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폭염·혹한에도 끄떡없어"…시골 경로당 바꾼 '녹색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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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오후 전북 무주군 적상면 용담경로당 겸 마을회관에서 곽동환(52) 이장이 70~90대 주민 11명에게 공지 사항을 전달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그린리모델링 사업에 선정된 용담경로당은 LED 조명과 이중창 등 교체 후 지난 8월 다시 문을 열었다. 무주=김준희 기자

무주 용담경로당, 태양광·LED·이중창 설치 

지난 2일 오후 3시30분쯤 전북 무주군 적상면 용담경로당 겸 마을회관. 적상초등학교 맞은편 건물 지붕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이 가을 햇볕에 반짝였다.

거실에 들어가니 천장 곳곳엔 LED(발광 다이오드) 조명이 켜져 있고, 벽마다 두꺼운 이중창이 눈에 들어왔다. 스포츠머리를 한 곽동환(52) 이장 주변에 윤규만(90)씨부터 임순자(76·여)씨까지 남녀 주민 11명이 빙 둘러앉아 있었다.

28년간 직업 군인을 하다 2020년부터 고향을 지켜 온 곽 이장이 달력을 펼치며 "10월 8일이 '노인의 날'인데 행사장 가는 버스 시간표를 문 앞에 붙여 놓을 테니 많이 참석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곽 이장이 "독감 주사는 11일부터 보건소에서 맞을 수 있습니다" "멧돼지 등 야생 동물 피해가 있으면 전화 주세요" 등 '공지 사항'을 전달할 때마다 주민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궁금한 점을 물었다.

주로 복분자·천마·고추 농사를 짓는 이 마을엔 약 150명이 산다. 주민은 대부분 70~80대로, 자녀는 타지에 있고 부부나 혼자 사는 집이 수두룩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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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동환 이장이 그린리모델링을 통해 지붕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된 용담경로당을 가리키고 있다. 버스 정류장 뒤편에 있는 건물이다. 무주=김준희 기자

10년 지난 공공건축물 대상

무주군에 따르면 2001년 1월 지은 용담경로당은 원래 나무 문과 얇은 창문이 달린 벽돌집이었다. 단열재가 없어 겨울엔 벽돌 사이로 찬바람이 들어오기 일쑤였다고 한다.

올해 초 용담경로당은 창호와 단열재 등을 전부 교체·보강하는 공사에 들어가 지난 8월 22일 다시 문을 열었다. 국토교통부가 기후 위기에 대비해 2020년부터 추진해 온 '공공건축물 그린리모델링 사업' 대상에 선정되면서다.

최초 사용 승인 후 10년 이상 지난 어린이집·보건소·의료시설·경로당·도서관 등이 대상이다. 고단열 벽체, 고성능 창호, 친환경 환기 시스템, 고효율 설비 등을 지원해 노후 공공건축물의 에너지 효율·성능을 높여 온실가스를 줄이는 게 목적이다. 녹색건축물 조성 지원법 27조에 그린리모델링 지원 근거가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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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탄소 배출량 줄이고 에너지 비용 절감" 

전국 공공건축물이 폭염·혹한에도 끄떡없는 건물로 탈바꿈하고 있다. 에너지 효율을 높여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동시에 에너지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그린리모델링이 부린 '녹색 마술'이라 할 수 있다.

용담경로당엔 국비·지방비 1억1600만 원이 들어갔다. 무주군 사회복지과 임대근 주무관은 "용담경로당은 겨울엔 엄청 춥고, 여름엔 햇볕이 너무 뜨거워 어르신이 창가 쪽에 앉지 않고 거실 가운데에 옹기종기 앉아 생활하셨다"며 "그린리모델링 이후엔 에어컨을 조금만 틀어도 금방 시원해지니 다들 좋아하신다"고 했다. 경로당 막내 격인 임씨는 "아무리 춥고 더워도 집에선 혼자 우두커니 선풍기나 전기장판만 틀어 놓는데, 여기 오면 냉난방기 한 대만 켜도 여럿이 더위·추위를 피할 수 있으니 농한기엔 경로당에서 온종일 밥도 해 먹고, 낮잠도 자는 등 함께 지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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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전북 진안군 진안읍 진안어린이집 옥상에서 문보라(44·여) 원장이 그린리모델링을 통해 설치된 태양광 패널과 태양열을 반사하는 '쿨루프(cool roof)'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진안=김준희 기자

진안어린이집 "냉방비 3분의 1 줄어" 

어린이집도 냉방비 절감 등 그린리모델링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국공립인 진안어린이집이 대표적이다. 현재 0~5세 61명이 다니는 진안어린이집은 지난해 11월 6억 원가량을 들여 그린리모델링에 착수, 지난 5월 공사가 끝났다. 2004년 9월 문을 연 지 20년 만이다.

