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몽골 초원 위 '10m 바둑판'에 탄성…세계 홀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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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과 가치를 반영합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모호함을 밝히는 한줄기 단서가 되기도 하고요. 비크닉이 흘러가는 유행 속에서 의미 있는 트렌드를 건져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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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울란바토르 날라이크 지구에서 풀을 뜯어먹는 낙타. 연합뉴스

계절에 따라 거주지를 바꾸는 몽골 유목민은 한 번 살았던 장소를 다시 찾곤 한답니다. 한반도 7배나 되는 드넓은 땅에서 정확한 위치를 찾아 헤매는 건 피할 수 없는 수고로움이고요. 하지만 앞으로는 이 문제가 쉽게 해결될 것 같습니다. 바로 ‘K-주소’ 덕분인데요, 지난 5월 몽골 주소 업무를 총괄하는 토지행정청은 자국에 한국식 주소 체계를 도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왔습니다.

새 주소 체계로 바뀌고 나면 몽골 수도인 울란바토르엔 도로를 기준으로 20m 간격으로 건물 번호를 붙이는 도로명주소가, 초원지대에는 땅을 바둑판처럼 10X10m 격자로 나눈 국가지점번호가 부여될 거예요. 도시와 초원지대로 이원화된 몽골 지형에 맞는 방식이죠. 도시인과 유목인을 모두 배려하기 위한 방법으로 우리나라 주소 체계를 택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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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울란바토르시 서울의 거리에 ‘서울로(SEOUL street)’가 생겼다. 행정안전부

그런데 K-주소 체계에 몽골만 관심을 둔 게 아닙니다. 지난해 이미 아프리카 탄자니아와 에티오피아에 K-주소를 수출한 사례가 있죠. 또 우즈베키스탄∙스리랑카∙라오스 등 15개국에서도 한국식 주소 체계에 관심을 표했다고 해요. 도대체 K-주소가 어떤 강점이 있어서일까요. 오늘 비크닉에서는 행정에서도 한류 붐을 만들고 있는 K-주소 브랜딩 비결을 알아볼게요.

지하상가 매장마다, 주차장 칸마다 이름 붙는다

몽골이 특히 관심을 보인 국가지점번호, 우리나라에선 시민 안전을 위해 활용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등산길에 길을 잃거나 다치는 등 응급상황이 생길 때 위치를 빠르게 파악하는 용도로 사용하죠.

안전을 위한 주소 체계는 이것 말고도 또 있죠. 고속도로변∙터널∙자전거길 등도 일정 간격으로 주소가 달라지는데, 재난 상황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해 등장했죠. 승강기∙자동 심장충격기∙소화전 등에도 제각각 주소가 붙어요. 모든 사물에도 주소를 부여하는 건 세계 최초 사례라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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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찾아볼 수 있는 국가지점번호 위치 표지판. 행정안전부

K-주소의 강점은 뭣보다 일상을 편하게 바꾼다는 겁니다. 가령 620여 개의 상점이 빡빡이 들어찬 서울 반포동 고속터미널역 지하상가에서 한번 갔던 가게를 다시 찾는 건 기억력 테스트에 가깝죠. 인천공항 주차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동차 약 4만대 주차가 가능한 대규모 공간에서 내 차를 찾는데 많은 시간을 쓴 경험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가게마다, 칸마다 주소를 만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실제로 지난해 서울 고속터미널 지하상가∙대전역 지하상가 등에선 개별 상가를 찾을 수 있는 실내 내비게이션 서비스가 도입됐습니다. 올해 인천공항 주차장에서도 주차 내비게이션 시범 사업을 진행해요.

이렇게 주소를 세세하게 부여한 이유는 도시의 복잡성 때문이에요. 그동안 면적에 상관없이 건물마다 단 한 개의 주소만 부여돼 있었는데요. 도시가 발달하면서 건물이 없는 곳에서도, 실내나 지하에서도 위치 찾기의 필요성이 생겼어요. 도로명주소에서 출발한 우리나라 주소 체계가 일상생활의 변화에 맞게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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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역 지하상가에선 ‘대전 길알림이’ 어플을 통해 상점뿐만 아니라 화장실∙소화전∙자동 심장충격기 등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행정안전부

국제표준 우수사례 된 K-주소…인간과 기계의 소통수단

주소는 이제 단순히 길 찾기 기능을 넘어서 미래산업을 선도하는 기반으로 봐야 합니다. 국제표준화기구(ISO)가 정의한 주소를 볼까요. ‘주소는 인간과 기계의 위치 소통수단’이라는 개념을 도입했어요. 드론∙로봇 배달 등 물류업이나 자율주행차와 같은 모빌리티 등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가는 분야에서 주소 정보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차장 칸별로 주소가 부여되면 자율주행으로 주차할 수 있을 거예요. 실내 공간마다 부여된 주소로 자율주행 로봇이 문 앞까지 배달할 수 있게 될 거고요. 실제 정부는 전국 곳곳에서 자율주행로봇 배송∙자율주행차 주차∙드론 배송 등 시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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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 캠퍼스에서 시범 진행 중인 로봇 배송 서비스. 행정안전부

체계적인 주소 체계 덕분인지 전 세계 표준과 기준을 개발하는 ISO는 지난해 11월 K-주소를 우수사례로 선정했습니다. 도로명주소를 비롯해 어디서나 위치 표시가 가능한 국가지점번호, 고가·지상·지하도로를 구분하는 방식 등이 대표 사례로 꼽혔죠. 최진무 경희대 교수(지리학)는 “선진국이 국제표준을 장악하려는 이유는 국가 간 정책·정보 거래의 기준점이 되기 때문인데, 우리 주소가 그 기준점이 된 것”이라고 의미를 짚었습니다.

한국 주소 체계가 국제표준으로 꼽힌 이유는 단지 활용도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실 오래전부터 노력한 결과이기도 해요. ISO 내부에선 2009년부터 국가 간 유통 비용 절감을 위해 주소 국제표준화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행정안전부도 한국의 도로명주소 제도를 알리기 위해 2010년부터 여기에 참여했죠.

국제표준화된 K-주소로 정책 수출을 하게 된다면 또 다른 기회를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물류∙내비게이션∙공간정보 등 주소 관련 기업들이 K-주소를 활용한 나라에 진출해 유통산업 분야를 선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법제연구원은 올해 낸 보고서(주소정보산업 활성화 등을 위한 제도개선 연구)에서 도로명주소를 기반으로 한 미래 신산업 시장 규모가 2021년 4061억원에서 2030년엔 3조6543억원으로 대폭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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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과 지하를 구분하고, 거리마다 주소를 세세하게 부여한 한국형 주소 체계. 행정안전부

단 10년 만에 주소 선진국 된 한국…K-주소 한류는 어디까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도로명주소의 역사는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올해 10주년을 맞이했죠. 1996년부터 지번 주소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국제 기준에 부합한 주소 체계로 개편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오랜 논의 끝에 2014년부터 시행됐어요.

우리나라 주소 체계가 10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정책 수출까지 할 수 있게 된 이유는 단순히 효율적인 주소 표기 방식 때문만은 아닙니다. 일상의 안전에 중점을 두고, 디지털 전환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이 K-주소라는 브랜딩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죠. 최 교수는 “주소를 단순히 행정 효율성을 위한 수단으로 본 게 아니라 우리나라가 IT 강국인 걸 활용해 미래 산업과 연결해 브랜딩한 게 독특한 점”이라고 말했어요.

앞으로 우리나라 주소는 또 어떤 변신을 거듭할까요, 정책 수출은 어디까지 갈까요. K-주소의 새로운 길찾기가 더욱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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