 경제도 타격을 입었다. 이스라엘 GDP는 전쟁이 시작된 지난해 4분기 5.7% 감소했다가 올해 1분기엔 3.4% 성장했으나, 2분기엔 0.3% 성장에 그쳤다. 전쟁으로 인한 인력 부족에 식료품 가격이 오르고 주택 건설이 중단됐다. 올해 최대 6만 개 기업이 문을 닫을 거란 전망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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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24일 칸 유니스에 있는 나세르 병원의 외상 병동에서 치료를 받는 남성과 어린이.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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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휴전 어려운 이유는 양쪽 다 확전 원하기 때문?

미국이 주도하는 휴전 협상은 지지부진하다. 이스라엘은 보란듯 레바논에서 지상전을 시작했고, 이란은 이스라엘 본토를 미사일로 공격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5일(현지시간) 연설에서 가자지구, 레바논, 요르단강 서안, 예멘, 시리아, 이라크, 이란을 열거하며 “오늘 이스라엘은 적들에 맞서 7개 전선에서 스스로를 방어하고 있다”며 “이란은 우리 영토에 수백 발의 미사일을 두 번씩이나 발사했다. 이스라엘은 이런 공격에 대응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란 뿐 아니라 친이란 세력 모두를 무력화하는 게 전쟁의 목표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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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현지시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앞줄 가운데)가 예루살렘에서 이란의 미사일 공격 이후 안보 내각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이스라엘이 미국 대선 전 리더십의 불확실성을 활용해 중동의 역학 구조를 바꾸려 휴전을 피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가자 휴전 및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별개 정부로 공존한다는 ‘두 국가 해법’을 전제로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간 국교 수립을 통한 중동 평화안도 내놨으나 동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하마스의 기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안보 실패의 책임이 있는 네타냐후가 전쟁을 통해 지지율 회복에 성공하자 확전을 통해 국내정치적 이점을 챙기려 한다는 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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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민 기자

하마스 수장 야히야 신와르도 확전을 원한다는 분석이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4일 “하마스는 최근 몇 주간 휴전 협상에 전혀 참여 의지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며 “더 큰 전쟁이 발생하면 이스라엘이 가자에서 병력을 축소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시선을 돌릴 다른 전쟁을 원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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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이란 테헤란의 팔레스타인 광장 벽에 걸려 있는 하마스 지도자 야히야 신와르의 광고판. 신와르는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 설계자로도 알려졌다. EPA=연합뉴스

“미 대선이 가자 휴전 물꼬 될 수도”  

정세를 바꿀 수 있는 기점은 다음달 5일 미 대선이 될 수 있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연구센터장은 “누가 미 대통령으로 당선되든 이스라엘은 공격을 어느 정도 멈출 수밖에 없다”며 “이스라엘이 국제사회 여론을 무시하고 공격할 수 있는 기간이 (미 대선까지) 한 달 남아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 전의 중동 상황이 미 대선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상존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5일 “네타냐후는 카멀라 해리스(미 민주당 대선 후보)를 돕기 위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의 발언을 인용했다. 네타냐후는 노골적으로 이스라엘 편을 들어온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을 선호한다는 분석이다.

반대로 이란은 중동 확전 시 트럼프에게 유리해지고, 트럼프가 당선되면 경제 제재 해제로 이어질 수 있는 핵 합의 복원이 어려워진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전략적 인내’를 감수한다는 분석이다. 다만 이스라엘의 재보복 수위에 따라 이란도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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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 1일(현지시간) 밤 탄도미사일 200여 발을 동원해 이스라엘 본토를 공격했다. 지난 4월 13일에 이어 두 번째다. 미국 국방부는 이번 공격 규모 가 4월의 두 배 수준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이스라엘군 ‘아이언돔’ 방공망이 남부 아슈켈론 상공에서 미사일을 요격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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