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아, 막 살걸" 대장염 수술이 터닝포인트 됐다…이제훈 깜짝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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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제훈이 영화관 소개 유튜버로 변신했다. 이름을 딴 유튜브 채널 '제훈씨네'를 통해 지난 5월부터 전국 20여곳 영화관을 소개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뉴욕 방문했을 때 오래된 필름 상영 극장들이 있는 게 너무 부러웠거든요. 우리나라에도 그런 공간이 남아있을까? 그런 궁금증이 생겨서 시작한 프로젝트죠.”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가 영화관을 대체하고 있는 시대. 올여름 액션영화 ‘탈주’의 256만 흥행 주역 배우 이제훈(40)이 점차 사라져가는 전국의 명물 영화관을 직접 찾아 나서는 유튜버로 변신했다. 올 5월 MBC 드라마 ‘수사반장 1958’ 종영과 함께 문을 연 유튜브 채널 ‘제훈씨네’를 통해서다.
팬데믹 이후 어려움을 겪는 전국 독립‧예술영화관을 중심으로 강릉 다락방 영화관 무명부터 1935년 개관한 국내 두 번째 오래된 광주극장 등 9개 지역 20곳 가까운 영화관 및 문화공간, 독립‧단편영화 감독과 배우들을 소개해왔다. “조회수가 아닌 영화에 대한 진정성이 가득한 유튜브” “잘 몰랐던 독립영화관을 소개해줘서 감사하다” 등 댓글이 잇따른다.

배우 이제훈 유튜버 변신 #전국 영화관 소개 '제훈씨네' #허혈성대장염 수술 후 결심 #"사라져가는 영화관들, #관객 애정하는 공간으로 남길"

이제훈, 철거된 원주 아카데미극장부터 간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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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훈씨네' 촬영차 서울 종로 예술영화관 '에무시네마'를 찾은 배우 이제훈을 만났다. 에무시네마는 소피아 코폴라 감독을 좋아하는 그가 이 감독의 작가주의 영화 '썸웨어'(2010)를 보기 위해 상영관을 찾으며 알게 된 곳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의 첫 방문지는 지난해 말 갑작스레 철거된 원주 아카데미극장 거리. 아카데미극장은 1963년 개관한 단관극장 원형을 60년간 보존해왔지만 2022년 원주시장이 바뀌면서 시민들의 반발에도 철거를 강행했다. 지난달 폐관 전 다녀온 66년 충무로의 상징 대한극장까지, 유서 깊은 영화관의 잇따른 폐업 소식이 그가 유튜브를 결심한 계기가 됐다.
이공계 대학을 다니다 연기의 꿈을 잊지 못해 24살에 한국예술종합학교(연극원 08학번)에 늦깎이 입학한 이제훈. 데뷔 초 ‘파수꾼’(2011) 등 독립영화가 낳은 스타로 부상했다. 신인 시절 광화문 미로스페이스(폐관)‧씨네큐브, 압구정CGV 아트하우스 등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든 그에게 '제훈씨네'는 꿈을 틔운 초심을 되짚는 의미도 있다.

2019년 공동 설립한 영화제작사(하드컷)에 이어, 2021년 1인 소속사(컴퍼니온)를 직접 설립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 그를 최근 서울 종로 영화관 에무시네마에서 만났다. 해외에도 출시된 ‘모범택시’ 시리즈(SBS), ‘탈주’ 동남아 팬미팅에 더해, 올 하반기 방영할 tvN 예능의 핀란드 촬영, 내년 방영 예정인 JTBC 드라마 ‘협상의 기술’ 일본 로케이션 일정이 빡빡한 가운데 '제훈씨네' 녹화를 위해 짬을 냈단다.
“극장 가는 걸 좋아하고 영화를 많이 보다 보니 배우까지 꿈꾸게 됐다”는 그에게 사라져가는 극장을 기록하자는 발상은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보이지만, 살인적인 스케줄까지 감내하며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데는 사연이 있다. 머릿속에 묵혀뒀던 구상이 급물살을 탄 건 지난해 10월 허혈성 대장염으로 응급수술을 받으면서다.
“사망 동의서에 사인하고 전신 마취하며 잠드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인생 막 살 걸,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 걸 그랬다’. 몸을 추스르자마자 '제훈씨네' 촬영을 시작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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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제훈이 지난 5월 시작한 유튜브 '제훈씨네'. 단관극장이 하나도 남지 않은 원주 시네마 로드를 거쳐 인천, 제주, 서울, 광주, 파주, 강릉, 부천, 부산 등 전국의 영화관을 방문해왔다. 사진 유튜브 캡처

첫 방문지를 원주로 정한 이유는.  

