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아이랑GO] 우리나라 최초의 만화는 뭘까? 한국 만화 흐름 한자리서 본다
-
1회 연결
본문
아이가 “심심해~”를 외치며 꽁무니를 따라다닌다고요? 일기쓰기 숙제하는데 ‘마트에 다녀왔다’만 쓴다고요? 무한고민하는 대한민국 부모님들을 위해 ‘소년중앙’이 준비했습니다. 이번 주말 아이랑 뭘 할까, 고민은 ‘아이랑GO’에 맡겨주세요. 이번에는 한국 만화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을 준비했습니다.
한국만화박물관에 가다
요즘 아이들은 만화 하면 흔히 포털사이트에서 연재되는 웹툰을 떠올리지만, 부모님은 잡지·신문 등에 연재되거나 단행본으로 출간된 지면 만화를 떠올릴 수도 있다. 그만큼 만화의 정의와 발전상은 시대의 흐름과 그 궤를 같이한다. 소중 학생기자단이 우리나라 만화의 역사와 발전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경기도 부천시에 있는 한국만화박물관에 갔다. 2001년 개관한 한국만화박물관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국 만화와 관련된 자료들을 꾸준히 수집 및 보관해 온 만화 전문 박물관이다. 3층 한국만화 역사 전시관과 4층 만화 체험 전시관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만화부터 2000년대 웹툰까지 한국 만화의 변천 과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1900년대 초중반: 신문과 함께 시작된 근대 만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만화는 1909년 6월 2일 신문 ‘대한민보’ 창간호에 실린 이도영 화가의 1컷 시사만화 ‘삽화’다. 연미복을 입은 신사의 그림과 대한민보라는 단어를 4행시로 풀어낸 글을 통해 대한민보가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밝혔다. 즉, 우리나라 근대만화는 신문이라는 종이매체와 함께 시작돼 사회를 날카롭게 풍자하는 만화가 발전했다. 1910년 8월 29일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이 국권을 상실한 경술국치 이후 세태를 날카롭게 풍자하는 만화 제작도 제동이 걸렸다. 일제가 조선을 통치하기 위해 설치한 조선총독부는 1910년대 무단통치 기간에 민족 신문을 모두 없앴기 때문이다.
하지만 1919년 3·1운동 후 조선총독부는 세계 여론을 의식하고 한민족의 저항을 무마하기 위해 문화정치를 표방하면서 1920년대부터 신문·잡지 발행을 제한적으로 허가했고, 이를 통해 당시 사회상을 비평하는 만문만화가 신문에 연재됐다. 검열이 철저하던 시대이니만큼 일제에 직접적인 비판을 할 수는 없었지만, 당시 시대상이 담겼다. 1928년 한 신문에 실린 만문만화 '모던 걸의 장신 운동'은 전차 안에서 황금 시계와 보석 반지를 자랑하기 위해 서서 손잡이를 잡고 있는 모던 걸의 허영심을 풍자했다. 하지만 조선총독부는 중일전쟁(1937) 개전 이후 한국인의 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황국신민화정책을 펼쳤고, 그 결과 한글신문·잡지 등이 줄줄이 폐간됐다. 이에 따라 한글신문·잡지에서 연재되던 각종 만화도 자취를 감추게 된다.
1945~1959: 광복과 한국전쟁이 만화에 미친 영향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패망하고, 조선이 광복을 맞이하면서 드디어 한국어로 신문·잡지를 자유롭게 발행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표현의 자유를 되찾은 만화가들은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다. 1946년에는 일제에 대한 우리 민족의 저항정신이 담긴 이야기인 『토끼와 원숭이』가 조선아동문화협회에서 발행됐다. 『토끼와 원숭이』는 국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만화 단행본이기도 하다.
한창 성장하던 한국 만화는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다시 한번 위기를 맞는다. 북한군의 침략으로 생활의 터전을 잃은 피난민들은 대구·부산까지 내려갔다. 하지만 만화는 전쟁통에서도 명맥을 이어갔다. 전쟁통에 만화를 종이에 인쇄해서 대량으로 판매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이미 사용한 종이를 재료로 만든 재생종이에 인쇄해 20페이지 내외 분량으로 엮은 만화가 대구·부산 등에서 유통됐다. 이걸 ‘딱지본 만화’ 혹은 ‘떼기 만화’라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공상과학만화인 『헨델박사』(1952)가 발간된 것도 이 시기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이루어지면서 대한민국 정부는 전후 복구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때 만화는 전쟁으로 피폐해진 국민의 마음을 달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만화학생』 『7천국』 등 새로운 만화 잡지가 창간됐고, 신문에도 연재만화는 빠질 수 없는 코너로 자리 잡았다. 『날쌘돌이』 『엄마 찾아 삼만리』 등 장편 만화가 출간돼 인기를 얻기도 했다. 만화의 이러한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1950년대 후반에는 만화방이 등장했다.
