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건물도 마음도 수리 필요해요"…첫 역사 장편소설 낸 김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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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는 소수 언어라 작가들 사이에선 (번역이 쉽도록) 단문으로 써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어요. 그런데 한강 작가님은 쉽지 않은 문체에, 한국적 배경이 두드러지는 작품을 쓰시잖아요. 작가님의 노벨상 수상으로 아, 그냥 마음껏 써도 되는구나, 내 몸에 익혀져 있는 한국어의 체질대로 써도 괜찮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정말 기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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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장편소설 『대온실 수리보고서』를 낸 김금희 소설가.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이야기하는 김금희(45) 작가의 목소리는 한껏 밝았다. 같은 언어를 사용해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후배 문인으로서 “소원을 푼 듯한 후련함”을 느꼈다고 했다. 이번 노벨상은 국내 독자를 문학으로 끌어모으는 계기가 된 것은 물론, 한국 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기점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인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인물이 바로 김금희 작가다.

최근 발표한 신작 장편소설 『대온실 수리보고서』(창비)는 그 가능성을 확인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전작인 『너무 한낮의 연애』, 『경애의 마음』 등에서 마음속 섬세한 무늬를 감각적인 언어로 포착해 독자의 공감을 끌어냈다면, 이번엔 이야기의 힘으로 독자를 작품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이 전해지기 직전인 지난 7일 만난 김 작가는 “그동안 등장인물의 내면과 트라우마를 형상화하는 데 골몰했다면 이번에는 이야기가 전면에 나서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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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 작가의 신작 『대온실 수리보고서』 표지. 사진 창비

이번 작품은 데뷔 15년 차인 그가 처음으로 선보이는 역사소설이기도 하다. 제목의 ‘대온실’은 1909년 한국 최초의 서양식 온실로 지어져 100년 넘게 그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서울 창경궁 내 대온실이다. 30대 여성 영두가 이 대온실을 보수하는 공사의 백서를 기록하는 일을 맡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창경궁 인근에서 사춘기의 한때를 보낸 영두는 대온실의 수리 과정을 지켜보며 접어두고 싶었던 기억과 마주한다. 이와 함께 대온실을 설계한 일본인 후쿠다 노보루(실제 인물은 후쿠바 하야토)의 사연, 일제강점기 창경원에서 일어난 비밀스런 사건 등이 흥미진진하게 얽혀든다.

김 작가는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던 20대의 어느 날 창경궁 대온실을 만났다. “아버지 사업 실패로 집안이 엉망이라 마음이 어지럽던 때였어요. 궁과 관련한 책을 편집하던 중 찾았던 창경궁에서 갑자기 쏟아진 비를 피하느라 오랫동안 대온실을 바라볼 기회가 있었죠.” 고요한 궁 안에서 유독 이질적인 빛을 뿜어내던 이 건물의 사연이 궁금해졌고, 그렇게 마음속에서 ‘굴러가기 시작한’ 이야기가 글로 나오기까지 20여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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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 작가는 "기억과 직면해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이유 중 하나는 고증이었다. 소설을 쓰기 위해 일본어판으로만 나와 있는 후쿠바의 회고록을 번역해 읽고, ‘한국 동물원 80년사’ 같은 자료도 꼼꼼히 살폈다. 고건축과 관련한 용어를 익히고, 당시 의복이나 물가 등을 파악하느라 숫자와 씨름하기도 했다. 그 결과, 책 말미에 8쪽의 ‘참고문헌’이 실려있는 소설이 됐다. “파면 팔수록 봐야 할 자료가 계속 생기더라구요. 건조한 논문이나 보고서 안에서 사람의 숨소리를 살려내야 했어요. 한국전쟁 당시 창경원 동물을 어떻게 폐사시켰는지, 사육사들이 끝까지 어떻게 동물들을 돌봤는지를 읽다가 펑펑 울기도 했습니다.”

소설 속에는 영두가 머물렀던 낙원하숙의 주인 문자 할머니를 통해 해방 이후에도 한국에 남았던 잔류 일본인 여성들의 삶이 그려진다. 역사를 되살리기 위해선 일제강점기 우리 땅에 머물던 일본인들의 흔적 역시 파헤쳐야 했다. 작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사연이 합쳐서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지도록 했다”면서 “일본에 대한 감정을 넘어 ‘사람의 이야기’로 다가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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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완공된 창경궁 대온실. 강정현 기자

단단한 서사가 바탕을 이루고 있지만 그 시간을 견뎌낸 ‘마음’을 형상화하는 작가의 장기는 어김없이 발휘된다. 영두는 대온실 수리보고서를 만들며 “통째로 버리고 싶던” 과거의 시간과 직면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리하여 “발을 내밀면 잠시 아무것도 없는 공중인 것도 같았지만, 허방을 짚는 듯한 실패감은 느껴지지 않았다(375쪽)”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은 아프거나 슬픈 기억을 그냥 지우고 폐기하려 하죠. 하지만 그걸 끌어내 수리하고 다시 해석하는 일이 사람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고 생각해요. 그건 한 나라나 세계의 아픈 역사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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