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승진 거부한다, 만년과장이 꿈"…요즘 회사에 뜬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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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0도 2030도 ‘보직 기피’ 확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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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대기업 임금단체협상에 ‘승진 거부권’이 다시 등장했다. 시작은 8년 전이었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은 2016년 “대리에서 과장으로 승진하면 조합원 자격이 없어지고 성과연봉제를 적용받는다”며 승진을 거부할 권리를 보장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해 HD현대중공업 노조도 같은 요구를 했다. 그때 무산됐던 승진거부권이 올해 다시 HD현대중공업 노사 협상 테이블에 올라왔다. 사측은 인사권에 대한 과도한 요구라며 난감해 한다. 그런데 8년 사이 분위기가 좀 달라졌다. 여느 직장인 사이에서도 ‘이젠 승진을 거부할 권리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생겼다. 기업 인사담당자도 ‘만년 차장’ ‘만년 부장’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고 한다.
가늘고 길게 회사에 다니고 싶다는 40대 직장인은 “우리 같은 사람을 ‘젖은 낙엽’이라고 부른다. 신발 밑창에 딱 붙어서 승진자를 찾을 때도, 희망퇴직자를 찾을 때도 눈에 띄지 않고 싶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가 4050세대에만 있는 건 아니다. 2030대인 Z세대도 ‘의도적 언보싱(conscious unbossing, 승진 회피 및 지연)’을 한다. 다만 4050세대의 임원 포기 이유와는 좀 차이가 있었다. 임포자·승포자(임원·승진 포기자)의 속마음을 들어봤다.
“임원 안달면 60세까지 월급…승진 준비할 시간에 재테크”
◆가늘고 길게 정년까지=대형 건설사에 다니는 A씨(54)는 ‘부장급 사원’이다. 비슷한 연배의 임원도 많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A씨는 “임원을 안 달면 60세 정년까지 월급이 보장된다”며 “임원이 되면 책임져야 할 게 많아져 부담스럽고, 이 나이에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쓰는 것도 피곤해서 싫다”고 말했다.
요즘 기업에선 ‘만년 차장’ ‘만년 부장’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임원 승진에 실패한 루저라는 건 옛말, 후배가 임원을 달고 상사가 되면 굴욕적으로 여기고 퇴사하는 풍경도 모두 옛날 일이다. 오히려 자기 의지로 임원 되기를 거부하는 임포자, 승진을 포기하는 승포자가 늘고 있다. ‘임원은 임시직원’이라는 말처럼 매년 재계약 여부에 마음을 졸이느니, 낮은 곳에서 정년까지 조용히 다니는 게 낫다는 인식이 퍼진 탓이다.
최근 대기업 임원 연령이 낮아지면서 40대 팀장급이 되면 임원 승진 가능성이 대략 결정된다. 에너지업계 대기업에서 현재 팀장(차장급)을 맡은 B씨(45)는 ‘가늘고 길게’ 직장 생활을 하는 게 꿈이다. 그는 “40대 팀장이면 임원 후보군이 될 수 있는데, 요즘 팀장 중엔 임원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60%, 정년까지 다니고 싶은 사람이 40% 정도”라며 “이제 겨우 초등학생인 애의 대학 진학·취직·결혼까지 생각하면 60세 이후에도 돈을 벌어야 해 최대한 오래 일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임원의 인기가 떨어진 또 하나의 이유로 ‘학습효과’를 꼽는다. 유능한 임원도 실적 악화 영향으로 예상보다 빨리 자리에서 잘리거나, 예전 임원이 누리던 혜택이 대폭 축소되는 것을 보며 ‘나도 임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줄었다는 해석이다. 권상집 한성대 기업경영트랙 교수는 “임원이 되고 나면 ‘아름다운 퇴장’을 하기 어렵다는 걸 보고, 직원의 인식이 달라진 것”이라며 “임원 임기를 최소 3년은 보장해 줘야 소신을 갖고 일할 수 있고, 그런 임원을 바라보는 직원에게 동기부여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만년 과장·차장·부장 증가에…기업, 리더급 인재 확보 비상
◆‘의도적 언보싱’ 왜=기업 인사담당자도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한 10대 그룹 인사담당자는 “4050세대에선 고용 안정성을 위해, 2030세대에선 워라밸을 위해 승진을 기피하는 것 같다”며 “회사 성장이 둔화하다 보니 승진 적체가 심하고 상위 직책으로 올라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그냥 편하게 회사 다니자’고 자포자기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기업이 현재 가장 우려하는 점은 젊은 직원의 보직 기피 현상이다. 국내 한 정보기술(IT) 업체 인사담당자는 “글로벌 기업에서 해외법인 근무 이력은 승진 코스로 꼽히는데, 4050세대는 자녀의 학업·부모 부양 등을 이유로 해외 근무를 거절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며 “2030세대는 자기 계발을 좀 더 자유롭게 하기 위해 직책 팀장 자리를 기피하는 경우가 많다.
