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진천 ‘2만t 쓰레기산’ 5년째 방치…안 치우나 못 치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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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진천군 문백면 사양리 한 공터에 방치 폐기물이 5년 넘게 쌓여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지난 3일 충북 진천군 문백면 사양리의 한 야산. 회색 철판으로 된 울타리 너머로 높이 7m쯤 되는 거대한 언덕이 보였다. 덩굴 식물과 잡초가 뒤엉켜 온통 초록빛이었다. 풀을 걷어내자 진짜 모습이 드러났다. 플라스틱병·의자·소파 내장재·폐건축자재 등 온갖 생활 폐기물이 겹겹이 쌓여있었다.

이곳은 ‘진천 쓰레기산’이란 오명이 붙은 현장이다. 폐기물 중간재활용업체인 A사가 2018년부터 폐합성수지류 등 폐기물 2만3000t을 반입한 뒤 5년 넘게 방치 상태다. 허가받은 폐기물 보관용량(1200t)의 약 19배를 초과한 양이다. A사는 2020년 사업 허가가 취소된 뒤에도 쓰레기를 치우지 않았다. 쓰레기산 문제가 마을 밖으로 알려진 2021년 이후에도 마땅한 해결 방안을 찾지 못하면서 주변이 흉물처럼 변했다. 그 사이 업주가 구속됐고 땅 주인도 바뀌었다. 진천군은 A사가 맡긴 방치폐기물이행보증금 3억5000여만원으로 1380t을 치웠으나 나머지 폐기물은 여전히 처리되지 않고 있다.

사업장 인근에서 만난 문모(87)씨는 “A사가 느닷없이 높은 벽을 치더니 밤낮으로 드나들며 고의로 쓰레기를 쌓았다”며 “진천군이 허가를 해줬으면 관리·감독을 철저하게 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주민 권모(43)씨는 “쓰레기산이 오랫동안 방치되다 보니 비가 많이 오면 야적장에서 나온 물이 인근 논으로 흘러 들어가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사양리에 쓰레기산이 생긴 건 2018년 말부터다. 이 자리에 문을 연 A사는 폐합성수지류를 들여와 선별·파쇄·압축·포장 등 처리 과정을 거쳐 해외에 되파는 일을 했다. 사업장 규모는 1만250㎡다.

쓰레기산이 처리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땅 주인이 바뀌어서다. 해당 부지 토지대장에 따르면 이 땅은 2018년 9월 A사로 소유권이 이전됐다. 소유권 이전 전 이 부지 토지·건물 매매가는 12억5000만원으로 나온다. 이후 해당 부지에 여러 차례 가압류가 이뤄진 것으로 미뤄 A사는 자금난을 겪은 것으로 추정된다.

A사 사업장 부지는 결국 법원 부동산 임의경매를 거쳐 2021년 7월께 사회복지법인 B사에 낙찰됐다. 수차례 유찰되면서 땅값은 감정가에 훨씬 못 미치는 1억8000여만원까지 떨어졌다.

진천군 관계자는 “방치 폐기물 행정대집행을 준비하던 중에 사업장 부지가 팔리면서 바뀐 토지주(B사)를 상대로 2022년 2월 폐기물 처리 명령을 내렸다”며 “B사가 ‘진천군 행정처분이 부당하다’며 낸 소송에서 군이 패하는 바람에 쓰레기를 치우고 싶어도 치울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 재판에서 진천군은 “B사가 부적정 폐기물이 발생한 사업장을 인수했기 때문에 폐기물 관련 의무도 승계한 것으로 처리 명령이 정당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B사는 “땅을 경락받았다고 해서 사업장폐기물과 관련한 권리와 의무를 승계한 것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사양리에 폐기된 쓰레기가 폐기물관리법 적용을 받는 ‘사업장 폐기물’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B사의 손을 들어줬다. 진천군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패소했다. 진천군 관계자는 “자치단체에서 하라 말라 할 권한이 없어진 상태여서 난감하다. B사가 쓰레기가 쌓인 땅을 왜 샀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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