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구찌가 조명한,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가 4인의 속 이야기[더 하이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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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해외 럭셔리 브랜드들이 한국 문화·예술과의 접목을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하고 있다. 대표적인 브랜드가 바로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구찌(Gucci)다. 지난해 이미 경복궁에서 브랜드 패션쇼를 열어 한국 문화유산을 세계에 알린 바 있는 구찌가 올해 또 다른 프로젝트로 한국 문화유산에 대한 경의를 표했다.

구찌, 11월 ‘구찌 문화의 달’로 #한국 문화유산에 경의 표시해 #예술가 4인 조명한 작품 전시 #아티스트 토크와 조성진 공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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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부터 한 달 간 진행된 '구찌 문화의 달' 프로젝트의 메인 이벤트로 열린 사진전 ‘두 개의 이야기: 한국 문화를 빛낸 거장들을 조명하며’ 현장. 구찌 가옥 3층에서 공개된 미디어 아트 전시는 큰 호응에 오는 12월 말까지 연장됐다. [사진 구찌]

구찌는 '구찌 문화의 달' 프로젝트를 지난 10월부터 한 달 간 진행했다. 먼저 ‘두 개의 이야기: 한국 문화를 빛낸 거장들을 조명하며’라는 주제로 서울 이태원 소재 파운드리 서울에서 사진전을 개최했다. 전시의 주인공은 개념 미술가 김수자, 영화감독 박찬욱, 현대 무용가 안은미, 피아니스트 조성진. 이름만으로도 ‘한국 예술계의 거장’이라 할 수 있는 인물들이다.

전시는 사진가 김용호가 촬영한 인물들의 초상과 자연 혹은 오브제 이미지를 병치해 예술가들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했다. 또한 박찬욱의 수첩 등 개인 소장품, 조성진의 무대 밖 모습 등 예술가들의 알려지지 않은 모습도 탐구해 이들의 예술 세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냈다. 구찌 가옥 3층의 다크 룸에선 일부 전시 작품을 미디어 아트로 재해석해 선보였는데, 큰 호응에 오는 12월 말까지 연장 운영한다. 프로젝트의 또 다른 이벤트인 아티스트 토크에선 안은미·김용호가 참가자들과 이야기를 나눴고, 조성진은 전시장 내 설치된 특별무대에서 피아노를 연주해 감동의 순간을 만들었다.

구찌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장르의 한국 예술가와 관객을 하나로 모으며 서로 다른 세대와 예술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했다. 또한 참가 예술가가 선정한 기관·단체에 기부 활동을 계획해 그 의미를 더했다. 중앙일보가 이번 프로젝트에 참가한 예술가 4명을 직접 만나 이들의 예술 세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안은미 ㅣ “춤은 생명력의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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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 사진가가 촬영한 무용가 안은미와 매화를 짝지은 '도망치는 미친년'. [사진 구찌]

‘21세기의 피나 바우슈’라는 수식어를 얻을 만큼 안은미는 지난 35년간 장르와 형식과 관행, 서양과 비서양의 이분법적 가치를 깨뜨리는 무대를 선보였다. 할머니들의 막춤을 기록해 무대에 올린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는 세계 50여 개국에 초청받으며 국내외 관객을 사로잡았고, 춘향전을 현대적으로 비튼 ‘신춘향’은 유럽 순회공연으로 이어졌다.

-구찌와 특별한 접점이 있었나.
“패션 브랜드가 패션쇼를 경복궁에서 한다고 했을 때부터 재밌다고 느꼈다. 물건만으로 소비되는 게 아니라 문화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구나, 라는 게 신선했다.”

-촬영은 어땠나.
“얼굴을 대놓고 찍은 적이 없어서 새로운 경험이었다. 누가 하라니까 하지 나서서 찍지 않았을 테니까. 다행히 결과물이 굉장히 마음에 든다. 평생 내보이고 싶었던 에너지가 보인다.”

-지금 한국 문화예술의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올까.
“생명력이다. 쉽게 1등이 될 수 없는 지형적 조건, 그런데도 왕이 되고 싶은 들끓는 욕망이다. 결정적일 땐 뭉치지만 대개는 개인으로 튀고 싶어하는 에너지 말이다.”