잡코리아가 지난해 MZ세대 직장인 1114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4.8%는 “임원 승진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책임져야 하는 위치가 부담스러워서”(43.6%)라는 응답 비율이 가장 높았다. 이어 “임원 승진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아서”(20%), “임원은 워라밸이 불가능할 것 같아서”(13.3%) 등의 순이었다.
해외에서도 Z세대가 중간관리자 역할을 맡기 싫어하는 ‘의도적 언보싱’ 트렌드를 주목한다. 더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채용 컨설팅 기업 로버트 월터스가 최근 영국 Z세대(1997년~2012년 출생) 근로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2%는 중간관리자 역할을 맡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의도적 언보싱은 직장에서 최소한의 노력만 하는 ‘조용한 사직’과도 무관하지 않다.
직무급제 등 임금 체계 개선…‘셀프승진 추천’도 대안 거론
◆고민에 빠진 기업, 대책은=‘임포자’ ‘승포자’가 늘수록 기업의 고민은 깊어진다. 승진 기피 분위기가 퍼지면 조직 전반에 활력이 떨어지고 생산성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한 배터리 기업 인사담당자는 “승진과 보상은 조직의 성장과 지속을 위한 수단”이라며 “한 축이라도 무너지면 조직 관리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승진 기피가 무사안일로 이어져 성과 창출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조직 내 특정 이들에게 일이 몰리고 갈등과 불만이 커지는 점도 부담이다. 한 유통기업 인사담당자는 “일 잘하는 사람에겐 일이 더 몰린다”며 “그런데 성과가 나도 보상이 크지 않으니 일 잘하는 인재가 이탈할 수 있다”고 했다. 전자업계 인사담당자는 “막연히 ‘미래에 대한 투자’가 아니라 책임을 지고 어려운 일을 해내면 보상을 당장 지급해야 한다”며 “책임 있는 일을 잘하는 만큼 확실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꾸준히 상기하면 승진이나 직책 간부에 대한 동기 부여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했다.
어차피 승진자는 소수이므로, 승진 이외의 방식으로 다수의 고참 직원에게 동기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리더십 직위뿐 아니라 전문 분야에서 성과를 인정받는 전문가 경로를 마련해 개인이 성장하고 기여할 커리어 경로와 옵션을 지원해야 한단 얘기다. 삼성전자가 2019년부터 운영 중인 명장 제도가 대표적이다. 기술 전문성과 노하우가 요구되는 분야에서 한 우물만 판 베테랑을 인증, 동기를 부여하는 제도다.
궁극적으로는 전통적 연공서열 중심의 인사 제도에서 벗어나 성과와 기여도 기반으로 보상 수준이 달라지도록 개편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의 조언이다. 일의 중요도나 난이도, 책임 정도에 따라 급여가 달라지는 직무급제가 거론되는 이유다. 엄상민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이 달라져 추가로 얻는 보상이 리스크 대비 매력적이지 않은 게 문제”라며 “승진한 이들, 어려운 일을 하는 이들에게 더 많은 보상이 갈 수 있도록 임금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서 도입한 셀프승진 추천제도도 대안 중 하나다. 연차에 따른 자동 승진이 아니라 승진 시기를 스스로 결정, 계획에 따라 본인을 진급 대상자로 추천한다.
인류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는 ‘기업’입니다. 기업은 시장과 정부의 한계에 도전하고 기술을 혁신하며 인류 역사와 함께 진화해 왔습니다. ‘기업’을 움직이는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 더중플이 더 깊게 캐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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