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타이레놀 파는데, 겔포스는 왜 안돼?”…‘편의점 비상약 확대’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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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이후 국내 편의점에서는 해열제, 소화제 등 13개 안전상비의약품을 구비하고 있다. 사진 BGF리테일

“심야 시간 응급 상황에 대비해 편의점 안전상비약 품목을 늘려야 한다.”(시민단체 ‘안전상비약 시민네트워크’)
“부실한 안전상비약 판매·관리와 부작용 대책부터 마련하라.”(서울시약사회)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안전상비약 품목 확대를 둘러싸고 해묵은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안전상비약 확대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다. 해열제, 소화제, 소염제로 국한된 편의점 판매 가능 약품이 지사제, 제산제, 화상 연고 등으로 확대될 수 있을지가 관심사다.

편의점 상비약 늘어날까 

10년 이상 된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정부와 의료계 간 갈등으로 응급의료체계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다. 지난 8일과 1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예지 의원(국민의힘)과 백종헌 의원(국민의힘)은 “안전상비약은 의료대란 상황에서 더 중요하다”며 제도를 재정비하고 품목을 확대할 의사가 있는지 질의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약무정책과는 “의정갈등이 지속되며 사회적 논의가 충분히 이뤄지기 어렵다”면서도 “현 상황이 어느정도 마무리되면 안전상비약 대체 품목과 확대 방안을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안전상비의약품(안전상비약) 약국 외 판매 제도는 심야·공휴일에도 감기약, 해열제 등 일반의약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난 2012년 11월 도입됐다. 당시 약사법 개정을 통해 20개 이내 품목을 상비약으로 지정하고 24시간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팔 수 있도록 했다. 당시 해열진통제(5개), 감기약(2개), 소화제(4개), 파스(2개)로 4종, 13개 품목만 상비약으로 지정됐는데 10여 년간 품목 변화는 없었다. 그 사이 타이레놀 2개 제품(80mg, 160mg)이 생산 중단되며,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상비약은 타이레놀 500mg, 판콜에이 등 11개 품목으로 줄었다.

“타이레놀 되지만 겔포스는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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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점에서 보건소와 구청 관계자들이 안전상비의약품 판매 실태를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품목 확대를 원하는 이들은 설사를 멈추는 지사제(스멕타), 속쓰림을 막는 제산제(겔포스), 화상 연고 등을 상비약으로 지정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가벼운 질병에 대한 소비자의 선택권과 편의성을 확보하고 건강보험 재정을 절감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에 따르면 안전상비약 전체 매출 중 74.3%가 약국이 운영하지 않는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에 집중돼 있다.

시민단체 ‘안전상비약 시민네트워크’는 “편의점 안전상비약제도는 심야 시간의 응급 상황을 해결하는 데 기여해왔다”며 “미국(30만 개), 영국(약 1500개), 일본(약 1000개) 등 해외 주요국의 약국 외 판매 의약품 수와 비교할 때 한국은 제도가 퇴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편의성 증대” vs “오남용 우려”

반면 약사회 측은 의약품 오남용에 따른 국민 건강 저해를 이유로 품목 확대를 반대하고 있다. 휴일지킴이약국, 공공심야약국 등을 확대해 의약품 구입 불편을 해소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시민단체 ‘미래소비자행동’에 따르면 올해 안전상비약 판매업소 1050곳 중 94.3%가 판매 규정을 1건 이상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 중 동일 품목을 1회 2개 이상 판매한 업소가 58.5%로 가장 많았다.

서울시약사회 측은 “지금 필요한 것은 보건의료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약국 관련 정책”이라며 “안전상비약의 품목을 확대할 것이 아니라 상비약 판매·관리와 부작용 등에 대한 대책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안전상비약 품목이 2012년 지정된 이후 한 번도 재평가·재심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각 단체와 의견을 나눌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의약품 오남용 문제를 개선하고 소비자의 약품 접근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점검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오윤정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원은 “해외 주요국은 의약품 오남용 문제를 적극적으로 관리하며 안전과 편의성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가고 있다”며 “안전한 관리 체계 하에 소비자가 야간에도 상비약을 쉽게 확보할 수 있도록 논의의 장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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