외벽에 고효율 단열재를 덧붙이고, 태양광 패널을 세워 에너지 자립도를 높였다. 회색으로 칠한 어린이집 옥상은 일명 쿨루프(cool roof)가 됐다. 태양열을 반사해 냉방 에너지를 절약하고, 열섬 현상을 막아주는 지붕이다. 진안어린이집 문보라(44·여) 원장은 "리모델링 후 냉방비 부담이 줄었다"며 "올여름은 워낙 더워 예년보다 에어컨을 오래 틀었는데도 전기 요금이 지난해 같은 달보다 3분의 1 적게 나왔다"고 했다.

학부모 기대감도 크다. 3년째 아들 정모(4)군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는 어머니 한모(39)씨는 "진안은 고지대라 겨울이 유난히 춥다"며 "아이는 어른보다 추위에 약해 어린이집에서 겨울마다 따뜻한 온도를 유지하느라 보일러 때는 비용이 많이 들었다고 한다. 겨울이 되면 (그린리모델링) 비포·애프터(전후) 차이를 체감할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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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리모델링으로 이중창과 LED 조명이 설치된 진안어린이집 내부. 진안=김준희 기자

국토부, 5년간 9673억 투입 

정부는 이른바 '녹색 건축' 저변을 확산하기 위해 매년 이 사업에 2000억 원 안팎의 예산을 쓰고 있다. "2030년까지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32.8% 감축이 필요하다"면서다. 공모를 통해 각 시·군에 보조금(국비 70%, 시·도비 6%, 시·군비 24% 부담, 중앙·공공기관은 50%씩 부담)을 지원한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국내 건물 에너지 소비량은 16.8% 증가했고, 에너지 성능이 떨어진 10년 이상 노후 건축물이 전체 82.9%를 차지한다.

국토부는 그린리모델링 사업을 통해 2020년부터 올해까지 5년간 전국 17개 시·도 공공건축물 3437동(중앙·공공기관 포함)에 총 9673억 원을 지원했다. 2020년 821동(2276억 원), 2021년 895동(2276억 원), 2022년 575동(1995억 원), 2023년 617동(1851억 원)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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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경로당·도서관까지 확대"

올해는 1275억 원을 투입, 529동(어린이집 54동, 보건소 155동, 경로당 319동, 의료시설 1동)을 리모델링하고 있다. 강원이 153동으로 제일 많고, 경북 68동, 전남 65동, 경기 51동, 충남 41동, 서울 34동, 경남 30동, 충북 25동, 전북 20동, 인천 8동, 대전 7동, 대구 5동, 제주 5동, 광주 5동, 부산 4동, 울산 2동, 세종 2동 순이다. 중앙·공공기관은 4동이다.

국토부 녹색건축과 최철민 사무관은 "국민 중에서도 냉·난방 환경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취약 계층이 에너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이지 않도록 혹서기·혹한기에 혹서와 혹한을 피하는 쉼터 역할까지 할 수 있는 건물 위주로 지원하는 게 그린리모델링 사업 목적"이라며 "이를 위해 2020년부터 2022년까지 건물 용도를 어린이집·보건소·의료시설 등 3개로 제한했지만, 전국적으로 사업 대상 물량이 줄면서 지난해부터 경로당·도서관까지 확대했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복지시설이나 청소년 수련 공간 등 사업 대상 건축물 용도를 추가해 달라는 지자체 요청을 접수, 기획재정부와 예산 협의를 거쳐 반영 여부를 검토 중이다. 전북특별자치도는 최근 국토부에 행정복지센터를 포함해 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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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2030년까지 지원…이후 지자체 스스로" 

전북자치도에 따르면 도내 전체 행정복지센터 243동 중 10년 이상 지난 건축물은 207동으로 약 85%다. 이 중 그린리모델링을 희망하는 건축물은 132동(63%)이라고 전북자치도는 밝혔다. 김용수 도 주택건축과장은 "행정복지센터는 행정 서비스 제공은 물론 무더위·한파 쉼터 등 취약 계층의 복지·문화 공간"이라며 "그러나 노후화로 에너지 효율과 쾌적성·편의성이 낮아 그린리모델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최철민 사무관은 "2030년까지 예산을 확보해 꾸준히 지원할 방침이지만, 이후엔 지자체·공공기관이 스스로 관내 노후한 건물을 리모델링하도록 유도하는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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