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6·25 전쟁고아 1059명의 아버지 딘 헤스 대령, 백선엽 한미동맹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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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고 딘 헤스(오른쪽) 대령이 제주도 한국보육원을 방문하여 전쟁 고아들을 돌보고 있다. [사진 공군]

“아버지께서 그날 내린 결정은 전혀 어려운 게 아니었어요. 아마 아버지께서 내린 결정 중 가장 쉬운 결정이었을 겁니다.”

제12회 백선엽 한미동맹상 수상자로 선정된 한국전쟁의 영웅이자 ‘전쟁고아의 아버지’ 고(故) 딘 헤스 대령의 장남 로렌스 헤스는 29일(현지시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부친이 6·25전쟁 참화 속에 목숨을 걸고 전쟁고아 1000여 명을 구해 제주로 피난시킨 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로렌스는 “아버지는 아이들을 누구보다 사랑하셨다”며 “전쟁과는 아무 상관 없으면서도 전쟁의 최대 피해자인 아이들을 무사히 구출하고 그들이 꿈을 잃지 않도록 하는 데 전 생애를 바치셨다”고 말했다.

목사 출신 공군 파일럿 딘 헤스 대령은 1951년 1·4 후퇴 직전 전황이 급속도로 악화한 상황에서 서울의 전쟁고아 1059명을 수송기에 태워 제주도로 피신시켜 ‘한국판 쉰들러 리스트’의 주인공이자 ‘전쟁고아의 아버지’로 불렸다. 전쟁 뒤에도 수시로 한국을 찾아 고아들을 돌봤고 20여 년간 전쟁고아 후원금 모금에도 앞장섰다. 로렌스는 “아버지는 한국 아이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의 자유를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잘 알았던 분”이라며 “아버지는 미국과 한국을, 아이들을, 그리고 함께 비행했던 조종사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셨다”고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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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백선엽 한미동맹상 시상식에 참석한 라카메라 한미연합사령관, 헤스 대령의 셋째 아들 로날드 헤스, 첫째 아들 로렌스 헤스, 김용현 국방부장관(왼쪽부터). [사진 국방부]

헤스 대령은 한국전쟁 당시 미 공군 바우트원 부대 지휘관으로 참전해 당시 공군 주력인 F-15 전투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한국군 조종사를 양성하는 등 한국 공군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켜 ‘한국 공군의 대부’라는 칭호를 받았다. 또 1년간 250회 전투 출격으로 전쟁 초기 북한군 격퇴에 크게 기여했다. 1969년 예편한 헤스 대령은 2015년 97세를 일기로 타계했지만, 그가 조종했던 F-51D 무스탕 전투기에 새겨진 ‘신념의 조인’(By Faith I Fly)이라는 글귀는 한국 공군의 군가 가사로 남았다. 2017년 제주항공우주박물관에 그의 기념비가 세워졌고, 한국 공군은 매년 추모식으로 공적을 기린다.

백선엽 한미동맹상 심사위원회는 “상 취지에 가장 적합한 수상자”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앞서 한국 정부도 전쟁고아 후원에 헌신한 공로를 기려 1951년 을지무공훈장, 60년 국민포장, 62년 소파상을 수여했다. 백선엽 한미동맹상은 2013년 한미동맹 60주년을 맞아 동맹의 의미를 조명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제정한 상으로, 중앙일보가 후원한다.

이날 시상식은 워싱턴DC 한 호텔에서 열린 ‘한미동맹의 밤’ 행사 때 함께 진행됐다. 헤스 대령 유족 측에는 메달과 국방부 장관 감사장, 중앙일보사가 지원하는 상금 3만 달러(약 4150만원)를 전달됐다. 로렌스와 헤스 대령의 3남 로날드가 선친 대신 수상했다. 유족은 고인 뜻을 기려 상금 전액을 헤스 대령이 후원했던 제주도의 한 보육원에 기부했다. 로렌스는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그렇게 하기를 원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현 국방장관은 환영사에서 “헤스 대령은  6·25전쟁 때 수많은 공산세력을 때려잡은 전쟁 영웅”이라며 “당신의 헌신 덕분에 살아남은 한 어린이가 당신이 지켜준 자유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이 되어 당신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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