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비급여 진료? 할수록 의사 귀찮아져" '고액 비급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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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급여 공화국 해부 〈하〉
'의사는 의학적으로 필요한 의료 서비스에 대해서만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 의료적 필요를 넘어선 서비스는 환자 요청에 따라 제공된 경우에만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
독일 의사들이 비급여 외래진료에 대한 가격을 책정할 때 반드시 따라야 하는 수가규칙 제1조는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GOÄ(Gebührenordnung für Ärzte, 의사 진료비 규정)'라 불리는 이 수가규칙은 독일 연방의사협회가 자체적으로 마련한 수가표를 기반으로 1965년 공식 도입됐다. 첫 번째 규칙에서부터 '의료적 필요'에 따른 진료를 강조하는 만큼, 세부 규칙들에서도 진료의 난이도 등 객관적 근거에 따라 책정할 수 있는 가격이 세세히 제시돼있다.
지난달 3일, 독일의 옛 수도 본. 이곳에서 13년째 정형외과 의원을 운영 중인 재독 한인의사 문병진씨는 "독일에서는 비급여 진료 가격이 매우 엄격하게 관리된다"며 "의사 입장에는 귀찮을 정도로 가격이 제한되지만, 환자에게 비급여 진료를 더 신중히 제공하게 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비급여 진료의 가격·빈도 등에 대한 관리가 전무한 한국과 달리, 독일은 수가규칙을 통해 의사가 비급여 진료 비용을 마음대로 책정하거나 과도하게 많이 하지 않도록 통제하고 있는 셈이다.
국민 90%가 공적 건강보험에 가입돼있는 독일은 공보험이 보전하지 않는 의료행위, 즉 우리나라의 비급여와 유사한 개념을 'IGeL(Individuelle Gesundheitsleistungen)'이라 통칭한다. 의사들은 환자와 자율적인 계약을 거쳐 IGeL을 제공할 수 있지만, 진료비는 GOÄ에 근거해 청구해야 한다. GOÄ에서 정한 기준값에 진료의 난이도, 소모시간 등에 따라 가중치(통상 1~2.3배, 최대 7배)를 적용할 수 있는데, 2.3배 이상을 부여하면 진료 이후 보험회사에 가격 책정 사유를 서면으로 제출해야 한다. 환자에게는 진료 전 해당 의료행위의 효과 및 부작용, 가격에 대해 의사가 직접 설명한 뒤 계약서에 서명을 받아야 한다. 문씨는 "2.3배까지 책정하는 일은 꽤 흔하지만, 그 이상을 부여하면 보험회사에 이유를 설명해야 해 업무가 늘어난다"며 "5.5배 이상을 책정하면 보험사에서 문제를 삼으며 비용 지급을 거절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비급여 공급 측면을 제한하는 한편, 환자들 스스로 비급여 의료 이용에 신중하도록 유도해 수요를 적절히 관리하는 사회 분위기도 형성돼있다. 공보험 급여 보장범위를 결정하는 연방보건부 산하 연방공동위원회(G-BA)의 앤 마리니 대변인은 "독일에서도 개인 병원에 가면 접수창구에서부터 IGeL(비급여)을 권유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그렇다고 해서 의사와 환자들 사이의 사적 계약에 따른 IGeL을 법으로 금지할 순 없다"며 "대신 환자들이 '이 치료가 정말 내게 필요한 건지' '이 의사가 (비급여를) 팔아먹으려는 장사꾼은 아닌지' 등을 숙고하고, 정확하게 인식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자들의 객관적 판단을 돕는 ‘IGeL 모니터’라는 비급여 평가 서비스도 2012년부터 운영되고 있다. IGeL 모니터는 이용 빈도가 높은 주요 비급여 항목에 대해 전문가들이 의학적 효과성, 부작용 등을 평가해 5가지 척도(긍정ㆍ긍적 경향ㆍ불분명ㆍ부정 경향ㆍ부정)로 등급을 매겨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가령 '암 조기 발견을 위한 난소 초음파 검사'에 대해 IGeL 모니터는 '부정' 등급을 매기고 '정확도 낮음' '위양성(가짜 양성) 소견 많음' 등의 평가 근거를 제시하는 식이다. 현재 평가가 이뤄진 55개 항목 중 '긍정' 등급을 받은 항목은 하나도 없을 정도로 평가가 엄격하게 이뤄진다. IGeL 모니터를 운영하는 연방의료자문서비스의 리나 치트카 박사는 "'긍정' 등급을 받을 만큼 유익한 의료행위라면 공적 건강보험 보장 항목에 포함되기 때문에 IGeL로 남아있는 항목 중에는 긍정 평가가 적을 수밖에 없다"며 "주로 5년 단위로 재평가가 이뤄지는데, IGeL이었다가 공보험 보장 항목으로 올라간 항목은 2건 있다"고 설명했다.
IGeL 모니터는 환자들을 위한 정보 제공 창구인 만큼, 어려운 의학 정보를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전달하는 것에도 힘쓰고 있다. 치트카 박사는 "병원에서 (비급여) 진료를 받은 뒤 과연 꼭 필요한 치료였는지, 비용이 적절했는지 뒤늦게 당황하는 환자가 적지 않다"며 "건강보험 가입자들의 현명한 결정을 돕기 위해 의학 정보를 환자 중심적으로 알리고, 접근성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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