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괴테가 건넨 위로에…은둔 외톨이들, 세상 설 용기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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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받은 유산, 얼마나 찬란하고 넓디넓은지/ 시간이 나의 소유, 나의 경작지는 시간-.’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에 위치한 여백서원(如白書院). 전영애(73) 서울대 독문과 명예교수가 2014년 1월부터 가꿔온 ‘책의 집’이자 인문학 쉼터다. 이곳 산책로를 따라 언덕 위 전망대에 오르면 독일 문호 괴테(1749~1832)의 이 같은 시구(詩句)가 작은 팻말에 적혀 방문객을 맞는다. 독일 바이마르 괴테학회장이 시간에 쫓기며 사는 한국 젊은이들을 위해 골라준 문장이다.
지난 23일 백발의 전 교수가 ‘괴테의 글과 인생’에 대해 얘기하는 동안, 함께 한 청년들이 귀를 쫑긋 기울였다. 이들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청년 인문공감 ‘문화 자유 교실’(11박12일) 참석자들. 특색이라면 은둔·고립 청년 지원기관의 추천으로 참가했다는 점이다. 총 15명이 여주 숙소에서 숙식하면서 미술·음악·영화·유적지 체험을 통해 그간 웅크렸던 마음을 펴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에 쭈뼛쭈뼛 했던 이들은 프로그램 막바지에 이른 이날은 짝을 지어 담소를 나누며 여백서원과 그 일대에 조성 중인 ‘괴테 마을’을 둘러봤다. 특히 서원의 본관인 전통 한옥 ‘여백재’에 들어서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구석구석 서가를 채운 수천 권의 장서와 넓은 창을 통해 보이는 자연 풍경에 마음을 뺏긴 듯했다.
“여백은 같을 여(如)에 흰 백(白)을 써서 ‘흰 빛과 같은’ 이란 뜻입니다. 맑은 사람만 온다고도 할 수 있고, 오면 맑아진다고도 할 수 있죠. 아무래도 두 번째 뜻이 더 좋죠?(웃음)” 전 교수의 말에 참가자들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이어서 전 교수는 여백서원을 짓기까지 힘들었던 시간들, 호가 ‘여백’이었던 부친이 남겨주신 문집과 정신, 배움은 짧았어도 평생 글과 책을 소중하게 대한 모친의 기억을 들려줬다. 마지막으로 그가 전력을 다해 연구한 괴테의 삶과 문학세계를 설명하면서 “그의 키워드는 한마디로 ‘극복’이었다. 어려움이 있어도 짓눌리지 않고 끝끝내 날아올랐다”고 했다.
한 20대 여성 참가자는 “지난해 대학을 자퇴하고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는데, 캠프 참가한다고 하니 부모님이 정말 좋아하셨다. 또래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 보냈고 카톡 주고받으며 앞으로도 연락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강연 후 ‘10년 뒤 나에게 쓰는 편지’를 쓰면서 캠프 경험을 정리했다. 한 참가자는 “우울증 환자를 위한 책을 내고 싶다”는 소망과 함께 이렇게 썼다. “나도 다른 사람들을 살리고자 했던 어떤 누군가의 노력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던 만큼, 누군가를 위해 내 삶의 일부를 기꺼이 쏟아 붓고 싶다.”
한국 사회에선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사회관계가 단절된 20·30대 청년들이 급격히 늘었다. 2022년 조사 결과 고립·은둔 위기 청년 규모가 최대 54만 명에 달할 수도 있다는 추정(한국보건사회연구원)도 나왔다.
이날 현장을 함께 한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은 “급변하는 세상에 소외감을 느끼고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 청년들이 많다. 이들이 문화예술 체험을 통해 관계 맺기를 할 수 있게 이런 프로그램을 계속 지원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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