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꼰대는 되지 말자…인생 황혼에 ‘성숙한 어른 되기’ 배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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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인천 연수구노인복지관에서 열린 ‘드라마로 보는 생활 인문학’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이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다.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천시 연수구에 사는 방정순(74)씨는 40년간 초등교사로 일하고 퇴직 후 요즘 연수구노인복지관에서 다양한 활동을 즐긴다. 지난 4일 참석한 프로그램은 ‘드라마로 보는 생활 인문학’. 이날 우금란 강사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2022)의 명대사를 빌어 ‘내게 봄날의 햇살 같은 존재’를 묻자 20여명 참석자 가운데 방씨가 손을 들었다.

드라마 통해 인문학적 보편성 탐구 #"남의 입장서 생각하는 경험 중요" #문체부, 어르신들 대상 곳곳서 교육

“저한테 봄날의 햇살 같은 존재는, 음, 둘째 아들이요. 내가 좋아하는 장민호(트로트 가수) 공연표를 어떻게 해서든 딱딱 끊어주거든요.(웃음)”

대부분 70~80대인 참석자들이 일제히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훈훈한 분위기를 틈타 우 강사는 드라마 속 자폐 스펙트럼 주인공 우영우(박은빈 분)가 세상의 편견과 맞서는 데 ‘봄날의 햇살’ 같은 친구 최수연(하윤경 분)이 얼마나 힘이 됐는지 강조했다. “그런데, 만약 내 아들딸이 우영우 같은 자폐인 혹은 장애인을 배우자로 데려온다면, 과연 여러분은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장내에 잠시 정적이 돌았다. “우리는 타인의 상처에 얼마나 열려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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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인천 연수구노인복지관에서 열린 ‘드라마로 보는 생활 인문학’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이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다.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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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인천 연수구노인복지관에서 열린 ‘드라마로 보는 생활 인문학’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이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다.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드라마로 보는 생활 인문학’은 매회 1~2개의 드라마를 소재로 극중 인물의 상황에 자신을 대입해보는 식으로 진행된다. 총 10회 가운데 3회차로 진행된 이날은 ‘우영우’ 외에도 ‘괜찮아 사랑이야’(2014)를 계기로 각자 마음의 병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1시간30분 강의가 끝난 후 방씨는 “직장 다니며 아이들 뒷바라지 하느라 옆을 돌아볼 새도 없이 살았는데, 이렇게 드라마 속 인물들을 찬찬히 생각해보니 ‘내가 그때 그 사람들한테 더 잘할 걸’ 하는 반성도 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인 고미옥(75)씨도 “인문학이란 걸 이번에 처음 접했는데, 나를 위한 시간을 갖고 공부를 많이 해야겠구나 싶다”고 했다. 고씨는 특히 ‘스스로에게 괜찮냐고 안부 인사 쓰기’를 한 걸 의미 있게 꼽으면서 “다른 사람들 발표 듣고 ‘나는 어떨까’ 생각도 한다.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경험이 매우 중요한 것 같다”고 했다.

이 강의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함께 진행하는 사회시설 활용 인문프로그램 중 하나다. 수도권·충청권·강원권·호남권·영남권 등 총 5개 권역으로 나뉘어 드라마 외에도 ‘음악 인문학’ ‘글쓰기 인문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각 시설 수요에 맞게 진행되고 있다. 복지관의 김동권 팀장(사회복지사)은 “드라마라는 소재가 공감을 끌어내기 쉽다. 나이 들수록 내 얘기만 하는 경향이 있는데, 남의 얘기를 듣는 훈련이 어르신들한테 꼭 필요할 것 같아서 도입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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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인천 연수구노인복지관에서 열린 ‘드라마로 보는 생활 인문학’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이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은 베이비붐(1955~1963년대생) 세대가 노령화 구간에 진입하면서 내년부터 65살 이상 인구 비율이 20% 이상인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한다. 그럼에도 지난해 한 여론조사에서 노인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이지 않다’(66.7%)는 응답이 ‘긍정적’(31.5%)에 비해 2배 이상 높게 나오는 등 세대간 갈등도 심해지고 있다. 일각에선 ‘노시니어 존’까지 등장하는 등 노인 혐오 풍조까지 보인다.

우 강사는 인문학을 통한 노령 인구 재교육이 이 같은 갈등 해소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서 1회차 소재였던 ‘디어 마이 프렌즈’(2016) 당시 얘기를 꺼냈다.

“드라마 속 엄마가 어른으로서 ‘이게 맞는 거다’라고 하지만 자녀는 ‘그 때문에 행복하지 않았다. 엄마가 틀렸다’고 하는 대목이 있어요. ‘어른이란 뭘까’ ‘꼰대 소리 안 들으려면 우리 어떻게 하면 될까’ 얘기를 나누는데 한 어르신이 ‘우리가 인정하지 않고 고집 부려서 꼰대 소리를 듣는 것 같다. 자꾸 지적질만 할 게 아니라 내가 먼저 행동하고 실천하는 모습 보이자’고 하셨어요. 드라마를 빌어 스스로를 객관화함으로써 반성과 성찰이 가능해져요.”

김동권 팀장은 “오랜 경험을 가진 분들이 선배 시민으로서 성숙한 태도를 보인다면 우리 사회 개인주의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우 강사는 “타인의 상처에 대해 ‘(너는 이래서) 틀렸다’라고 말하지 않고 격려해 줄 수 있도록 포용력을 넓히는 게 드라마 인문학의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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