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단독] "트럼프 재집권 땐, 한·미 FTA 재개정 피할 수 없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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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한·미 FTA 개정협상, 전 美수석대표 비먼
“트럼프 2기 정부가 들어서면 관세장벽 등 보호무역 조치가 1기 때보다 훨씬 강력해지고 위협적으로 진화할 것입니다. 한국도 물리적 여파를 피할 수 없습니다.”
마이클 비먼 전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보는 30일(현지시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전면적 관세 부과 위협은 매우 심각하고 진지한 얘기”라며 이같이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관세를 무역적자 해소, 해외 기업의 미국 내 공장 유치, 방위비 인상 압박 등에 사용하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해 세계 각국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어서 주목되는 발언이다.
비먼 전 대표보는 “과거 트럼프 정부에서는 특정 가드레일(보호 장치)을 두어 극단적인 정책 아이디어를 제한했다”며 “그러나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1기 행정부에서 시행한 보호무역 기조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되 강도는 더 세고 공격적인 플레이북(전술)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트럼프 1기에서 무역통상 정책의 브레이크 역할을 했던 제약들을 없애 제동 없는 질주를 할 거란 의미다.
“트럼프, USMCA 재협상 공언도 지킬 것”
특히 트럼프 행정부 때인 2017~2018년 한미 FTA 개정 협상에서 미국 측 수석대표를 맡았던 비먼 전 대표보는 “트럼프가 집권 당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대신해 만든 미국ㆍ멕시코ㆍ캐나다무역협정(USMCA)의 재협상을 최근 공언하고 있는데 분명히 약속을 지킬 것”이라며 “전세가 급변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안 걸린다. 한국도 FTA 재개정 등 비슷한 힘의 역학관계를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경합주 판세에서 유리한 흐름인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백악관에 재입성하면 한미 FTA 재개정을 밀어부칠 거란 국내 일각의 우려가 현실화할 공산이 크다는 뜻이다.
비먼 전 대표보는 화상으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한미 FTA 개정 협상 과정에서 협상이 파기 직전까지 가는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이 3번 정도 있었다”고 떠올렸다. 그는 “2018년 2월 인내심이 바닥난 트럼프가 ‘3월 중순까지 합의냐, 파기냐 둘 중 선택하라’고 압박해 왔다”며 “시간이 촉박한 라이트하이저 전 대표가 협상을 서둘러 3월 27일 공식 합의에 도달했다. 하지만 ‘트럼프 타임’에 쫓긴 나머지 미국의 대(對)한국 무역적자 개선에 가장 효과적일 수 있는 한국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 억제 수단 확보는 놓치고 말았다”고 했다. 트럼프의 드라이브로 강하게 밀어붙인 FTA 개정 과정에서 미국의 우선순위 중 몇 가지가 빠졌다는 얘기다.
“2017년 김현종의 서울 귀환은 깜짝선물”
비먼 전 대표보는 최근 펴낸 책 『워킹 아웃(Walking Out)』에서 한미 FTA 개정 협상 과정의 뒷얘기를 공개했다. 비먼 전 대표보는 책에서 트럼프 정부가 2017년 7월 한미 FTA 개정 협상을 공식 요구하자 문재인 정부가 협상 책임자로 김현종 세계무역기구(WTO) 상소기구 위원을 불러내 8월 통상교섭본부장에 임명한 일을 거론하며 “김 전 본부장의 서울 귀환은 당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에게 깜짝 선물이었다”고 했다.
WTO 상소기구가 당시 미국에 비우호적 결정을 잇따라 내리자 라이트하이저 전 대표는 상소기구 위원 7명에 공석이 생길 때 후임자 승인을 거부함으로써 상소기구를 점점 무력화한다는 전략을 짜고 있었는데 김 전 본부장의 갑작스런 사직으로 일이 손쉽게 됐다는 얘기였다.
- 『워킹 아웃』의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가.
- “미국은 관세 전쟁에서부터 무역협정 파기에 이르기까지 자유롭고 규칙에 기반한 무역 정책에서 벗어나 근본적으로 새로운 길을 가고 있다. 나는 기본적으로 국내 정치의 양극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미 정치 양극화로 무역정책 급변화”
- 극심하게 분열된 미국 정치가 무역정책의 급격한 전환을 불렀다는 것인가.
