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실손 있죠?" 이때부터 병원은 도수치료·영양주사 마구 권했다 [의료 망치는 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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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급여 공화국 해부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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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손보험 가입 여부를 확인한 뒤 비급여 진료를 하는 건 일상이 됐다. [일러스트=김지윤]

조모(59)씨는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정형외과의원에서 예정에 없던 어깨 도수치료를 받았다. 이 의원은 아내가 어깨 치료를 받던 곳이다. 병원 측이 "(김씨 명의인) 실손보험을 적용해 줄 테니 남편(조씨)을 데리고 오라고 권유했다. 보험 명의도용은 불법인데도 병원이 비용 할인을 미끼로 환자를 유치한 것이다. 조씨는 "의원에 가보니 다른 환자에게도 의사가 '실손 있냐'고 묻고 비급여 진료를 적극 유도하더라.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의료비의 일정액을 보상하는 실손보험은 '제 2의 국민건강보험'이라고 불릴 정도다.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실손 가입자(단체·공제보험 제외)는 2006년 약 1300만명(추정)에서 지난해 3600만명으로 늘었다. 보험사가 지급한 실손 보험금은 2017년 7조3000억원에서 지난해 14조1000억원으로 늘었다. 8조원(56.9%)은 순수 비급여 진료비, 6조1000억원은 법정 본인부담금이다.

실손보험은 의료기관의 '비급여 영업'과 일부 가입자의 도덕적 해이를 야기한다. 의료기관은 손쉽게 매출을 올리려 비급여를 환자에게 권유하고, 환자는 부담이 크지 않으니 꼭 필요하지 않은 진료를 받는다. "실비(실손) 가입하셨냐"는 의사의 질문은 일상이 됐다. 서남규 국민건강보험공단 비급여관리실장은 "비급여 진료비 증가분의 약 56%가 실손보험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비급여 진료 때 진찰료나 검사료 등 건보 진료를 함께 하기 때문에 비급여 진료 증가는 건보 재정에도 부담을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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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영 디자이너

40대 남성 A씨는 지난해 8개 병·의원을 돌면서 342번의 체외충격파·도수치료 등을 받았다. 그리고 보험사에 8500만원 넘는 실손 보험금을 청구했다. 대학생 이모(26)씨는 '실손 쇼핑'에 익숙하다. 아프지 않아도 조금만 피곤하면 영양 수액 주사 맞으러 학교 근처 의원에 간다. 도수치료도 종종 받는다. 그리고는 실손 보험금 청구에 나선다. 그는 "진료 기록이 없으면 실손 보험금을 못 받으니 건보 진료도 꼬박꼬박 받고, 서류도 칼같이 챙긴다. 내가 가입한 상품을 이용하는 건데 뭐가 잘못이냐"고 말한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의료 과소비→의료비 증가→보험료 인상·건보 재정 악화'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삼성화재·DB손해보험·현대해상·KB손해보험이 올 1~8월 지급한 실손 보험금은 5조482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5% 늘었다. 법정 본인부담금(11.7%)보다 비급여(13%) 증가 폭이 크다. 특히 대형병원은 법정 본인부담금 4% 줄었지만, 비급여 진료비 지급분은 3% 늘었다. 도수치료 등 비급여 물리치료만 따지면 올 1~6월 실손 보험금은 1조142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2% 늘었다(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실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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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영 디자이너

의료기관들은 실손보험을 활용해 새로운 비급여 유행을 만들어 낸다. 2022년 대법원이 백내장 다초점렌즈 삽입술을 '입원 인정 불가'로 판결하자 실손 지출이 크게 줄었다. 대신 지난해 비급여 주사제가 1위로 올라섰다. 아동 발달 지연은 꾸준히 유행을 타고 있다. 성형외과·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우후죽순으로 '아동 발달 클리닉'을 세우고, 언어 치료 명목으로 비급여 진료비 20여만원을 받는 식이다.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에 따르면 발달 지연 관련 실손 보험금 지급액은 2018년 189억원에서 지난해 1708억원으로 급증했다.

이처럼 비급여와 밀착한 실손보험은 외국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일본 보험사는 민간 의료보험으로 환자에게 필요한 1~2인실 입원비, 암 치료비 등을 보장해주는 정도다. 일본 고베의 미용성형외과 개원의인 스기모토 이사오(59)는 "환자가 민간 보험에 가입했다면서 추가 진료를 요구하거나 의사가 같은 이유로 다른 진료를 권유하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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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디자이너

실손은 같은 민영보험인 자동차보험보다 너무 허술하다. 자동차보험은 물리·운동 치료 등의 이학요법료 행위를 먼저 하고, 호전되지 않으면 도수치료를 하게 돼 있다. 실손은 이런 기준이 없다. 실손보험의 도수치료 비용은 평균 10만7000원으로 자동차보험·산재보험(3만6080원)의 세배에 달한다. 자동차보험 수가는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국토교통부 소관 진료수가분쟁심의회가 챙긴다. 진료비 심사는 전문기관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대행한다. 실손보험은 이런 게 없다. 보험사들이 심사할 능력이 없다. 손보사가 판매한 1세대 상품은 입원 시 본인부담금이 0원이다.

요즘은 도수치료+미용, 도수+체외충격파 패키지 상품까지 나온다. 미용을 해 놓고 도수치료로 둔갑시켜 보험 청구한 경우도 있다.

실손보험의 문제점은 10여년 전부터 제기돼 왔다. 하지만 건보를 담당하는 보건복지부, 실손의 금융위원회가 티격태격 하면서 책임을 떠넘긴다. 복지부 관계자는 "실손보험에 아무 통제 장치가 없으니 비급여 관리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30일 기자간담회에서 "실손보험에 대한 의미 있는 개혁이 이뤄지려면 비급여 관리가 강화돼야 하는데, 복지부와 협의해 실손 제도 개선안이 마련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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