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인권위, 소위 이견 있어도 ‘차별 진정’ 기각·각하 가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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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소위원회 위원 3명 중 1명만 반대하는 경우 차별 등 진정 사건을 자동 기각·각하할 수 있도록 했다. 인권위는 출범 뒤 23년간 소위원회 위원 세 명의 의견이 만장일치되지 않으면 안건을 재논의하거나 전원위에 회부해 심의를 계속했는데 이같은 기존 방식을 바꾼 것이다. 향후 인권위 의사결정의 다양화에 치명적일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인권위는 28일 오후 3시 제20차 전원위원회를 열고, 회의 3시간여 만에 소위 의결방식 변경에 관한 ‘소위에서 의견불일치 때의 처리’ 건에 대해 찬성 6명(강정혜·김용원·김종민·이충상·이한별·한석훈), 반대 4명(김용직·남규선·소라미·원민경)으로 가결했다.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기권했다. 표결에 따라 향후 소위 의결시 위원 3명 중 1명만 반대해도 사건을 전원위에 회부하지 않고 기각·각하 시킬 수 있게 됐다. 전원위에 이날로 14번째 재상정된 끝에 의사결정 결론이 난 것이다.
논란의 발단은 ‘(전원위에서)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내용의 국가인권위법 제13조 제1항과 ‘소위원회의 회의는 구성위원 전원의 출석과 출석위원 전원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내용의 국가인권위법 제13조 제2항에 대한 해석의 차이였다. 국가인권위원회운영규칙 제24조(소위원회의 의결정족수)에 따르면 ‘소위원회는 위원 3명 이상의 출석과 3명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이날 찬성 의견 측은 “소위원회 의결정족수 조항에서 말하는 '의결'은 가결만 의미하지, 부결 정족수는 규정돼있지 않다"라는 주장을 폈다. 이충상 상임위원은 “대법원 등 다른 국가기관의 소위원회 의결 과정을 봐도 부결 정족수를 명시하고 있는 곳은 없다”고 말했다. 현재 인권위는 안창호 위원장을 비롯해 정부·여당 지명 몫 위원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반면에 반대 의견 측은 “1명이 반대해도 진정이 자동 기각되는 건 인권위법에 위배된다"고 맞서고 있다. 남규선 상임위원은 표결 직전 발언에서 “해당 조항은 인용의 권고에만 한정적으로 해석돼선 안된다. 해당 안건을 철회할 것을 요청한다”며 “지난 7월 행정법원 판결에서 드러났듯이 자동 기각은 피해구제 및 인권 정책 개선이란 인권위의 본분을 지연시키고 대외적 이미지를 실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번 건은 반대했으나, 중도 입장을 표명해온 김용직 위원은 ‘소위 위원을 4명으로 늘려 과반 정족수로 안건을 처리하자’는 안건에는 찬성표를 던졌다.
그간 인권위는 ‘합의체 기구’란 특성에 따라 소위에서 진정 사건을 기각·각하할 때 소위 구성 위원 3인의 만장일치가 필요하다고 해석해왔다. 1명이라도 인용 의견을 내면 해당 안건을 11명 전원이 논의하는 전원위원회로 올려왔다. 2001년 출범 이후 '인권 침해 가능성을 폭넓게 보고 신중하게 논의하자'며 이어져 온 관행이다.
그러나 만장일치가 나올 때까지 가결도 부결도 아닌 교착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는 문제가 발생하면서 인권위 내부에서 격론이 이어지고 있다. 앞서 지난해 8월 김용원 위원이 소위원장인 인권위 침해구제제1위원회는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낸 수요집회 방해 진정과 관련해 위원 3명의 뜻이 모이지 않았단 이유로 1명의 인용 의견을 무시하고 기각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후 지난해 10월 김 위원은 위원 1명만 반대해도 논의 없이 기각할 수 있다는 내용을 전원위 안건으로 올렸다. 그러다 지난 6월 김용원·이충상 등 위원 6명은 전원위에서 ‘소위원회 의결정족수 안건’에 대한 표결을 미루자 전원위를 보이콧에 나서기도 했다.
앞서 지난 7월 서울행정법원은 정의연이 인권위를 상대로 낸 진정 사건 기각결정 취소소송에서 “20년 넘게 진정인의 권리 보호를 위해 유지된 방식을 바꾸는 건 평등의 원칙과 신뢰 보호 원칙에 어긋나므로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인권위가 항소를 포기하면서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에 통과된 안건은 인권위법에 위배된다고 본다”며 “구제가 절박한 사람들이 말할 기회조차 박탈당하게 됐다는 점에서 '다양한 사회적 현상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인권위 존재 목적 자체가 깨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사회적 편견이나 정치적 민감도가 높은 안건은 조사도 제대로 안 되고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행정법원에서 소위 의결방식 변경의 위법성을 인정한 만큼, 절차 변경 이후 기각된 진정 사건 관련자들이 소송을 제기하고 나설 가능성이 크다. 박한희 인권정책대응모임 변호사는 “행정법원 결정에 반하는 일방적인 강행이며, 인권위가 가진 합의체 논의 기능을 무력화했다”며 “인권위에서 기각된 사건들이 최후의 보루인 법원으로 몰려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다수 안건 처리를 효율성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인권위에 따르면 지난해 1~6월 진정 사건 인용 비율은 접수된 전체 진정 건수 5171건 가운데 2.5%(130건)에 그쳤다. 반면 각하는 2507건, 기각은 2112건에 달했다. 강정혜 위원(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전원 합의는 이론적으로 그럴듯하지만, 거의 흔치 않은 제도”라며 “다양한 가치관과 배경을 가진 위원들이 모인 인권위에서 사실상 작동하기 어렵고 판단 지연만 야기할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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