-사회적 함의를 담은 작품을 꾸준히 선보여왔다. 현재 작품으로 남겨야 할 시대의 몸짓은 무엇인가.
“몸을 열어라, 이다. 지금 우리는 정보와 시스템 속에서 남이 주는, 우리 삶과 괴리된 몸짓을 하고 산다. 그래서 예전엔 수업할 땐 뭘 ‘따라 해 보라’고 했는데 이젠 ‘자신을 찾아라’ ‘몸에 집중하라’고 한다. 몸을 통해 좀 더 자기 자신에 깊이 집중하고 건강해져야 한다.”

-나를 표현하는 수단으로서의 춤은 어떤 의미인가.
“내게 춤은 몸이 지닌 에너지를 어떻게 발전시키고 확장하는가의 문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소우주가 작동하는 에너지의 힘, 생명력을 표현하는 게 춤이다. 그 생명력을 주고받는 몸짓이 돼야 하고, 그래서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김수자 ㅣ “나는 내 앞에 던져지는 질문에 답을 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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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가 김수자와 연잎을 짝지은 작품 '사유'. [사진 구찌]

실로 천을 엮고 매듭 묶어 감싸는 보따리를 통해 삶과 예술을 연결해 온 ‘보따리 작가’. 미술가 김수자다. 김수자는 상파울루 비엔날레(1998년), 베니스 비엔날레(2013년) 한국관에서 한국을 대표했다. 프랑스 문화예술 훈장(2015~17) 등을 다수 수상하며 바느질·보따리·달항아리·오방색 등 우리 전통에 입각한 사유의 세계와 독자적인 예술 언어를 국제무대를 통해 선보여왔다.

–이번 프로젝트에 어떻게 참가하게 됐나.
“일단 브랜드의 프로모션 접근법이 감각 있고 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적지 않은 금액을 각 참가자가 추천하는 국제 비영리단체에 기증한다고 해, 상업성을 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보따리라는 실체가 있는 오브제에서 비물질적인 개념 미술까지 작업 영역을 확장해 왔다.
“비물질적 작업의 근간은 결국 바느질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 끊임없이 물질을 질문하다 보면 결국 비물질을 만날 수밖에 없고, 이것은 우리의 육신과 정신의 관계와도 동일 선상에 놓여있다고 본다.”

–예술가로서 시도해 보고 싶은 국제적 규모의 작품이 있다면.
“나는 무엇을 실현하기 위해 욕망하기보다는 주로 나에게 던져지는 질문들에 답하며 작업을 해 왔기 때문에 주어지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할 여유는 그리 없다. 앞으로도 하나하나 나에게 주어지는 공간이나 시간, 그 질문들에 최선의 솔루션을 찾는 일로 시간을 보낼 것 같다.”

–작가로서 요즘 관심 있는 것은.
“뉴욕에서 허리케인 샌디를 경험하고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 어둠과 무지에 대해 질문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이후 어둠에 대한 질문은 계속 진행 중이다. 최근 빛을 거의 모두 흡수하는 안료가 개발됐는데 이를 사용한 검은 조각 혹은 회화에 빠져 있다. 빛의 세계에서 어둠의 세계로 더욱 깊이 들어가 보고 싶다.”

▶박찬욱 ㅣ “무엇이든 아름다운 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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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박찬욱과 용을 짝지은 작품 ‘비룡승운’. [사진 구찌]

‘올드보이’부터 ‘박쥐’ ‘설국열차’ ‘헤어질 결심’까지-. 한국 영화를 세계에 알린 감독 박찬욱이 이번엔 한 마리의 ‘용’이 됐다. 강렬하게 정면을 응시하는 그의 얼굴 옆으로 용의 가면을 쓴 또 다른 박찬욱이 자리하고 있다.

-촬영 ‘당하는’ 피사체가 됐다. 어땠나.
“나도 사진 작업을 하는 사람이라서, 사진 찍히는 기회가 생기면 어떤 카메라 쓰나 등 이것저것 물어보곤 한다. 하지만 막상 촬영이 시작되면 영혼을 멀리 보내고 무념무상의 상태로 작가 시키는 대로만 한다.”

