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낮엔 김건희·이재명 때리고, 밤엔 "우리 지역구엔"…두 얼굴 의원들 [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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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규택 국민의힘 의원이 8월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있다. 뉴스1

“우리 법원행정처장님, 부산 출신이시지 않습니까”(곽규택 국민의힘 의원)

22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시작된 7일 저녁 9시 5분 돌연 법제사법위원회 국감장엔 ‘부산 싸나이’들의 지연(地緣)을 강조하는 대화가 오갔다. “부산 서구동구 출신 곽규택입니다”라고 입을 연 곽 의원은 “제가 22대 국회 들어와 1호 법안으로 해사(海事)법원을 부산에 설치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냈다”며 불쑥 부산 출신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의 고향 얘기를 꺼냈다. 곽 의원이 “처장님이 대법관 되실 때 지역 안배 등 고려해서 대법관이 되신 거잖나. 좀 한번 고향인 우리 부산 위해 역할 해주시라”고 능청을 떨자, 천 처장은 웃음을 터트렸다. 해사법원은 해운·조선업 관련 분쟁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법원으로, 부산과 인천이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날 낮 12시쯤 오간 질의는 정반대였다. 곽 의원은 천 처장을 상대로 “이재명 대표가 거대 야당 대표라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이 대표 관련 재판을 지연시켜도 되는지 굉장한 의구심이 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어둠이 들고 방송 카메라가 하나둘 철수하자 분위기는 확 바뀌었다.

야당도 마찬가지였다. 이성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전북 전주시을)은 낮 2시 30분쯤 “이재명 대표 사건 증거기록을 모두 합치면 25만 페이지로, A4 용지로 아파트 3층 높이로서 피고인이 방어할 수가 없는 수준이다. 법원이 쓸데없는 기록을 과감히 쳐내야 한다”고 천 처장을 거칠게 몰아세웠다. 하지만 9시간이 지나자 “우리 전주지방법원엔 가정법원이 없다. 전북 도민들 소외감이 커진 만큼, 처장님이 설치해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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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이 7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대법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음달 7일까지 진행되는 22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16일 반환점을 돈 가운데 유독 달라지는 낮과 밤의 풍경이 화제가 되고 있다. 여야 의원들이 낮이면 김건희·이재명 두 이름을 꺼내 들고 고성과 삿대질로 시선을 끌다가도, 밤만 되면 주섬주섬 지역구 민원을 꺼내 들기 때문이다. 한 보좌관은 “늦은 시각엔 취재진과 방송 카메라 등이 빠지다 보니, 아무런 부담 없이 노골적인 민원 경쟁을 벌일 수 있게 된다”고 전했다.

격한 전장일수록 이런 대비가 극적이다. 김건희 여사 논문 표절 의혹으로 뒤덮였던 7일 교육위 국감장이 대표적이다. 김문수 민주당 의원(전남 순천)은 낮 2시 34분엔 “논문 7건 중 5건이 표절 의혹을 받았고, 나머지 두 논문은 위조 의혹까지 있다”며 김 여사 표절 의혹을 정리한 큰 피켓으로 눈길을 끌었다. 이날 여야는 거친 대치를 반복하다, 국감을 자정 이후까지 진행했다. 8일 새벽 1시 다시 발언권을 얻은 김 의원의 마지막 질의는 “저희 전남은 의과대가 전국에서 유일하게 없는 지역이다. 의과대학 설치가 시급하다”고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이외에도 야심한 시각 국감장 곳곳에선 “해운사 세금 감면 방편인 ‘톤세제(법인세 계산시 영업이익 대신 선박 톤수·운항일수를 바탕으로 추정한 이익을 적용하는 제도)’ 일몰 연장이 필요하다”(박성훈 국민의힘 부산 북구을 의원, 11일 기재위), “지방 중소기업 R&D 지원 예산이 윤석열 정부 들어 특히 목포에서 급감했다. 특별한 관심 가져달라”(김원이 민주당 전남 목포 의원, 8일 산자중기위) 같은 민원이 쏟아졌다. 보좌진들 사이에선 “밤만 되면 국감이 아닌, 민원 야(夜)시장”이란 말이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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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열린 교육부·국가교육위원회·국사편찬위원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김건희 여사 논문 의혹 관련 질의하고 있다. 뉴스1

낮에는 정쟁이, 밤에는 민원이 오가는 국정감사에서 당초 취지인 민생과 정책은 실종되고 있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학 교수는 “국회의원이 차기 총선을 위해 낮엔 정쟁 이슈로 인지도를 높이고 당 지지층에 밀착하면서, 밤엔 지역구 민원을 읍소하기 바쁘다”며 “국감장이 현역 의원 실속만 챙기는 현장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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