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민족개조론과 함께 퍼진 우생학...100년 지나도 남아있는 잔재[BOOK]

본문

17292288767937.jpg

책표지

우리 안의 우생학
김재형 외 지음
돌베개

우생학(優生學)이 한국에서 퍼지기 시작한 것은 100년 전이다. 일제강점기 때인 1920년대 들어 ‘민족개조론’이 조선 지식인들 사이에서 활발하게 논의됐다. 소설가 이광수는 ‘상대적으로 나은 형질을 지닌 사람들을 뽑아서 그 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신체 개조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1933년에는 ‘조선우생협회’가 창설되기에 이른다.

 『우리 안의 우생학』은 한국에서의 우생학 100년사를 환기하고 학계와 시민사회에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키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관련 학자들이 함께 펴낸 책이다. 김재형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등 공동 저자들은 우생학이 어떻게 차별을 만들어 내는지 연구하고 우생학에 대한 비판적 메스를 들이댔다. 생명을 살 가치가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누고, 살 가치가 없다고 판단된 사람들의 생식 또는 생존을 막으려는 우생학적 시도들이 한국에서도 때로는 노골적으로 자행됐다는 사실을 고발했다.

 한국은 우생학적 이유에 의한 낙태를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나라다. 1973년 처음 제정된 모자보건법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허용하는 요건을 명시하고 있다. 50년 넘게 ‘우생학’이라는 단어가 법률에 잔존해 온 것이다. 모자보건법은 또한 공익상 필요한 경우 불임수술을 국가가 강제할 수 있다는 조항도 포함하고 있었다. 뒤늦게 1999년 이 조항이 폐지되긴 했지만 정신지체 장애인에 대한 강제불임시술은 공공연하게 행해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지은이들은 산전(産前) 진단기술의 발달이 촉진한 장애아 낙태, 한센인 등의 격리시설에서 행해진 강제 단종과 강제 낙태 등에 대해서도 사례를 상세하게 소개했다. 나치 독일의 아리아인 우월주의와 유대인 학살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한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우생학적 사고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회적 풍토는  반드시 개선돼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우생학에 대한 비판을 공론화하고 사회적 성찰을 촉구하는 중대한 학문적 성과이자 탈우생사회로 가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46,963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