-어떤 이유인가.
“계산된 의도를 담지 않으려고. 영화 촬영할 때도 배우들에게 ‘가만히 있어 보라’고 할 때가 있다. 특별히 무엇을 표현하려는 의도가 없어도, 편집이 어떻게 들어가는지에 따라 다른 장면이 된다. 때론 관객이 스스로 해석하게 두기도 하고.”

-피 튀기는 잔인한 살인이나 기괴한 행위가 벌어지는 장면에서도 아름다운 화면을 만들어내기로 유명하다.
“어떤 상황에도 장엄함·숭고함 같은 역설적인 아름다움이 있지 않을까. 그것을 찾아야 되겠다는 것이 기본자세다. 일반적으로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하는 피사체라도 특정한 순간 발견할 수 있는 ‘찰나의 아름다움’ 말이다.”

-한국 영화를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이 달라졌다. 그 초석을 다진 사람으로, 한국 영화가 지닌 차별점이자 매력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풍부한 감정선과 복잡성. 그것은 기복이 크다는 뜻도 된다. 웃겼다가 슬펐다가 무시무시했다가 같은 여러 감정이 한편에 들어있다. 이게 한국 영화가 가진 상당히 ‘별난’ 특징인 것 같다.”

-박찬욱의 작품 세계,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까.
“계속 영화와 드라마, 사진 이 세계 속에 있을 거다. 그리고 한국어와 영어 또 언젠가는 일본어·중국어가 바탕이 된 영화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한국어와 외국어 사이, 영화와 드라마 사이. 그리고 영화와 사진 사이를 오가며 작업해 나갈 거다.”

▶조성진 ㅣ “아직 마스터할 곡 많다… 피아니스트의 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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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조성진과 바위를 짝지은 작품 '빛나는 청춘'. [사진 구찌]

조성진의 등장은 클래식계에 일어난 하나의 사건이었다. 사려 깊고 시적이며 다채로운 연주로 전 세계를 홀렸고, 국내에서는 클래식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그의 이름이 시대의 표상이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1위 한 지 내년이면 벌써 10년이다. 달라진 점은.
“사실 크게 변한 건 없다. 예전엔 뭘 경험하거나 시도할 때 항상 이유가 있었다. 나 자신 혹은 음악에 도움이 될 만한 것에 시간과 노력을 할애했다. 근데 요즘에는 그냥 해보는 것도 생겼다. 이젠 옆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셈이다.”

–치열한 20대를 보냈다. 올해 서른이 됐다고 했는데 30대에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더 발전하고 싶다. 주관적일 수도 있지만, 내가 더 만족하는 연주를 하려면 노력하는 수밖에. 큰 변화는 바라지 않는다.”

–어디서 에너지를 얻나.
“틈날 때마다 미술관을 즐겨 찾는다. 작품에 온전히 집중하다 보면 생각이 정화되는 기분이 든다. 베를린에 기차역을 개조한 함부르크 반 호프 미술관에선 이우환 작가 전시를 보고 감동했다.”

–미술에 관심 있는지 몰랐다.
“초현실주의를 좋아했는데 최근엔 현대미술도 흥미롭다. 작품 해석의 폭이 이렇게 넓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특히 이번에 함께한 김수자 선생님을 비롯해 이배·박서보 등 해외에서 한국 작가 전시를 보면 신기한 기분이 든다.”

–이번 달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과 내한 공연을 연다. 이후 준비하고 있는 공연이나 앨범은.
“같은 공연을 일본·대만으로 투어한다. 돌아와선 베를린 필하모닉 실내악 프로그램 연주로 올해 일정은 마무리된다. 내년 상반기에는 모리스 라벨 음반을 발표한다. 녹음은 모두 끝낸 상태다.”

–최근 가장 관심사는.
“피아니스트로서 축복이자 난제는 레퍼토리가 많다는 거다. 새로운 곡을 배우는 걸 좋아해서 최대한 주어진 시간에 많은 곡을 배우고 싶은 바람이 있다.”

※인터뷰 전문은 아래 관련 기사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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