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트럼프 "너무 나쁜 거래" 칩스법 흔든다…TSMC도 삼성도 초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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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반도체 기업이 숨죽여 트럼프의 입을 본다. 인텔·TSMC·삼성전자 등 미국 내 반도체 제조 기지를 짓는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법(이하 칩스법)을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너무 나쁜 거래”로 규정하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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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미국 미시건에서 유세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로이터=연합뉴스

칩스법 보조금은 미 정부의 실사를 거쳐 지급되는 ‘후불제’다. 지난 봄부터 미국 애리조나 공장 시험 가동을 시작한 TSMC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고, 각각 미국 오리건과 텍사스, 인디애나에 공장을 짓는 인텔과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미칠 영향도 만만찮다.

트럼프 “보조금 No, 관세·법인세로 해결” 

트럼프 후보는 지난 25일 팟캐스트에 출연해 “(미국으로 수입되는 반도체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 그들이 미국에 와서 반도체 공장을 지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십·수백억 달러 보조금을 줄 필요 없이, ‘관세’ 카드를 쓰면 된다는 주장이다. 그는 앞서 26일 미시간 주 유세에서는 “일본·중국·한국과도 경쟁해야 한다”며 미국 내 생산하는 기업의 법인세를 6%포인트(p) 인하한다는 공약을 다시 언급했다.

공화당 부통령 후보인 J.D 밴스 상원의원도 지난 22일 유세에서 “바이든-해리스 정부는 칩스법을 정치화했다”라며 “에너지 비용을 낮춰 기업들이 미국에서 더 많은 칩을 생산하도록 장려하는 게 방법이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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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기자

‘실리콘, 방패 맞나’ 고민하는 대만

대만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지난 6월 트럼프 후보가 “대만이 우리의 칩 사업을 훔쳐갔다”라고 비판하자, 당일 TSMC 주가가 2.37% 하락했다. 이후 궈즈후이 대만 경제부 장관은 “트럼프 후보의 오해”라는 등 여론 진화에 나섰고, 지난 23일 대만 주재 미국 대사 격인 레이몬드 그린 미국재대만협회(AIT) 회장은 일본 NHK와 인터뷰에서 “미국-대만 관계에 대해 초당적 지지가 견고하다”라며 대선 결과에 영향받지 않을 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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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2년 12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건설 중인 애리조나 TSMC 공장을 방문해 웨이저자 TSMC CEO와 마크 리우 당시 TSMC 회장의 안내를 받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러나 여전히 트럼프 후보는 “대만이 우리의 보호를 원하면서도 돈은 안 낸다”, “멍청하게 우리 산업을 대만에 뺏겼다” 등 강성 발언을 지속한 것이다. 궈 장관은 최근 공개 석상마다 “TSMC 애리조나 공장 보조금(66억 달러, 약 9조원)이 취소되는 거냐”는 질문을 받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경제안보 전문가는 중앙일보에 “최근 대만 정부 인사를 만나면 ‘실리콘 방패’ 전략이 맞는지 거꾸로 질문해 온다”라고 말했다. 그간 대만은 전 세계 첨단 반도체 생산을 도맡은 TSMC가 있기에 양안 갈등 속에서 자국의 안보를 지킬 수 있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최근 대만 내에서도 회의론이 나온다는 것. 지난 26일 TSMC 창업자인 장충머우(모리스 창) 박사는 “반도체 자유 무역은 죽었고, TSMC에게 힘든 도전이 다가오고 있다”라고 말했다.

장·단기 셈하는 한국

한국 기업의 셈법도 복잡하다. 삼성전자는 텍사스 테일러 시에 4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해(보조금 64억 달러, 약 9조원) 파운드리와 첨단 패키징 기지를 짓기로 했지만, 첨단공정 고객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고 막대한 투자도 부담돼 속도를 조절하는 중이다. 최근 이재용 회장이 “상황 변화로 다소 힘들어졌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미국 내 첨단 패키징을 강화하려는 SK하이닉스는 보조금 4억 5000만 달러(약 6200억원)를 약속 받았지만, 고대역폭메모리(HBM) 후발주자인 미국 마이크론은 칩스법으로 14배나 많은 보조금(61억 달러, 약 8조4000억원)을 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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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디자이너

게다가 칩스법이 한국의 첨단 반도체 점유율을 낮춘다는 전망도 있다. 지난 5월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와 보스톤컨설팅그룹(BCG)은 10년 후엔 칩스법 덕분에 미국의 첨단 반도체 점유율이 현재 0%에서 28%로 급증하지만, 한국 점유율은 31%에서 9%로 내려간다고 예측했다. 한국 기업들이 당장은 보조금을 기대하지만 장기적 계산이 복잡한 이유다.

인텔, 살려? 말아?

미국의 종합반도체 기업 인텔은 기로에 섰다. 회사는 가장 많은 보조금(85억 달러)을 약속받은 ‘칩스법의 총아’이지만, 아직 입금 소식은 없다. 지난달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인텔이 대선 전에 정부와 보조금 협상을 마무리 지으려 애쓰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사업 부진이 걸림돌이다. 인텔은 파운드리(위탁제조) 사업의 막대한 적자로 지난 8월 1만5000명을 감원하고 대형 투자를 보류한다고 발표했다. 공화당 일부에서는 인텔의 부진을 바이든의 실패로 보고 눈을 부릅뜨고 있어, ‘정부 보조금을 수령한 후 대량 해고하는 기업으로부터 돈을 회수하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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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미국 애리조나 인텔 캠퍼스를 방문해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반도체 고(高) 관세, 미국도 곤란해져”

그러나 트럼프 후보의 말처럼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 대신 관세 카드를 쓰는 건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김형준 차세대 지능형 반도체 사업단장(서울대 명예교수)은 “관세를 높이면 반도체를 구매하는 미국 기업에 원가 상승 요인이 돼, 정치적으로는 몰라도 산업적으로는 미국에 유리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경희권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트럼프 후보의) 지지층을 위한 정치적 발언”이라면서도 “TSMC, SMIC 등 중화권 기업에 더는 첨단 공정을 내주지 않는다는 기조이므로, 한국이 반사 이익을 노려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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