- “그렇다. 약 10년 전부터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무역 측면에서 첫 번째 희생자는 트럼프 정부 때 이뤄진 ‘TPP(다자 간 무역협정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탈퇴’였다. 그 이후 계속되는 극적인 변화의 신호였다.”
- 책에서는 트럼프가 한미 FTA를 파기하려 했는데 파기 서한을 백악관의 대통령 책상에서 누군가 슬쩍 빼돌려 위기를 모면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 “언론인 밥 우드워드의 저서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를 보면 당시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이 트럼프가 FTA 파기 서한에 사인할까봐 책상에서 몰래 치웠다는 내용이 나온다. 확인은 어렵지만 당시 파기 초안을 담은 진짜 서한이 있었다.”
- 한미 FTA에 부정적 입장을 가진 피터 나바로 전 백악관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이 개정 협상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 “트럼프는 정부 출범 초인 2017년 4월 한국을 포함한 교역국과 맺은 무역 협정을 전면 재검토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는데, 이 행정명령의 초안을 피터 나바로가 작성한 것으로 안다. 이 초안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당시 (한미 FTA 개정) 협상을 진두지휘해야 하는 나로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에 대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무역협정 재협상’ 행정명령 초안 있었다”
‘트럼프의 경제 책사’로 알려진 나바로 전 위원장은 강경파 보호무역주의자다. 트럼프 1기 초 한국 등 14개 교역국과의 무역협정 재협상 시 구체적 목표를 담은 당시 행정명령 초안은 나바로 전 위원장 작품으로 전해졌는데, 비먼 전 대표보 저서 『워킹 아웃』에는 초안의 구체적 내용이 실렸다.
『워킹 아웃』에 따르면, 당시 무역협정 재협상 시 최우선적으로 포함돼야 할 핵심 목표로 ▶강제 가능한 통화 의무 ▶무관세 적용 자동차 및 기타 공산품에 대한 제품 내용 규정 신설 ▶비관세 장벽 제거를 위한 더 많은 규칙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SDS) 종료 ▶정부 조달 이행 등 5가지 원칙이 제시됐다. 전체적으로 관세 장벽을 신설하거나 강화하는 내용이다. 비먼 전 대표보는 인터뷰에서 “트럼프 정부 출범 초 한국과의 FTA 재협상을 우선적인 목표에 포함시키려는 매우 분명한 시도가 있었다”고 말했다.
- 트럼프 재집권 시 통상 압력이 커질 듯한데.
- “그가 여러 번 공언한 전면적인 관세 부과 위협에 전 세계적 우려가 크다. 하지만 트럼프의 사람들이 일관되게 밀고 있는 정책 방향이다. 트럼프 1기 정부의 우선순위에 다소간의 변화가 있겠지만 나아가는 방향 자체는 같을 것이며 무역정책의 강도는 훨씬 강력해지고 더욱 공격적으로 진화한 형태가 될 것이다.”
- 트럼프 때 개정된 한미 FTA는 재개정 가능성이 높은가.
- “트럼프는 재임 당시 나프타를 대체하는 USMCA를 만들 것을 무역협정 재협상의 모범 사례로 자랑했다. 하지만 일부 노조가 USMCA 약속 불이행을 주장하며 개정을 요구하자 트럼프는 최근 선거 유세에서 USMCA 재협상을 강하게 약속하고 있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 때 TPP 폐기와 나프타 탈퇴를 공언했는데 약속대로 했다. USMCA 재협상 약속도 분명히 지킬 것이다. 한국도 비슷한 힘의 역학관계를 피할 수 없다.”
- 한국에 건네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 “미국은 중국산 제품이 다른 나라를 통해 우회적으로 미국에 들어오는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이 이 문제의 심각성에 동의하고 그 우회 경로가 되지 않도록 잘 관리한다면 미국의 차기 행정부와 더 나은 위치에서 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이클 비먼
2017년 1월부터 2023년 1월까지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서 일본ㆍ한국ㆍAPEC 담당 부대표를 지내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미일 무역협정 재협상을 주도했다. 1991년 존스홉킨스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 학위를, 1998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1998년부터 2004년까지 미국 상무부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스탠퍼드대 월터 쇼렌스틴 아시아태평양연구소(APARC) 방문학자로 있으면서 미국과 아시아 간 경제안보 등 무역정책을 연구하고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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