1960~1970년대: 만화방의 확대와 사전심의 제도 등장
1950년대 말 등장한 만화방은 1960년대에 전국적으로 확대됐다. 당시에는 먼 미래였던 22세기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SF 만화인 『라이파이』(1959), 재일교포 훈이의 울분이 일본 권투계를 뒤흔드는 이야기 『도전자』(1964) 등의 작품들이 만화방을 통해 독자들과 만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1960년대 중반에는 전국에서 하루에도 수백 개의 만화방이 생겨나고, 50여 권씩 만화책이 쏟아져 나올 만큼 만화산업의 규모는 급속도로 몸집을 불려 갔다. 1959년 전국 2000곳이던 만화방이 1960년대 말에는 1만9000곳으로 9.5배나 증가할 정도였다. 공공 도서관도, 텔레비전이 있는 집도 드물었던 1960년대, 동네 만화방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원하는 아이들에게 인기 장소였다.
이렇게 사랑받던 만화는 정부의 사전심의 제도로 또 한 번 위기를 맞는다. 1968년 창설된 문화공보부 산하의 ‘한국아동만화윤리위원회’는 어린이의 건강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만화의 소재·내용은 물론 만화책의 재질·판형·편수·분량까지 통제했다. 전시실에서는 이 시기 출간된 양돈이의 좌충우돌 학창시절을 그린 『양돈전』(1969)를 살펴볼 수 있다. 단행본의 크기가 기존에 통용되던 ‘국판(210x148mm)’이 아닌 검열 기준에 적합한 ‘4×6배판(257x182mm)’이었다. 이 시기에는 검열 때문에 풍자 성격이 강한 만화는 제약이 많아 스포츠·SF·순정·명랑만화 등 한정적인 장르의 만화가 주로 출간됐다. 정부의 통제와 여러 제약에도 불구하고 만화의 대중적 인기 속에 다양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를 발판 삼아 1970년대는 일간지 극만화, 어린이 잡지 부록 만화, 만화 전집류 등 만화업계의 양적인 성장이 진행됐다.
1980~1989년: 경제적 성장이 만든 만화계의 황금기
아기 공룡 둘리가 소시민 고길동의 집에 머물게 되면서 생긴 에피소드를 그린 ‘아기공룡 둘리’, 엄마를 여의고 홀로 아파트 옥탑방에서 씩씩하게 살아가는 하니의 이야기를 담은 ‘달려라 하니’는 모두 애니메이션으로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이들의 출발점은 만화잡지다.
1980년대에는 경제 고도성장에 힘입어 『보물섬』 『만화광장』 『주간만화』 『르네상스』 『아이큐 점프』 등 여러 만화잡지가 창간됐다. 특히 1982년 창간된 『보물섬』에는 김수정 작가가 ‘아기공룡 둘리’, 이진주 작가가 ‘달려라 하니’를 연재해 큰 인기를 끌었다. 만화잡지에서의 성공은 단행본 발행은 물론, 애니메이션 제작으로도 이어졌다. 1970년대 고교야구의 인기는 1982년 프로야구 개막으로 이어지며 스포츠만화, 특히 야구만화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또 독재정권에 항의해 5·18 민주화운동(1980)과 6월 항쟁(1987) 등이 일어난 시대적 상황에 영향을 받아 독재정권을 비판한 정치 풍자만화인 주완수 작가의 『보통 고릴라』처럼 사회 비판적 만화들도 많은 호응을 얻었다.
