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영화관 다 사라지기 전에 마지막 기록 남기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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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 종로구 에무시네마에서 만난 배우 이제훈은 “‘제훈씨네’를 계기로 영화관이 사람들이 더 많이 찾고 애정하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뉴욕 방문했을 때 오래된 필름 상영 극장이 있는 게 부러웠거든요. 우리나라에도 그런 공간이 남아있을까, 궁금증이 생겨 시작한 프로젝트죠.”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가 영화관을 대체하는 시대다. 올여름 액션 영화 ‘탈주’의 256만 흥행 배우 이제훈(40)이 사라져가는 전국의 명물 영화관을 직접 찾아가는 유튜버로 변신했다. 유튜브 채널 ‘제훈씨네’를 통해서다. 강릉 다락방 영화관 무명, 1935년 개관한 국내 두 번째 오래된 광주극장 등 20곳 가까운 영화관, 문화공간, 독립·단편영화 감독·배우를 소개한다. 첫 방문지는 지난해 말 갑작스레 철거된 원주 아카데미극장 거리. 아카데미극장은 1963년 개관해 단관극장 원형을 지켜왔는데, 2022년 바뀐 시장이 시민 반발에도 철거했다. 66년간 충무로의 상징이던 대한극장 등 유서 깊은 영화관의 잇단 폐업이 그를 유튜버로 만든 계기다.

이공계 대학을 다니다가 24살에 한국예술종합학교(2008학번)에 ‘늦깎이’ 입학한 이제훈은 데뷔 초 ‘파수꾼’(2011) 등 독립영화를 통해 떴다. 신인 시절 광화문 미로스페이스(폐관)·씨네큐브, 압구정CGV 아트하우스 등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든 그에게 ‘제훈씨네’는 초심을 되짚는 의미도 있다. 그는 2019년 영화제작사(하드컷)에 이어, 2021년 1인 소속사(컴퍼니온)를 직접 설립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를 최근 서울 종로 영화관 에무시네마에서 만났다. 해외 출시된 ‘모범택시’ 시리즈(SBS), ‘탈주’ 동남아 팬 미팅, 올 하반기 방영할 tvN 예능 촬영, 내년 방영 예정인 JTBC 드라마 ‘협상의 기술’ 일본 로케이션 등 빡빡한 일정 속에 짬을 냈다고 했다.
“극장 가는 걸 좋아하고 영화를 많이 보다가 배우까지 꿈꾼” 그다. 사라지는 극장을 기록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 같지만, 살인적 스케줄 속에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데는 또 다른 사연이 있다. 그는 지난해 10월 허혈성 대장염으로 응급수술을 받았다. “동의서에 사인하고 전신마취해 잠드는 순간, ‘아, 인생 막 살걸’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걸’ 생각했어요. 몸을 추스르자마자 시작했죠.”

영화관이 사라진 거리를 본 감정은.
“독립영화관뿐 아니라, 지방은 멀티플렉스 극장도 없어지더라. 영화 신작이 줄고 있는 걸 피부로 느끼니까, 위기의식이 컸다.”
영화관 선정 기준은.
“자주 가던 영화관, 추천받은 곳도 있다. 평소 애니메이션은 잘 안 봤는데, 부천에서 독립 애니메이션 극장과 제작자들을 만나며 시야를 넓혔다.”
찾아간 영화관에서 직접 독립영화를 보고, 독립영화 감독·배우, 영화관 운영자, 지역 예술인을 인터뷰했는데.
“좋은 영화에 대해, 또 극장이 어떻게 되는지 같이 생각하고 얘기해보고 싶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관은.
“제주 단편 영화관 숏트롱, 강릉 다락방 영화관 무명이다. 수익만으로는 운영이 힘들어서 부업 하는 분들도 많다. 그 마음에 힘을 보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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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영 디자이너

이제훈에게 영화관은 “꾸밈없이 나답게 만들어주는 곳”이다. 처음 극장에서 본 영화가 ‘장군의 아들 3’(1992). 빼곡한 관객의 뒤통수와 같이 웃고 긴장하는 분위기가 8살 꼬마 눈에 신기했다고 한다. ‘초록물고기’(1997)의 강렬함이 스크린을 뚫고 나오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그는 “나만의 영화도 있지만, 같이 본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며 만들어가는 극장 문화가 그저 행복하다”고 했다.

극장이 각별한 이유는.
“직업상 항상 남한테 어떻게 보일지 의식하게 된다. 지칠 때 극장에 가면 나를 돌아보고 채운다. 다르덴 형제, 켄 로치, 이창동, 홍상수 등 거장의 작품에서 인생을 배웠다. 독립영화는 세상을 깊게 보고 넓게 이해하게 해준다.”
100곳 이상 소개하는 게 목표라고.
“여느 유튜브 콘텐트의 20~30배 제작비를 들인다. 의지를 다지기 위해 호기롭게 ‘제훈씨네’ 100편 촬영을 목표로 밝혔다. 시간이 지나 누군가 들춰봤을 때 ‘참 좋았다’고 공감하는 기록이 되면 좋겠다.”

3년 전 단편영화로 연출 데뷔한 이제훈은 감독으로서 차기작도 구상 중이다. 그리고 영화관을 운영하는 꿈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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