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시간의 서사를 담은 향수...과연 어떤 향일까 [더 하이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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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만큼 만드는 이의 독창성이 담긴 제품도 없다. 그저 직관적으로 맡기에 좋은 향이어서는 ‘좋은 향수’로 인정받을 수 없다. 향수의 세계에선 무형의 존재인 향에 무엇을 표현했는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가 더욱 중요해진다. 많은 향수 브랜드 중에서도 독보적인 창의성을 보여주는 향수가 바로 르노 샐먼 크리에이티브 총괄 디렉터가 이끄는 오만 향수 브랜드 ‘아무아쥬(Amouage)’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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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 왕실 향수 아무아쥬가 올해 새로 선보인 향수 ‘디 에센스(The Essences)’. 과거·현재·미래로 향수를 구성해 시간의 서사를 담았다. [사진 아무아쥬]

아무아쥬는 오만 왕실이 국빈들에게 기억에 남는 선물을 하기 위해 시작된 니치 퍼퓸 브랜드다. 희귀하고 독특한 최상급 원료를 사용한 고급 에센셜 오일을 아낌없이 넣어 오랜 시간 향이 지속된다. 2019년부터 이곳의 모든 향수를 기획 및 디렉팅하고 있는 르노 샐먼 디렉터는 벨기에 가방 브랜드 델보와 루이 비통, 알렉산더 맥퀸을 거쳐 마크 제이콥스의 향수 담당 부사장을 역임하는 등 10년 넘게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와 함께 일하며 향수와 화장품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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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아쥬의 크리에이티브 총괄 디렉터 르노 샐먼. [사진 아무아쥬]

지난해 처음 국내에 아무아쥬를 소개하며 방한했을 당시, 그는 ‘여행’을 주제로 한 향수를 들고 왔다. 그에게 낯선 땅이었던 오만 곳곳을 여행하며 느낀 감정을 이미지로 만들고, 이를 다시 결합하고 해체하는 과정을 통해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를 만든 뒤 이를 향수로 표현한 향수였다. 아무아쥬의 향수를 ‘서사의 향수’라 부르는 이유다.

시간의 서사를 향으로

그의 향수는 이야기가 담겨 있어 철학적이고 흥미롭다. 이번엔 ‘시간’이 향수의 주인공이 됐다. 지난 11월 13일 오후에 진행한 화상 인터뷰에서 르노 샐먼 디렉터는 “시간이라는 개념의 서사를 담은 향수”라며 새 향수 ‘디 에센스(The Essences)’를 소개했다. 여기서 시간은 철학적 개념이기도, 실용적 개념이기도 하다. 그는 “조향 과정에 있어 시간이야말로 변화를 가져오는 가장 주요한 본질이라 생각한다”며 “무엇을 하든 시간이 그만큼 필요하다는 조향의 철학이 있는데, 최근 럭셔리 업계를 보면 ‘시간을 들인다’는 개념이 점점 덜해지는 것 같아 아쉬웠다”고 말했다.

샐먼 디렉터는 시간이란 개념을 과거·현재·미래로 나눠, 이를 각각 향수 ‘리즌(Reasons)’ ‘러스터(Lustre)’ ‘아웃랜드(Outland)’로 만들었다. 사진가이기도 한 그가 만든 디 에센스의 아트 이미지를 보면, 모래사막과 영겁의 시간이 만들어낸 단층 같은 것들이 보이는데 이는 전작 향수 기획 과정처럼 각 시간의 이미지를 먼저 정의하고 향으로 구현해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샐먼 디렉터는 “향수 개발 시 기술적으로는 향수별로 어떻게 시간과 놀 것인가, 또 시간이 지날수록 어떻게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시킬까 하는 두 가지 점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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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아쥬 디 에센스의 제작 과정 이미지들. 르노 샐면 크리에이티브 총괄 디렉터는 시간의 의외성과 깊이를 더하기 위해 불에 태운 오크통에 향수 원액을 넣어 숙성하는 혁신적인 기술을 적용했다. 왼쪽 위 사진은 이를 위해 오크통을 불에 그슬리는 모습이다. 오른쪽의 위아래 사진은 향료 숙성에 사용한 샌들우드 칩, 오크통 아래 디자인 노트는 브랜드 DNA를 반영한 새로운 보틀 디자인이다. [사진 아무아쥬]

오크통과 샌달우드로 숙성  

이번 향수는 향수 원료를 마련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사용한 대부분의 향료를 전통 침출 방식에서 영감을 얻어 직접 개발한 방법으로 긴 시간에 걸쳐 마련했다. 6개월에 달하는 숙성 과정도 거쳤다. 효율성을 위해 증류나 냉침 압착으로 빠르게 향료를 뽑아내는 요즘의 향료 추출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택했다.

향료 숙성엔 향수업계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오크통을 사용했다. 와인 숙성법에 착안한 방법으로, 내부를 불로 그을린 오크통 배럴 안에 향료를 넣고 샌달우드를 약 5% 섞어 향료가 동시에 두 가지 침출 효과를 누릴 수 있게 한 것. 이 방법을 통해 향수 원액은 1차로 그을린 오크통의 향을 입은 어두운 컬러가 되고, 샌달우드를 통해 2차로 좀 더 가볍고 크리미한 느낌을 주는 향으로 변한다.

전통과 정체성 담은 새 보틀

디 에센스는 샐먼 디렉터가 시도한 혁신의 정수다. 그의 혁신은 향수 병에서도 알 수 있다. 그는 이번 디 에센스를 위해 15년 만에 아무아쥬의 기존 향수 병 디자인을 과감히 배제한 새 디자인을 선보였다.
먼저 전통 향료 제조 방식을 채택했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해 옛 추출기처럼 병 입구를 돔 형태로 만들고, 어깨선부터는 미니멀한 디자인을 적용해 아무아쥬의 DNA를 반영했다. 바닥에는 브랜드 앰블럼과 향수 관련 문구가 새겨진 동그란 금빛 동전 모양 금속판이 붙어 있는데, 이는 시계 장인이 수작업으로 샘플을 만든 뒤 이를 상품화한 것이다.

샐먼 디렉터는 왜 이렇듯 까다롭고 어렵게 향수를 만들었을까. 그는 “지난 한 세기 동안 조향업계는 무엇을 잃었느냐는 질문에서 시작했다”고 했다. 이어 그는 ”향료 추출 방식만 해도 수 시간, 빠르게는 수초 안에 향을 뽑아내는 방식은 오랜 시간을 들인 침출 방식보다 최종적으로 얻어지는 향 종류와 깊이가 다르다”며 “효율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좋은 향을 얻을 수 있는 옛 방식이 사라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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