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트럼프 포비아에…"美핵우산 불충분" 26→47% 급증했다 [한국 안보, 국민에 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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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동맹이 핵 기반 동맹으로 격상됐다는 정부 평가와 달리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이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국민의 불신이 불과 1년 사이 크게 높아진 것으로 드러났다. 중앙일보와 동아시아연구원(EAI)의 공동 기획 여론조사 결과다. 동맹에 대한 방위공약에조차 손익계산서부터 들이밀고 보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오는 11월 5일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기존의 확장억제 관련 약속도 되돌릴 수 있다는 ‘트럼프 포비아’가 수치로 확인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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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과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0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열린 대선 토론에 참여한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美 핵우산, 충분치 않다" 급증 

중앙일보와 EAI는 지난해와 올해 공동 기획 여론조사에서 공통적으로 확장억제와 관련한 질문을 던졌다. 올해 조사(8월 26~28일, 전국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6명 대상 웹 조사)에서 응답자의 47.4%는 “북핵 위협 대응은 미국이 제공하는 핵 확장억제(핵우산)로 충분하다는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동의한다”는 비율(41.2%)보다 6.2%p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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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영 디자이너

지난해 조사(2023년 8월 25일~9월 13일, 전국의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8명 대상 심층 대면 면접조사)에서는 한·미 양국의 대북 확장억제 강화 방안을 담은 '워싱턴 선언'(2023년 4월 발표)에 대해 설명한 뒤 ‘워싱턴 선언이 북한의 위협에 대한 적절한 대응으로, 한국의 안보 우려를 해소하기에 충분하다는 평가에 동의하느냐’고 물었을 때 응답자의 57.6%가 “동의한다”고 답했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26.2%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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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대응, ‘워싱턴 선언’으로 충분할까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동아시아연구원]

불과 1년 사이에 확장억제를 ‘믿는다’는 쪽에서 ‘못 믿겠다’는 쪽으로 여론의 추이 자체가 달라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양국 정부가 지난 1년간 확장억제 강화를 가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실질적 조치를 취했다는 점에서 이런 결과는 더 주목된다. 한·미 정상은 지난 7월 ‘한·미 한반도 핵 억제 핵 작전 지침’에 서명하고, 미국 핵전력이 한반도에 상시 배치되는 수준으로 미국 전략자산 전개의 빈도와 강도를 확대하기로 했다.

'트럼프 포비아' 수치로 나타나

한·미의 확장억제 강화 움직임과 여론이 오히려 반대로 움직이는 모순된 현상의 배경에는 트럼프가 재임 시 보였던 동맹 경시 기조에 따른 ‘학습 효과’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미국 행정부 교체와 관계없이 한·미 동맹은 공고하다”는 정부의 설명을 국민이 쉽게 수긍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여지가 있다.

실제 트럼프는 정례적·방어적 성격의 한·미 연합훈련을 “비싼 워 게임”으로 폄하했다.(2018년 6월 12일 1차 북·미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 북한과의 대화를 지원한다는 명분이었지만, 결국 그의 임기 중 연합훈련은 중단되거나 축소됐다.

이에 더해 최근 워싱턴 조야에서 ‘북한 비핵화’ 목표를 조정하려는 듯한 기류가 감지되는 것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지난 7~8월 차례로 발표된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의 정강에서 한반도 비핵화 관련 문구는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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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한반도 중부지역 상공에서 한·미 공군이 5세대 전투기 간 연합훈련을 하는 모습. 공군.

북핵, '실존적 위협' 진화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에 더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말부터 남한을 동족이 아니라 ‘교전 중인 적대국’으로 규정하고, 지속해서 대남 핵 공격을 위협하는 것도 주요한 원인이다.

이와 관련, ‘북한은 필요하다면 선제적으로 남한을 향해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라는 평가에 “동의한다”는 응답이 54.6%로 과반이었다. 기존에는 종심이 짧은 한반도에서 북한의 대남 핵공격은 공멸이자 자살행위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지만, 이제는 일반 국민도 북핵이 ‘실존적 위협’이 됐다는 위기의식에 공감하는 셈이다.

동시에 북한과 불법 무기 거래를 지속하며 북한의 핵 보유를 정당화하는 듯한 행보를 이어가는 러시아에 대한 반감도 크게 늘었다. 군사적으로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는 국가를 묻자 러시아를 꼽은 응답자가 지난해 19.9%에서 올해 44.8%로 두 배 이상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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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평양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체결한 모습. AP.

여론의 비관적 전망과 달리 전문가들의 확장억제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학자, 전·현직 관료, 언론인 등 전문가 102명을 대상으로도 별도 조사한 결과 “북핵 대응은 미국이 제공하는 핵 확장억제(핵우산)로 충분하다”는 응답은 61.7%였다. 전문가 집단에서는 한·미 동맹의 공고함이 ‘트럼프 변수’를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트럼프 호감도 대폭 하락

한편 트럼프에 대한 국민의 비호감도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71.3%는 트럼프에 대해 “나쁜 인상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는 응답은 13.4%에 그쳤다.

이는 트럼프 재임 3년 차이던 2019년 “좋은 인상”이라는 응답이 52.7%이었던 것에 비해 대폭 떨어진 수치다. 당시에는 한국을 압박하는 트럼프의 여러 행태에도 남·북·미 간 연쇄 정상회담 등을 통해 그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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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기자

반면 현직 조 바이든 대통령에 대해서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는 응답은 지난해 33.4%에서 올해 49.9%로 증가했다. 트럼프의 부상으로 인한 반사 이익과 함께 자진 사퇴를 통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후보 자리를 넘기며 민주당의 승리 가능성을 높인 데 따른 호감도 개선으로 풀이된다.

이런 가운데 한·미 관계를 긍정적으로 전망하는 비율은 낮아졌다. 미래의 한·미 관계가 “좋아질 것”이라는 응답은 지난해 46.6%에서 올해 22.5%로 반 토막이 났다. 반면 “나빠질 것”이라는 응답은 지난해 3.6%에서 올해 14.2%로 4배 가까이 증가했다. 올해 응답자의 63.3%는 “현재와 같은 것”이라고 응답했는데, 미국 차기 행정부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평타’ 수준을 전망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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