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오징어 북상하는데 우린 못가"…선장들 눈물, 줄줄이 배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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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를 찾은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소비자원 생필품가격보고서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수산물 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14.2% 올랐다. 품목별로 보면 생물 고등어(71.8%), 냉동 오징어(61.1%), 생물 갈치(43.1%)가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사진 연합뉴스

오징어·갈치·삼치 등을 잡는 대형기선저인망수협 소속 어선 과반수가 “더는 고기잡이를 할 수 없다”며 감척(減隻) 의사를 밝혔다. 법상 정해진 조업 구역을 벗어날 수 없는 이들 어선은 수온 변화에 주력 어종이 점차 떠나면서 손해를 감내해왔다. 하지만 더는 버티기 어렵다며 조업 허가권을 내려놓고 정부 보상을 받는 감척을 희망하고 있다. 업계에선 어선 파산으로 이어지면 선원 일자리가 줄고 밥상 물가가 치솟는 등 부작용이 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136척 중 74척 희망, 실제론 100척 달해”

8일 대형기선저인망수협에 따르면 내년 감척 물량을 파악하는 해양수산부 조사에서 소속 어선 136척 중 74척이 감척을 원한다고 답했다. 해수부는 과도한 조업 경쟁을 막기 위해 감척 신청을 받았다. 감척은 그동안 조업량과 배 무게 등에 따라 일정한 보상을 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대형기선저인망수협에서 감척을 희망한 배는 2022년 6척, 지난해 15척이었는데 올해는 크게 늘었다.

대형기선저인망수협 측은 수온 변화에 따라 오징어와 갈치·삼치·조기 등 주력 어종이 어장을 떠난 게 영향을 줬다고 본다. 수온이 올라가면서 인기 많은 주력 어종은 북상했지만, 1953년 제정ㆍ시행된 수산업법에 따라 이들 어선은 법이 정하는 조업 구역을 벗어날 수 없다. 특히 9월 말까지 폭염이 이어진 올해엔 손해가 막심했다고 한다. 대형기선저인망수협 집계를 보면 소속 어선의 어획량은 오징어가 지난해 6451t에서 올해 1561t으로, 삼치는 3164t에서 1451t으로 급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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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오징어. 사진 롯데쇼핑

임정훈 대형기선저인망수협 조합장은 “오징어 철은 이미 끝났다. 삼치 철은 4개월가량 남았지만, 어황을 보면 어획량이 작년에 크게 못 미쳐 손해를 메우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수온 변화 때문에 새롭게 어장으로 유입되는 어종도 있지만 ‘그림의 떡’이란 게 임 조합장 설명이다. 그는 “전에 잡히지 않던 참다랑어가 요즘 그물에 걸려든다. 하지만 우리에겐 참치 쿼터량(어획ㆍ유통이 허가된 분량)이 없다. 잡혀도 팔 수가 없는 것”이라며 “공식적으로 감척을 희망한 건 74척이지만, 그간 누적된 손해에 못 이겨 조업 중단을 고려하는 배까지 포함하면 100척가량 된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ㆍ러시아 전쟁 탓에 치솟은 유가도 큰 부담이라고 한다.

“연근해 생산량 10% 휘청… 법 손질 시급”

대형기선저인망수협에 따르면 한반도 연근해에서 생산되는 수산물은 90만t 안팎이며, 이 중 대형기선저인망수협 소속 어선이 잡아들이는 분량이 7~9% 수준에 달한다. 이 때문에 단번에 감척량이 크게 늘거나, 손해를 이기지 못해 파산하는 어선이 많아지면 ‘밥상머리 어종’ 수급에 차질이 생겨 가격이 치솟을 수 있다는 게 대형기선저인망수협 측 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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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구 부산항 5부두에 어선이 정박해있다. 송봉근 기자

임 조합장은 “수온 변화에 따른 어장 변화가 해마다 심해지고 있다. 수십 년 전 정해진 조업 구역 기준 등은 이런 현실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며 “해수부 등에 여러 차례 조업 구역 조정 등 대책 마련을 건의했다. 하지만 다른 구역과의 이해관계가 얽혀 진척이 없다. 고위 공직자를 직접 만나도 1, 2년 만에 인사가 나면 논의는 원점으로 돌아오기 일쑤”라고 했다. 이어 “수온과 어황 변화에 맞춘 조업 구역 조정을 포함해 유류비 지원 등 조치가 없으면 국민이 가장 즐겨 찾는 고기를 잡는 어선들이 더는 버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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