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함성 다시 들리는 날까지…포기란 없다

본문

17322024897293.jpg

일반 유도 특급 유망주였던 김민석은 2015년 후천성 난청 판정을 받았지만, 청각장애 유도에 도전해 세계 최강자로 우뚝 섰다. 김성룡 기자

“취미는 따로 없어요. 쉴 때도 훈련해요. 실력이 쑥쑥 느는 게 재밌거든요.”

청각장애 유도 국가대표 김민석(29·포항시청)은 조금 느리지만, 정확한 발음으로 말했다. 그러나 양쪽 귀에 보청기를 끼고도 다른 사람의 말은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그는 그때마다 밝게 웃으며 “한 번 더 말씀해주세요”라고 했다.

그래도 눈빛이 매서웠다. 인터뷰 도우미를 자청한 석정수 포항시청 감독은 김민석의 표정을 두고 ‘챔피언의 카리스마’라고 표현했다.

석 감독의 말대로 김민석은 청각장애 유도에서 그랜드슬램(2017 올림픽·2024 세계선수권·2015 아시안게임·2023 아시아선수권 석권)을 달성한 청각장애 유도 세계 최강자다.

지난 16일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한 그는 2025 도쿄 데플림픽(농아인 올림픽) 출전권도 확보했다. 다음 달 6일에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리는 2024 아시아태평양 농아인 경기대회(아시안게임)에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한다. 김민석은 “금메달 한 번으론 만족 못한다. 모든 대회에서 최소 두 번 이상은 우승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고 밝혔다.

김민석은 원래 일반 유도 특급 유망주였다. 전북 원광고 시절부터 동의대 1학년 때까지 출전하는 대회마다 3위 안에 들었다. 당시 81㎏급 국가대표였던 김재범의 후계자가 될 만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대학 2학년 때였던 2015년 후천성 난청 판정을 받고 청각장애인이 됐다. 훈련 중 귀 부위가 매트나 상대에 부딪혀 잦은 충격을 받은 탓이다.

상대와 일대일로 겨루는 유도에서 ‘듣기’는 중요한 능력이다. 코치석의 지도자가 상황에 따라 외치는 지시와 조언은 승부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 될 수 있다. 심판의 경기 중단 혹은 재개 지시도 들어야 한다. 김민석은 “고교 때 생긴 난청 증세가 갈수록 악화했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막상 장애 판정을 받고 보청기(약 300만원)를 맞추고 나니 앞이 깜깜해졌다. ‘앞으로 경기를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걱정이 앞섰다”고 말했다.

그때 “청각장애 유도에 도전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청각장애 유도는 ‘사일런스 유도’로도 불린다. 선수는 보청기를 낄 수 없다. 심판은 판정과 지시를 수신호로만 전달한다. 지도자들도 같은 방식으로 작전을 전달한다.

김민석은 2015년 청각장애 유도 국가대표에 도전해 태극마크를 달았다. 이후 출전하는 국제대회마다 금메달을 싹쓸이했다. 김민석은 “내가 금메달을 딴 이유가 ‘청각장애 유도가 일반 유도보다 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더는 물러날 곳이 없다’고 판단해 이전보다 더 피나는 노력을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이천 장애인선수촌에서 훈련 중인 김민석은 새벽-오전-오후-저녁(이상 각 2시간)으로 이어지는 하루 네 차례 지옥 훈련을 견디고 있다. 그는 훈련이 끝난 뒤에도 혼자 남아 밧줄(로프) 타기 훈련(3회 5세트)을 하며 근력을 키운다.

그는 “일과를 마무리한 뒤 로프를 잡으면 손이 후들후들 떨린다. 그러나 강해지기 위해선 견뎌야 한다. 좋아하는 밴드 ‘버즈’의 노래를 크게 틀면 작게나마 멜로디가 들려 피곤함을 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민석은 일반 유도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일반 실업팀인 포항시청 유도팀의 유일한 장애인 선수로 등록돼 있다. 이강덕 포항시장이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한 덕분이다. 덕분에 그는 매년 8차례 장애인 국제대회는 물론 일반 국내 대회도 5차례 소화하는 강행군을 펼친다.

김민석은 “일반 선수들보다 1.5배 빡빡한 스케줄이다. 한 달에 한 번은 체급을 맞추기 위해 감량을 해야 한다. 일반 유도에서도 실력을 입증해서 내가 실력이 없어서 도망간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며 “지금은 안 들리는 관중의 함성이 그립다. 더 잘한다면 팬들의 환호가 내 귀에 들릴 만큼 커지지 않을까. 한국 유도 최초로 일반-청각장애 유도 국가대표를 겸하는 게 꿈”이라며 웃었다.

김민석

생년월일 1995년 1월 25일
체격 1m85㎝, 90㎏
소속 포항시청
주 특기 허벅다리걸기, 빗당겨치기
국가대표 청각 장애(후천성 난청) 유도 국가대표(2015년~)
특기 사항 2014년까지 일반 유도 특급 유망주
일반 대회 주요 수상 2015 제주컵 3위(81㎏급) 3위, 2016 전국체전(81㎏급) 3위, 2023 청풍기전국대회(90㎏급) 동
장애인 대회 주요 수상 2017 데플림픽 2관왕(81㎏급·단체전), 2023 데플아시아선수권(90㎏급) 금, 2024 데플세계선수권(90㎏급) 금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50,754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