“더 일찍 시작했다면 원주 아카데미극장을 기록에 남겼을 거잖아요. 극장이 유지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없어지더라도 극장을 사랑했던 분들이 영상으로 추억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았죠.”

영화관이 사라진 거리를 본 감정은.  

“독립영화관 뿐 아니라 지방은 멀티플렉스 극장도 없어지고 있더군요. 배우로서 영화 신작이 줄고 있다는 걸 피부로 느끼니까, 위기 의식이 컸죠.”

영화관 선정 기준은.  

“자주 가던 영화관, 추천 받은 곳도 있죠. 다양하게 선별해요. 평소 애니메이션을 잘 안 봤는데, 부천에서 독립 애니메이션 극장과 제작자 분들을 만나며 시야를 넓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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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제훈(왼쪽부터)이 자신의 유튜브 '제훈씨네'를 통해 최근 개봉한 저예산 영화 '한국이 싫어서' 주연 배우 고아성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찾아간 영화관에서 직접 독립영화를 보고, 독립영화 감독‧배우, 영화관 운영자, 지역 예술인을 인터뷰하기도 하는데.  

“좋은 영화에 대해, 또 극장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같이 생각하고 얘기해보고 싶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관은.  

“제주도 단편 영화관 숏트롱, 강릉 다락방 영화관 무명입니다. 그렇게 작은 공간에 좋은 영화로 관객을 불러온다는 게 대단했어요. 독립영화관은 수익 만으로 운영이 힘들어서 부업 하는 분도 많아요. 그저 영화가 좋아서 하는 그 마음에 힘을 보태고 싶죠.”

첫 극장 영화 '장군의 아들3'…"전국 영화관 100곳 이상 소개 목표"

이제훈에게 영화관은 “가장 꾸밈 없는 나 답게 만들어주는 곳”이다. 처음 극장에서 본 영화는 ‘장군의 아들 3’(1992). 극장에 빼곡한 뒤통수들, 관객들이 같이 웃고 긴장하는 분위기가 8살 꼬마의 눈에 신기하게 보였단다. ‘초록물고기’(1997, 이창동 감독)의 강렬한 감정이 스크린을 뚫고 나온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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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제훈이 유튜브 '제훈씨네'를 통해 서울 충무로 대한극장이 지난달 폐관하기 전 극장을 찾아 영화 관람 중인 모습이다. 사진 유튜브 캡처

“나만의 영화도 있지만, 같이 본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며 만들어가는 극장 문화가 그저 행복하다”는 이제훈. 운 좋게도 그 세계의 일부가 됐다는 그는 스크린 데뷔 15년이 지난 지금도 관객으로서 자주 극장을 찾는다.

극장이 각별한 이유는.  

“직업상 항상 남한테 어떻게 보일지 의식하게 되는데, 지칠 때마다 극장에 가면 나를 돌아보고 채워가게 돼요. 다르덴 형제, 켄 로치, 이창동, 홍상수 등 거장 감독 작품을 대리 경험하며 인생을 배웠어요. 또 독립영화는 세상을 깊게 보고 넓게 이해하게 해주죠.”

전국 영화관 100곳 이상 소개하는 게 목표라고.  

“여느 유튜브 콘텐트의 20~30배 제작비를 들이고 있는데 그걸 감당하면서 만들어가겠다는 의지를 다지기 위해 호기롭게 '제훈씨네' 100편 촬영을 목표로 밝혔어요. 평생의 기록이 될 수도 있는 마라톤이죠. 배우 본업 틈틈이 계속해서, 시간이 지나 누군가 들춰봤을 때 ‘참 좋았다’고 공감하는 기록이 되면 좋겠습니다.”

3년 전 단편영화로 연출 데뷔한 이제훈은 감독으로서 차기작도 구상 중이다. 영화관을 직접 운영하는 꿈도 갖고 있다는 그는 “'제훈씨네'를 계기로 영화관이 사람들이 더 많이 찾고 애정하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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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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