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폐가 설치부터 블라인드까지 양혜규의 20년…런던은 지금 한국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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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규: 윤년' 전시장 안에는 방울 소리를 끌어왔고, 밖에는 바람을 담았다. 런던 사우스뱅크 센터 헤이워드갤러리 바깥에 설치된 스테인리스 바람개비들 '닿을 수 없는 바람의 테라스'. 사진 국제갤러리

노벨문학상이 발표된 10일(이하 현지시간), 런던의 가장 오래된 서점인 해차즈 피카딜리서커스점에서는 한강의 책을 찾을 수 없었다. 서점 관계자는 “수상 발표 후 재고가 동이 났다”고 말했다.

건축가 조민석의 파빌리온, 한국 여성미술 세미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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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대형서점 워터스톤즈 피카딜리 서커스점이 10일 모아둔 한강의 저서들. 책은 금세 품절됐다. 런던=권근영 기자

한국 문화에 대한 높아진 관심이 언어 장벽을 넘어 문학에까지 다다른 이때, 런던의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에는 한국 미술이 자리를 잡았다. 테이트 모던의 이미래(지난 9일자 20면), 런던의 대표적 비영리 공간인 헤이워드 갤러리에서 마련한 ‘양혜규: 윤년’ 등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관객들의 몸에 방울 커튼이 닿으며 차르르 소리를 냈다. 런던 사우스뱅크센터의 헤이워드 갤러리, 56년 역사의 대표적 현대미술 전시공간으로 브루스 나우만,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트레이시 에민, 이불, 아니시 카푸어 등이 개인전을 열었다.

이곳 전시장 입구에 파란색과 은색 방울을 이어 만든 발이 설치됐다. 양혜규(53)의 ‘농담(濃淡)진 소리 나는 물방울-수성 장막’이다. 무속의 도구이던 방울이 신이 된 망자들을 불러내듯, 앙혜규의 방울 커튼 안쪽 세계에서는 빨랫대와 전구, 블라인드, 싱크대, 라디에이터, 인공 짚으로 엮은 조형물, 부적처럼 오린 종이가 작품이 되어 관객을 맞는다.

‘양혜규: 윤년’은 20년 전 양혜규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창고피스’(2004)부터 외할머니가 살던 인천의 주택에서 연 국내 첫 개인전 ‘사동 30번지’(2006), 그리고 작곡가 윤이상의 삶과 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대형 블라인드 신작 ‘윤에 따른 엇갈린 랑데부’까지 120점으로 5개 전시장을 꽉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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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헤이워드 갤러리에 나온 신작 '윤에 따른 엇갈린 랑데부' 설치전경. 사진 국제갤러리

작가의 처음부터 지금까지, 20년 시간을 거슬러 보여준 ‘윤년’은 헤이워드 갤러리 융마 수석 큐레이터의 기획이다. 9일 전시장에서 만난 융마는 ”윤년(Leap Year)라는 제목은 시간의 흐름을 표현할 뿐 아니라 4년에 한 번인 윤년처럼 특별한 일을 뜻하며, 여러 층위의 작업을 소화해 온 작가처럼 ‘뛰어든다(Leap)’는 의미도 담았다“고 설명했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대형 블라인드 설치 ‘윤에 따른 엇갈린 랑데부’, 층층이 올라가듯 배치된 블라인드 뒤로 윤이상의 ‘더블 콘체르토’에 맞춰 조명이 움직인다. 분단 상황 속에서 독일로 망명한 작곡가 윤이상의 음악으로 이산의 아픔, 분단과 만남ㆍ화합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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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치 작업을 담은 이번 대규모 전시에 대해 양혜규는 "나쁘지 않다"로 말을 줄였다. 사진 국제갤러리

현지 언론의 평가는 엇갈렸다. 가디언은 ”방대하고 혼잡할 뿐 보람이 없다“며 별 5개 중 1개로 혹평했다. 반면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섬세하고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시“라며 별 넷을 줬다. 이에 대해 양혜규는 본인의 X(옛 트위터)에 가디언 기사를 공유하고 "자기주장이 강한(highly opinionated) 기사, 브라보!"라고 적었다며 "내게 그 정도 자신감은 있다. 비평은 다양하기에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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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현대미술관(ICA) 에서 열린 정금형 개인전 '공사중'에 나온 의료용 인체모형을 보는 관객들. 런던=권근영 기자

뿐만 아니다 영국의 대표적 아트페어인 '프리즈 런던'을 맞아 쟁쟁한 미술관ㆍ갤러리가 연중 가장 중요한 전시를 선보이는 시기,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밀도 높은 전시가 이어지고 있다. 정금형(44)은 런던현대미술관(ICA)에서 개인전 '공사중'을, 정희민(38)은 독일의 명문 화랑타데우스로팍 런던 지점에서 유럽 첫 개인전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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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에서 열린 정희민 개인전 'Umbra(그림자)' 전시 전경. 런던=권근영 기자

여성 미술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진 가운데 김홍희 전 서울시립미술관장은 『한국의 페미니즘 미술가(Korean Feminist Artists: : Confront and Deconstruct)』 영국 출간을 맞아 런던대 부설 바르부르크 연구소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책은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Story of Art)』로 이름난 파이돈 출판사에서 간행했다. 한국 미술에 관심 있는 80여명이 모인 가운데 우테메타 바우어 사우디아라비아 현대미술 비엔날레 예술감독, 이연숙 평론가, 책에서 거론된 미술가 신미경ㆍ김아영이 한국 여성 미술의 과거와 현재를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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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서펜타인 파빌리온을 설계한 조민석 매스 스터티스 대표가 12일 '한국 미술의 밤' 참석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런던=권근영 기자

"한강의 노벨문학상 등 아주 좋은 소식이 이어지는 이때, 멀리 떨어진 이곳에선 번역자ㆍ연결자들의 중요성 또한 생각하게 됩니다." (건축가 조민석)
12일 런던 켄싱턴 가든. 조민석 매스 스터디스 대표가 세운 파빌리온 '군도의 여백'에는 뉴뮤지엄 큐레이터 비비안 크로켓, 아이린 킴 아트 바젤 글로벌 VIP 총괄, 비비안 츄 아트넷 에디터 등 100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였다. 프리즈 런던의 VIP 프로그램으로 예술경영지원센터가 함께 마련한 ‘한국 미술의 밤’이다. 행사가 열린 ‘군도의 여백’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잔디 위에 별 하나가 뚝 떨어진 듯한 모습이다. 가운데 둥근 공간을 마당 삼아 방사형으로 뻗어가는 다섯 공간으로 구성, 연결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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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서펜타인 파빌리온: 군도의 여백'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별 모양처럼 보인다. 가운데 텅 빈 마당이 5개의 방을 연결하고 있다. 사진 매스 스터디스

영국 왕실 공원인 켄싱턴 가든에 있는 서펜타인 갤러리는 2000년부터 매년 여름마다 주목받는 건축가를 선정해 임시 별관을 지어 건축계의 최신 흐름을 선보인다. 파빌리온 참여 작가 중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많이 나와 ‘프리츠커 예고편’으로 불리는 프로젝트다. 현대 무용가 안은미의 공연으로 시작해 K팝 공연, 도서관, 찻집 등 5개월 남짓 ‘콘텐트 제작소’ 역할을 한 ‘군도의 여백’은 27일까지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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