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백두대간 품은 위기 청소년들…“돌아가면 엄마 밥 지어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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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중앙플러스 ‘호모 트레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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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종주에 참가한 살레시오청소년센터 소속 중고생들이 13일 소백산 연화봉을 향해 걷고 있다. 이들은 지리산 천왕봉을 출발해 태백산까지 백두대간 마루금 390㎞를 걸었다. 김영주 기자

“살레시오청소년센터에서 생활하는 청소년 모두 백두대간 종주를 해봤으면 좋겠어요. 그럼 재범률이 확 내려갈 것 같아요.”

지난 17일, 강원 태백시 태백산 천제단(1560m)을 앞두고 한산(14·가명)군이 말했다. 그는 지난달 18일 지리산 천왕봉(1915m)을 출발해 태백산까지 30일간 백두대간 마루금 390㎞를 걷는 ‘청소년 백두대간 종주’에 참가한 살레시오청소년센터 소속 중고생 8명의 참가자 중 한 명이다. 이날은 전체 일정의 마지막 날이었다. 아이들은 천제단에 올라 “다시는 사고 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더중앙플러스(더중플)의 걷기 시리즈 ‘호모 트레커스’와 살레시오청소년센터는 6호 처분을 받은 청소년의 백두대간 종주를 기획했다. 6호 처분은 비교적 경미한 비행을 한 청소년을 종교재단 등이 6개월간 위탐감호하는 가정법원의 처분 명령이다.

한산 군을 비롯해 신비(15·가명), 강산(16·가명), 백두(16·가명), 준산(17·가명), 이산(17·가명), 한범(18·가명), 김빈(18·가명) 군은 이날 태백산 장군봉(1567m)에 올라 한 달간의 백두대간 종주를 마쳤다. 백두 군은 “처음 트레이닝캠프에 참여한 8월만 해도 ‘내가 백두대간을 걸을 수 있을까’ 상상도 못했는데, 이렇게 400㎞를 완주하고 나니 스스로 대견하고 뿌듯하다”고 말했다.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실 거의 매일 하나 이상의 ‘사건’이 발생한 긴장의 연속이었다. 종주 초반 이산 학생이 지리산 고리봉(1305m)에서 하산 중 무릎이 겹질려 병원으로 실려 갔다. 태백산 정상을 앞두곤 신비 군이 바위틈에서 용변을 보던 중 절벽으로 추락해 발목을 다치기도 했다. 이때마다 동행자로 참여한 김미곤(52, 히말라야 8000m 14좌 완등) 대장이 학생들을 업고 산을 내려왔다.

처음엔 아이들끼리 보이지 않는 신경전도 잦았다. 매일 15~25㎞를 걷다 보니 몸이 힘들고,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내는 일이 많았다. 주먹다짐 일보 직전까지 가는 상황도 수차례. 그때마다 살레시오청소년센터 신부와 10여명의 동행자가 중재자로 나섰다.

한 달간 걷고 먹고 자는 루틴이 ‘재범 방지’ 프로그램의 다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걷기를 통해 인내와 끈기, 절제력과 자제력을 키우자는 취지였다. 매일 새벽 4~5시 야영장에서 일어나 침낭을 개고 스스로 아침을 챙기고, 오전 6시에 어김없이 백두대간 마루금(능선)에 섰다. 오후가 되면 다시 야영장으로 가 텐트를 쳤다. 매일 저녁 7시엔 전체 미팅을 통해 하루를 마무리했다. 아이들 입장에선 40~60대 어른들과 매일 회의를 하는 게 부담이었지만, 나날이 언변과 생각이 깊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5일 걷고 하루 쉬는’ 일정으로 5세션을 진행했다.

3세션이 지나자 아이들의 변하는 모습이 감지됐다. 체력이 좋은 아이들은 물을 더 지고, 스스로 쓰레기를 주웠다. 휴식일엔 아이들이 어른들을 위해 볶음밥과 계란후라이를 만들어 차렸다. 한범 군은 “엄마에게도 김치볶음밥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지난 18일, 하이원리조트에서 진행한 ‘도착 파티’엔 12명의 학부모가 참여했다. 부모들은 “눈빛이 달라졌다”, “산에서 많이 성장한 것 같다”며 대견해 했다. 이산 군의 아버지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와 같이 백두대간을 걷는 프로그램도 있었으면 좋겠다. 꼭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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