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손님 응원 손편지에 버텼죠”...전국 첫 24시간 무인서점 연 MZ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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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광안리해수욕장 인근 지하에 자리한 서점 ‘밤산책방’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용자 사이에 명소로 떠올랐다. 2년 전 전국 처음으로 ‘24시간 연중무휴ㆍ무인서점’으로 문을 연 작은 책방이다. 지역 주민과 관광객 등 책을 통한 교감과 위로를 원하는 이들이 책방을 찾고 있다.
“7살에 얻은 백반증, 모르는 곳 떠나고팠다”
지난 23일 오후 2시30분쯤 밤산책방을 찾았다. 입구에는 ‘서툴지만, 열심히 사는 누군가를 응원하고 싶어서, 위로가 되길 바라는 책을 팝니다’라는 안내문이 있었다. 책방(93㎡)에는『아무것도 모른 채 어른이 되었다』 등 위로와 자기성찰을 주제로 한 책 50여종이 진열돼 있었다. 김소라(35) 대표가 직접 쓴 책 소개ㆍ추천 글도 함께 놓였다.
김 대표는 “본래 이곳은 공황장애를 앓으며 힘든 시간을 보내던 중 만든 아지트였다. 아픔이 있는 이들과 이 공간을 공유하고 싶어 책방으로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책방을 소개하며 밝게 웃는 김 대표의 눈가가 희게 빛났다. 어릴 적부터 앓았던 백반증 흔적이다. 백반증은 색소세포 파괴로 여러 크기와 모양의 흰색 반점이 피부에 나타나는 후천적 질환이다.
부산에서 태어나 할머니와 큰아버지 손에 자라던 김 대표가 백반증에 걸린 건 7살 무렵이다. 팔에서 시작한 반점은 얼굴·목·손끝 등 몸 곳곳으로 번졌다. 김 대표는 “(병 때문에) 주변 어른과 친구들이 늘 ‘딱한 아이’로 여겼다. 학교에서도 힘들 때가 많았다”고 했다. 피부색만 변할 뿐 통증은 없는 병이다. 하지만 얼굴이나 손을 보고 놀란 표정을 애써 감추는 주변 반응이 어린 김 대표 마음엔 고스란히 상처로 남았다.
서울살이 10년, 못 이룬 정규직 꿈
김 대표는 “늘 나를 모르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고교 과정을 마친 20살 때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 시청 앞 전자기기 가게 경리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의류매장·콜센터·카드사 등을 떠돌았다. 그는 “1, 2년 계약이 끝날 때마다 직장을 옮겨야 했다. 더 나이 들면 써주는 데도 없어질까 봐 불안했다”고 했다.
김 대표는 정규직을 꿈꿨다. 마지막으로 일한 카드사에서는 ‘실적만 내면 무기계약직이 될 수 있겠다’는 꿈에 부풀었다. 하지만 회사 방침이 바뀌면서 꿈은 무산됐다.
“나만 힘들 리 없다” 생각에 아지트를 책방으로
카드사 퇴직 후 부산에 돌아왔지만 ‘실패했다’는 자책감이 깊었다. 이유 모를 성화나 불안감이 커 새 직장 동료, 가족과도 자주 부딪혔다. 이때 공황장애가 생겼다. ‘나쁜 생각’마저 들었을 때, 그는 출퇴근길에 지나치던 지하실(지금의 책방)을 월세 30만원에 계약했다. 카페 바리스타를 하며 월급으로 110만원을 받던 때다.
혼자있을 공간이 절실했다고 김 대표는 설명했다. 그는 새벽에 퇴근했는데, 코로나19에 '9시 통금'이 생겨 달리 갈 곳도 없던 때다. 빔프로젝터와 간이침대를 넣고 이곳에서 혼자 책을 읽고 영화를 봤다. 술 취해 잠들기도 했다. 심신을 조금 추슬렀을 때 문득 김 대표는 ‘나만 이렇게 힘들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이 아지트를 비슷한 아픔을 겪는 다른 사람과 함께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하다 ‘비대면 24시간 무인서점’을 떠올렸다. 김 대표는 “밤늦게라도 편히 와서 쉬고 가라는 의미에서 ‘밤산책방’으로 이름을 지었다”고 설명했다.
“내 가게지만, 내 맘대로 닫을 수 없어요”
밤산책방은 2022년 6월 문을 열었다. 길을 지나던 이들이 하나둘 책방에 찾아왔다. 이들 중 일부가 ‘감성 책방’ 등 태그를 달아 SNS에 올리면서 유명해졌다. 지금 책방 수익은 처음 지하실을 얻던 때 직장에서 받던 월급(110만원)보다는 많아졌다고 한다. 김 대표는 “일상의 상처를 견디면서 어디선가 위로받고 싶은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책방을 운영하는 동안 공황장애도 크게 호전됐다.
‘24시간 무인 영업’을 노린 책 도둑이나 쓰레기 투기꾼 등 어려움도 많았다. 폭우로 책방이 물에 잠겼을 땐 폐업도 고민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이곳을 소중히 여기게 된 사람들이 많다. 내 가게지만, 이들을 생각하면 마음대로 문을 닫을 수 없게 됐다”고 했다. 방문객이 남긴 응원의 손편지와 방명록도 큰 힘이 됐다고 한다. 김 대표는 “밤산책방을 운영하며 있었던 일을 엮어 책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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