1990년대: 만화잡지 전성시대, 한국 만화의 황금기
민주화운동이 성과를 거둬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1993년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끄는 문민정부가 들어서는 등 1990년대 한국 사회는 안정기로 접어들었다. 만화계 역시 질적·양적 성장을 거듭했으며, 만화잡지 역시 독자층을 세분화해 다양하게 발간됐다. 아동을 겨냥한 『소년챔프』 『아이큐점프』, 10대 소녀들을 겨냥한 『요요』 『미르』 『댕기』 『나나』, 청소년을 겨냥한 『영챔프』 『영점프』 『윙크』, 성인을 겨냥한 『투엔티세븐』 『빅점프』 『미스터 블루』 등이다. 만화잡지는 여러 작가가 그린 각각의 만화를 한 권의 잡지로 모아 주간·월간 등 일정한 주기로 발행하는 형태다. 단행본으로 하나의 만화만 읽거나, 스마트폰으로 스크롤을 내려 한 회씩 웹툰을 보는 것과는 다르다.
만화는 다른 문화 산업 장르와 결합해 새로운 콘텐트를 만들어 내는 ‘미디어 믹스’가 가능한 장르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예로 김진 작가가 그린 『바람의 나라』를 들 수 있다. 고구려 시대 대무신왕과 그의 아들 호동왕자의 이야기가 중심인 판타지 만화 『바람의 나라』는 1992년부터 만화잡지 『댕기』에 연재했는데, 1996년 넥슨의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로 재탄생했고, 2008년에는 드라마로 제작돼 KBS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역시 1993년부터 『댕기』에 연재한 원수연 작가의 『풀하우스』는 영국 미남배우 라이더 베이와 작가 지망생 엘리 지가 우연히 한 집에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순정만화인데, 2004년 KBS 드라마로 제작·방영돼 큰 화제가 됐다.
2000년대: 웹툰, 한국 만화시장의 대세가 되다
2000년대 들어 초고속 인터넷이 보편화하면서 웹툰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만화가 등장했다. 웹툰은 웹(web)과 카툰(cartoon)의 합성어로, 포털사이트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 인터넷에서 연재되는 만화를 뜻한다. 웹툰의 태동기는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이다. 1990년대 말에 개인이 홈페이지나 온라인 카페 등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인터넷에 공개했고, 이것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반응을 얻은 것이 시초다.
웹툰은 책의 페이지를 넘겨보는 형식이 아닌, 마우스 스크롤 기능을 이용해 모니터 화면의 웹툰을 밑으로 내려가면서 보는 것이 특징이다. 웹툰의 특징은 연출에도 영향을 미쳐 ‘스크롤 연출’이 나타난다. 지면 만화는 장면이 해당 칸이나 페이지에 국한된다. 반면 웹툰은 위에서 아래로 스크롤을 따라 진행되는 가상의 공간이 기반이라, 시공간의 흐름과 캐릭터의 동선 등에 있어 칸이나 길이의 제약이 적다. 2003년 나온 강풀 작가의 『순정만화』는 누계 클릭 수 6000만을 돌파하며 본격적인 웹툰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순정만화』는 스크롤 연출을 잘 활용해 호평받았고, 그러한 스크롤 연출은 이후 한국 웹툰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앞서 만화를 원작으로 한 게임·드라마 등이 성공을 거뒀던 것은 웹툰의 시대가 열리면서 웹툰으로 넘어왔다. 웹툰 원작 드라마·영화·게임 등은 물론 각종 캐릭터 상품도 큰 인기를 얻는 흐름이 본격화한 건 2010년대부터다. 2013년 개봉해 69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2014년 tvN에서 방영돼 시청률과 화제성을 모두 잡은 드라마 ‘미생’ 모두 웹툰이 원작이다. 1편(2017년)과 2편(2018년) 도합 약 2600만 관객을 기록한 영화 ‘신과함께’ 시리즈, 2020년 국내에서 시청률 16.5%를 기록했으며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세계적으로 좋은 반응을 얻은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도 그중 하나다. 즉, 만화와 웹툰은 전 세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K-콘텐트의 원천이자 뼈대로 활약 중이다.
신문과 함께 태동한 한국 최초의 근대 만화부터 K-콘텐트의 심장 역할을 하는 웹툰까지. 100여 년의 한국 만화 역사를 들여다봤다. 만화의 발전상이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한 흐름과 궤를 같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앞으로 만화는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까.
아이랑GO를 배달합니다
이번 주말 뭘 할까 고민은 아이랑GO에 맡겨주세요. 아이와 가볼 만한 곳, 집에서 해볼 만한 것, 마음밭을 키워주는 읽어볼 만한 좋은 책까지 ‘소년중앙’이 전해드립니다. 아이랑GO를 구독하시면 아이를 위한, 아이와 함께 즐길 거리를 풍성하게 받아볼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