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렌터카 가해자 신원 놓고…경찰 "신속 수사" vs 업체 "영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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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터카를 이용한 범죄를 수사하는 경찰과 렌터카 업체가 개인정보 제공을 두고 갈등하고 있다.
지난 9월 경기도 광명시에서 A업체 렌터카 이용자가 주차돼 있는 차량을 치고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고 접수를 받은 경찰은 사건 당시 CCTV를 추적한 끝에 가해 차량을 특정했으나 가해차량이 렌터카인 탓에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었다. 경찰은 A업체 측에 렌터카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물었으나 업체 측은 영장을 요구했고, 영장을 받아오기까지 2주가 지난 뒤에야 이용자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장 경찰들은 공문으로 하면 하루, 이틀이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데 영장 발부를 거치면 가해자 특정에만 보름 이상이 걸린다"며 “사건 처리 속도가 느려지는 건 물론이고 음주 여부 확인과 가해자 신병 확보도 힘들어진다. 사고 현장에 렌터카를 두고 도망가는 황당한 사건에서도 끝까지 영장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한국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에 따르면 렌터카가 가해차량인 교통사고는 전국기준 2015년 6233건에서 2021년 1만228건으로 늘었다가 2022년 9779건, 2023년 9496건으로 소폭 감소했다. 본인 명의 차량이 아니라는 점에서 렌터카를 이용한 범죄도 꾸준히 발생하는 상황이다.
지난 2020년에는 부모님 명의로 렌터카를 빌린 10대들이 오토바이 운전자를 치어 숨지게 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불법 주·정차 과태료를 가장 많이 부과받은 곳도 렌터카 업체였다. 한 업체는 3만5639건 적발돼 과태료만 11억 7900만원이 부과됐으나 1억 5800만원을 미납했다.
렌터카 업체들은 개인정보 제공이 자칫하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렌터카 업체 관계자는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이용자 개인 정보는 반드시 영장이 있어야만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PM 업체 역시 “경찰이라고 해도 영장이 없으면 이용자 아이디 외에 어떤 개인정보도 알려줄 수 없다”고 답했다. 쏘카 측은 “회원이 운행 중 발생한 사고로 의심되어 조사가 필요한 경우 쏘카가 직접 회원에 연락을 취해 중개한다”며 “고객과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나 경찰에서 가입자 정보가 꼭 필요한 경우 통신이용자정보제공요청서를 경찰로부터 제공받아 이름과 연락처를 제공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름과 전화번호 외에 GPS 정보나 결제내역, 이용내역 등 자세한 정보는 영장을 통해서만 제공된다. 쏘카 측은 “자살이나 살인, 납치, 마약 운반 등 긴급한 범죄와 연관되는 경우엔 영장 없이도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며 “개인정보보호법에 위반되지 않는 선에서 경찰 수사에 최대한 협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과거 범죄 피의자가 개인정보를 수사기관에게 넘겨준 렌터카 업체 측을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분쟁조정 신청을 한 적이 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사례집에 따르면 렌터카 사업자가 뒷좌석에서 마약용 주사기를 발견해 신고하면서 인적 사항이 담긴 차량 임대차 계약서를 제공해 경찰이 신청인이 투숙한 숙박업소를 수색해 필로폰과 주사기를 발견하고 마약 소지 혐의로 긴급체포한 사건이었다. 이에 신청인은 렌터카 업체가 개인정보를 동의 없이 경찰에 제공했다며 분쟁조정을 신청했으나 개인정보분쟁조정위원회는 “마약관련 범죄는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크고, 긴급체포가 가능한 중대범죄에 해당하며 개인의 이익보다 공익이 우선시 되는 만큼 렌터카 업체의 행위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수사 협조를 위한 렌터카 업체의 개인정보 제공 문제는 과거에도 불거진 적이 있다. 2021년 온라인상에서 알게된 초등학생을 충남에서 수도권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성폭행한 성인 남성 C씨는 당시 렌터카 쏘카를 이용했다. 경찰은 쏘카 측에 C씨의 정보 제공을 요청했으나 업체 측은 개인정보보호법을 근거로 거부했고, 이후 범죄 피해를 키웠단 비난이 일었다. 이후 2023년 9월 개인정보보호법이 개정되면서 “긴급구조 등 국민 급박한 생명, 신체, 재산 이익 보호 위해 필요할 때 우선 조치해야 한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그러나 ‘급박한’ 상황이 언제인지, 또 ‘우선 조치’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두고는 의견이 갈리는 상황이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소속 김진욱 변호사는 “실제로 개인정보보호위원회로 렌터카 업체의 자문 요청이 자주 들어온다”며 “현행법상 영장 없는 개인정보 제공에 대한 책임은 사업자가 져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보 제공과 관련한 사회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법무법인 정향 이승우 변호사는 “영장주의 원칙이 중요한 만큼 개인정보 제공이 늦어지는 것에 대한 불편은 감수해야 하는 게 맞다”면서도 “영세한 렌터카 업체가 자체적으로 사안의 ‘긴급’ 기준을 정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는 만큼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한 때다. 렌터카 이용자들에게 사전에 범죄 연루 의혹이 있을 때는 수사기관에 개인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동의서를 별도로 받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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