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가속페달 꽉 밟자 브레이크 '끽'…고령운전자 맞춤 기술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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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잘 기억하셔야 돼요. ‘민수는 자전거를 타고 공원에 가서 11시부터 야구를 했다’를 따라 해보세요.”
“잘 들리긴 하는데, 무슨 의미인지 잘 못 알아들었어요.”
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부운전면허시험장 고령자교통안전교육장, 마포구보건소 인지능력진단검사(치매검사) 담당자의 질문에 80대 A씨의 곤란함이 묻어났다. A씨는 운전면허 갱신을 위해 시험장을 찾았다. 만 65세가 넘으면 운전면허 갱신 시 인지·지각검사 교육을 이수해야 하고, 만 75세가 넘으면 인지능력진단검사(치매검사)도 통과해야 한다.
이날 오전 어르신 29명이 교육장을 가득 메웠다. 1988년 운전을 시작했다는 이경선(75·여)씨는 “밤에 운전이 어렵고 감각이 떨어진 걸 느낀다”라며 “자녀들이 ‘운전을 하지 말라’고 말려서, 갖고 있던 차는 조카에게 줬지만 운전면허증까지 없어지면 서운해서 갱신하러 왔다”고 말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5년(2019~2023년)간 65세 이상 운전면허 소지자는 연평균 35만2565명씩 증가했다〈그래픽 참조〉. 면허를 연장하려는 고령운전자 수도 증가세다. 2019년 8.8% 수준이던 면허 연장률은 지난해 10%로 나타났다. 한국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면허 적성검사·갱신 대상자 474만7642명 중 47만6443명이 면허를 연장했다.
‘운전 부적절’ 진단에도, 면허연장 못 막아
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인지·지각검사를 받은 65세 이상 운전자는 8만2529명. 그중 운전능력 자가진단 결과 ‘자가운전 부적절’에 해당하는 4~5등급은 38%(3만1432명)에 달했다. 10명 중 4명꼴로 운전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의미다. 다만 이 자가진단 결과는 면허 연장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 최하등급이라도 면허를 유지할 수 있다. “운전을 자제하라”며 권고만 할 뿐이다.
고령운전자들도 한계를 느끼지만,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운전대를 잡게 된다고 말한다. 경기·강원의 전통시장을 오가며 노점 트럭을 운행하는 70세 B씨는 “운전을 못 하게 되면 먹고살 길이 막막하다”고 말했다. 노인빈곤율(경제협력개발기구 기준 40.4%)이 높은한국 특성상 생계 목적으로 차량 운전을 계속하는 노인들이 적지 않다.
사고위험 땐 AI가 車제어…페달 오조작 땐 스톱
완성차업계는 고령운전자 교통사고 방지를 위한 첨단 기술 적용을 확대하고 있다. 현대차는 최근 출시한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캐스퍼 일렉트릭’에 페달 오조작 안전보조(PMSA) 기능을 처음 탑재했다. PMSA는 차량 앞뒤 1m 이내에 장애물이 있는데도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빠르고 깊게’ 밟을 경우 오조작으로 보고 구동력·제동력을 제어해 충돌을 막는 기능이다.
PMSA는 앞뒤에 장애물이 있는 상태에서 정차 혹은 정차 후 출발하는 저속 주행 상태에서 가속 페달을 0.25초 이내에 100% 밟는 경우에만 작동한다. 운전자 조작 미숙으로 브레이크와 엑셀러레이터를 혼동해서 일어나는 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고령 인구가 많은 일본에선 관련 기술 개발이 더 활발하다. 일본 토요타는 통신사 NTT와 손잡고 주행중 데이터를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사고 위험을 예측하고, 차량을 자동 제어하는 시스템 개발에 나섰다. 내년부터 약 5000억엔(약 4조 5100억원)을 투자해 2028년 상용화할 계획이다. 혼다는 운전자의 시선을 카메라로 감지해 운전자의 판단과 일치하지 않을 경우에 운전자에게 경고하는 AI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자율주행기술로 해법을 찾으려는 시도도 있다. 일본 닛산·미쓰비시상사는 합작회사(JV)를 세워 무인 택시 운영 등에서 협력을 모색 중이다. 4일 요미우리신문은 두 회사가 내년 3월까지 JV를 세우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닛산은 자율주행 차량을, 미쓰비시상사는 AI를 활용한 최적 경로 시스템을 각각 개발 중이다.
‘자동제동’ 장착 시 고령자 사고 줄어들어
삼성화재에 따르면 지난해 비상자동제동장치(AEBS) 창작 차량(특약 가입 차량)의 추돌 사고 감소율은 평균 16.3%인데, 65세 이상 운전자의 감소율은 22%로 평균보다 높았다. 첨단 운전 보조장치가 고령 운전자의 사고를 줄일 수 있다는 의미다.
일본은 차량 안전장치 추가 부착을 위한 애프터마켓(차량 구매 후 부품을 교체하거나, 장비를 업그레이드)도 활성화돼 있다.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는 2022년 일본의 애프터마켓 시장 규모가 20조800억엔(약 181조2100억원)에 달한다고 집계했다.
전문가들은 ‘굳이 운전할 필요가 없다’는 공감대가 생길 정도로 고령자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경남 하동군은 지난달 14일 읍내 6.7㎞ 구간을 순환하는 ‘농촌형 자율주행 버스’를 도입했는데 이런 첨단 기술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한국보다 고령화 속도가 빨랐던 일본이 차량 안전 첨단장치 효과를 톡톡히 봤다. 페달 오조작 방지장치를 장착도록 한 뒤, 일본의 고령운전자 사고가 절반까지 줄었다”며 “고령운전자의 노후 차량에는 일본처럼 첨단 안전장치 장착시 보조금을 부여하고 애프터마켓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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